기원 안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객담을 나누고 있다. 말투로 보아 여러 지방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삼청교육인지 뭔지 아무나 막 잡아가는 갑소.」

「잡아가서 봉체조를 시킨다두만.」

「봉체조가 뭐당가?」

「봉 위에 군인을 태우고 들었다 내렸다 하는 건데 한 30분 하고 나면 아무 생각이 없다더군.」

「생각이 없다니?」

「모처럼 운동을 하니 땀이 쫘악 흐르고 기분이 째진다는 뜻일세.」

「참 좋은 체조구마이.」

「자네 한번 해 볼란가?」

「글시.」

「가서 한번 하더라고 체력 보강엔 그거 이상 없어라.」

「근데 도망 가다 잡히면 몽둥이로 대번에 대가리를 때린다 카데.」

「대가리를! 왜 하필 대가리를 때리는가. 다른 부위도 적잖을 터인디.」

「자꾸 손대기가 미안해서 그러지라.」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구마이라.」

민수는 반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반상 위의 돌들이 소리없이 아우성친다.

총칼을 앞세운 권력 앞에 세상은 침묵한 채 흘러가고 있었다. 엠 식스틴은 거리의 함성을 잠재워 버렸고, 피 묻은 대자보는 오랜 민주의 열망을 외면하고 속절없이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군복무를 마친 민수는 여전히 삶의 지표를 상실한 채 도시를 부유하고 있었다. 학교로 돌아가야 하건만 ‘정신의 부재(不在)’는 풀리지 않는 화두가 되어 자신을 압박했고, 학교에 파묻혀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에는 아직은 젊고 청춘인 삶이 너무 절망적이었다.

미국으로 간 민혜는 오래 전 소식이 끊어졌다.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나 그 과정에서 민수의 상처는 깊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삶을 부여잡고 민수는 우왕좌왕 끊임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학교로 돌아가느냐 마느냐 그것이 민수의 절박함이었고, 민수에게 남은 과제였다.

50이 채 못 되어 보이는 여자가 기원 문을 열고 쫓아 들어왔다. 여자는 다짜고짜 바둑 삼매에 빠져 있는 그 비슷한 연령의 웬 사내에게 다가가서 고함을 지른다.

「일어나!」

「왜 이러시는가. 점잖지 못하게.」

「어서 일어나!」

「어허 정말 왜 이러시는가. 사람들 보는데 창피하게.」

「창피한 줄 아는 놈이 몇 날 며칠을 집에도 안 들어오고 여기서 이러구 있어!」

기원 원장이 나선다.

「진정하세요 아주머니. 사람이 야통 좀 했기로서니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구만.」

「지나치다니요. 아니 처자식 있는 놈이 한 달이 넘도록 집엘 안 들어오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원장이 능청을 떤다.

「한 달이야 아무 것도 아니지. 저기 지금 1년짜리 2년짜리가 수두룩해요. 저 사람들 봐서라도 아주머니가 참으세요.」

「아니 이 양반이!」

여자가 원장을 노려본다. 그 서슬에 원장이 객쩍어하며 사내를 같이 공박한다.

「이 묘수. 자네도 그래. 집에 못 들어가면 못 들어간다고 전화라도 해야지.」

「전화했지. 통화중이더라고.」

이 묘수라고 불리는 사내가 나오는데로 내 뱉으며 태연하게 착점을 한다. 마누라가 찾아와 지랄을 하든 말든 사내는 온통 바둑에 정신이 팔려 있다.

여자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바둑판 앞으로 바짝 다가선다.

「어서 못 일어나겠어!」

당장이라도 바둑판을 뒤엎을 기세다.

「계속 개털되다가 모처럼 몇 방이라도 이겨 볼라는데 정말 왜 이러시는가.」

「개털이고 좆털이고 빨리 일어나!」

여자가 마침내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고 강제로 끌고 나간다.

원장이 끌려가는 사내의 손을 꽉 쥐었다가 놓는다.

「웬 년이 대낮에 생사람을 개 끌고 가듯이 끌고 가는구만. 대명 천지에 어찌 이런 일이. 용기를 가지게 이 묘수. 기원 문은 항상 열려 있다네.」

민수가 넋두리하는 원장을 쳐다본다. 돌아다니다 보면 간혹 재미있는 원장들이 있었다. 오래 전 동남기원 원장이었던 장 원장이 불현듯 생각난다.

1년 전인가, 제대 말년에 포상 휴가를 얻어 기원에 들렀더니 그 사이 동남기원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공이 잡혀 가고 송강이 떠난 후 해가 바뀌어 이 시인이 술로 쓰러졌고 원장이 풍을 맞았다. 동남기원에는 어느덧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 세대 교체의 후미에 있는 중간 보스인 충호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세상을 한탄하고 있었다.

「박 사범. 잘 왔다. 니는 별일 없나? 하긴 군바리가 뭐 별일 있겠노. 너거들은 군에 있으이 모를 끼다만 지금 세상이 개판이라꼬. 이런 이야기 어데 가서 함부로 하지도 못한다. 원장님은 결국 맞았다. 군바리들이 나라를 잡고 난 뒤부터 갑자기 풍 맞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더라꼬. 원장님도 그 통에 안 맞았나. 우리 오촌 당숙도 맞았다꼬. 지금 도처에 풍 맞고 쓰러지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이라 카이.」

충호는 장 원장의 최후를, 눈물을 머금고 상세하게 늘어놓았다.

장 원장이 맞은 풍은 다행스럽게 풍 중에서도 강도가 약한 편에 속하는 경풍이었다. 수족이 일부만 마비되고 언어 소통은 어느 정도 가능했다. 장 원장은 백전노장답게 그 위급한 중에도 결정타는 피한 것이었다.

기원을 떠나는 날 장 원장은 목발을 짚고 불편한 몸으로 고별사를 했다.

「나는 이제 간다 카이. 살다 살다 별일 다 당하고 간다 카이. 지금에사 실토하지만 기원을 하면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꼬. 그래도 난 그걸 전생의 업이라 여기고 그 동안 여러 분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꼬. 참말로 할 만큼 했구마.

그런데 이기 뭐꼬. 내가 아직 맞을 나이는 아이라 카이. 남들 다 피해 가는 거 내 혼자 맞았다 카이. 50년 세월이 그거 한 방에 끝나더라꼬. 허무하더라 카이. 자식 잘되마 뭐하노. 다 부질없다꼬. 맞는 순간에 모든 기 끝난다 카이.」

원장은 하늘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이제 나는 진짜 간다 카이. 알고 보마 사람 사는 기 별거 아이라 카이. 우리끼리 하는 말로 아무 것도 아이라 카이. 전부 잘 살아라 카이.」

그리고 원장은 울면서 기원을 떠났다.

「박 사범. 원장님 말마따나 세상이 허무하더라꼬. 원장님 가고 나이 재미도 없고. 요즘은 바둑도 잘 안 둔다. 기분이 이상하다 카이. 꼭 다음 차례가 내 차례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걱정이라. 갈 때 가더라도 편 교수와 박 총알은 보내 놓고 가야 될 낀데…….」

충호는 대낮부터 독한 소주를 연거푸 마신다.

옆 자리에서 바둑을 두는 삼보의 행마가 신중하다. 건너편 팔수는 독립군으로서 중고참이 되었건만 급수엔 큰 변동이 없고 상대적으로 바둑머리가 우수한 삼보는 어느 틈엔가 고수의 면모를 갖추었다.

「박 사범. 어떨 땐 술에 흠뻑 취하마 내가 꼭 이 세상 사람이 아인 것 같다……. 물 같고…… 바람 같고…… 사람이란 기 우째 그렇겠노…….」

생전 농밖에 모르던 충호의 입에서 얄궂은 말이 새어 나온다.

장 원장이 떠난 뒤 확실히 충호는 많이 쇠퇴해 있었다. 성질이 콱 하는 데가 있어서 그렇지 충호는 눈물이 많고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민수는 충호와 원장의 얼굴을 번갈아 떠올린다. 한 사람은 집안의 형님처럼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한 사람은 자신의 바둑을 최초로 인정해 준 사람이었다.

송강과 마공.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민수는 판 위의 돌을 거둔다. 그래 최원식 선생님을 찾아가 보자. 그분을 찾아가 괴로운 심정을 말해 보리라. 그분이야말로 나의 영원한 스승이 아닌가. 민수는 기료를 지불하고 기원을 나왔다. 밖으로 나온 민수는 청량리 시외버스 터미널로 급히 발길을 옮겼다.

최원식 선생님은 2년 전 대학으로 갔다. 춘천 신일대학에서 전임강사를 거쳐 지금은 조교수로 재직중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 한 번 찾아뵙고 몇 년 만의 만남이었다.

모처럼 만난 두 사제는 춘천 시내로 나와 술을 마셨다.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잘되었구나.」

「헤어졌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외롭습니다.」

「그럴 것이다.」

「선생님.」

「말해 보아라.」

「세상이 답답합니다.」

「그래서 이러구 다니는 거냐?」

「…….」

「나약한 짓이다. 세상이 아무려면 어떠냐. 그럴수록 자신에게 매진해야지……. 자신을 다스리려 하지 마라. 그냥 내버려 두어라. 혼탁한 시대라고 해서 영혼을 혹사시키는 건 그릇된 사고다. 용기를 가지고 네 갈 길을 가거라.」

「이런 세상에서 무얼 한단 말입니까!」

「나치 독일하에서도 라벨은 불멸의 곡을 남겼고, 부패한 루이 왕조시대에 다비드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을 그렸다. 그렇다면 그들이 헛된 작업을 했단 말이냐. 몇몇 위정자들의 세상이 아니질 않느냐. 남는 것은 정치나 제도가 아니라 인간의 고결한 의지와 문화다.」

「하지만 선생님.」

「외롭다고 했느냐?」

「……예.」

「정말 그러하다면 무엇인들 못하겠느냐.」

술집 밖 거리에서.

「내 숙소에서 자고 가거라.」

「……가겠습니다.」

강이 있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젊은 날의 푸른 영혼과도 같은 바람은 몇 번이나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을 감고 바람의 냄새를 맡아 보지만 바람의 냄새는 간 곳이 없고 강물의 비릿함만이 내 어두운 삶을 어루만져 주었다.  

보람된 삶을 잡으리라 애쓰는 일이 문짝을 다듬어 내는 목수의 대패질보다 보잘것없고, 의미 있는 삶을 쟁취하기 위한 영혼의 고갈은 자칫 오도되어 자신을 더욱 목마르게 한다. 그렇듯이 비옥한 삶의 쓸모는 그 형식에 있어 한계가 있었고 마음이 열려 있지 않을 때는 외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져 먹고 다시 가까이 가 보지만 삶은 항상 내 텅 빈 가슴을 쳤고, 새로운 삶을 추적하다 보면 어느새 또 다른 삶이 처마 끝에 내려와 앉는다. 주변을 배회하는 그런 삶 속에서 내가 끄집어낼 수 있는 삶의 이치란 진정 하잘것없는 것들이었고 무위(無爲)라는 두 글자 속에 내 혼곤한 의식은 깊게 깊게 침전되어 갔다.

어두운 강 저편에서 다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우우 소리를 지른다.

완벽한 수(手)를 흠모했던 날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오만이었나를 깨달았을 때 그때

이미 내 승부의 시절은 가 버리고 없었고, 외롭도록 보고 싶었던 여자는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잊혀져 갔다. 그것이 이제껏 내가 배운 삶의 방정식이었고 20대의 약관에 터득한 사랑의 논리였다.  

희극보다 비극에 강한 체질을 등에 업고 모난 세상을 한번 들어볼라치면 세상은 쉽게 나를 비웃고 갈피를 잃은 고단한 삶은 또 한번 제자리에 주저앉는다. 아무리 몸부림 쳐도 세상은 늘 그대로였고 인간의 뜻은 거리에 버려진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미명의 강가에 강물이 흘러간다.

새벽이 가까워 오도록 민수는 강물을 바라본다.

저 강물은 존재의 유무와는  아랑곳없이 백년이고 천년이고 흘러간다.  

그래. 내 존재의 유무에 관계 없이 나도 흘러가리라. 흘러흘러 어디든 가 보리라. 가서 직접 부딪히고 아픔을 겪어 보리라. 그리하여 확신 없는 내일을 보상받고 비로소 새로운 삶을 만나 보리라.

그 옛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처럼…….

강이 밝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