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이 직접 연락을 주시는 것을 보니 급한 일이 생기셨나봅니다.”

“내가 꼭 업무적인 일로만 조카님을 대했던 가. 항상 고마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연락을 드리는 거지.”

공무원들에게 사업하는 사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을’의 입장이다. 허술한 법망 탓일지,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욕심으로 법의 융통성을 기대하는 탓일지, 그들에게서 법규 해석의 자의성을 얻어내려 애쓰는 탓일지, 아니면 이런 모든 것을 합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특혜나 불법이 아닌 편의를 봐준다는 관행이 가진 영향력과 권력의 힘은 젊은이들이 ‘공시생’이라는 이름하에 젊음을 바치는 기 현상을 초래하는 것이 현실이다.

“저야 늘 회장님께 ‘무엇을 더 도와드려야 하나’를 고민하는 국민의 공복이잖습니까. 운동 계획이라도 있으신가보죠.”

“역시 조카님의 촉은 살아있어요. 그 보답을 하려고 제가 전화를 드린 것입니다. 차관님의 일정이 어떠신지요.”

김회장은 그가 조카라고 불리는 것보다 차관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혈연을 강조 할 필요가 있을 때는 굳이 조카라고 불렀다.
“저야 주말에는 늘 한가하죠.”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운동한번 나가시죠.”

“매주 나가는 운동이 뭐 새삼스럽나요.”

그는 김회장에게 뭔가 다른 계획이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이 돈이든 접대든 뇌물이든 조금 더 구체적인 제안을 기대했다.

“그냥 평범하게 운동이나 하자고 직접 전화를 드리겠습니까. 기대를 가지셔도 좋습니다.”

윤철은 조금 의아했다.

“네 몸의 반응이 지난번과 조금 다르다.”

항상 수십 번 넘게 오르가슴에 올라가던 그녀가 이번에는 채 열 번도 못 느끼는 듯 보이자 그가 이상하게 느낀 것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그러냐.”

아직 이사한 사실을 말하지 못해 속으로 고민을 하고 있던 그녀가 그의 말에 지레 찔리는 것이 있어 대답이 퉁명스럽게 나왔다. 연립주택 2층에 월세를 살다 넓은 고급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면 그는 분명히 무슨 돈으로 가능했는지 따져 물을 것이 뻔했다.

‘따져 물을 거면 지가 좀 해줬으면 되잖아.’

그에 대한 서운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그녀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 섹스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어도 이 남자와의 섹스는 오늘도 황홀했다.

“딱히 뭐라고 짚어내기는 어려운데. 뭐랄까, 내게 집중하는 게 덜하다고 할까? 아니면 전처럼 섹스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고 할까?”

“너는 정말 섹스에 대해서는 일가를 이뤘구나.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무척 좋았어. 다만 네게 말할게 한 가지 있기는 한데, 네 반응이 좀 걱정스러웠던 거야.”

그의 몸이 조금 굳어졌다.

“그 표정이 뭐냐, 너한테 돈 내놓으라고 할 거 아니니까 겁먹지 마라.”

그녀의 말에 그의 표정이 금세 풀렸다.

“뭐냐, 졸았잖아. 말해라, 내가 너그럽게 들어 줄 테니.”

돈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에 갑자기 여유를 부리는 그가 얄미워서 말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나 40평형대 아파트로 이사했다.”

“와, 대박. 엄마가 돈 해줬냐. 잘됐네. 언제 했는데. 나를 부르지. 사람이 필요했을 텐데.”

지가 돈을 안줘도 된다는 생각에 그는 한껏 마음을 퍼주는 척 하고 있었다. 그녀는 거기에 또 열을 받았다.

“엄마나 형제들에게 나는 언제나 이방인이다. 아마 내가 죽어도 모르거나 알아도 눈물조차 안 흘릴 사람들인 거 너 아직도 모르냐.”

“그럼 너 그 큰 아파트에 월세로 들어간 거야? 생활비 감당이 되겠어?”

“네게 생활비 달라고 손 내밀까봐 겁나지.”

“나한테 돈이 어딨냐.”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해라. 전세 얻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재빨리 그의 얼굴을 살폈다. 예상대로 그의 입이 크게 헤벌어지더니 잠시 뒤 얼굴빛이 심각해졌다. 그가 머릿속으로 잔머리 굴리는 소리가 마치 들리는 듯 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그가 말했다.

“몇 억이 필요했을 거고, 친정에서는 돈을 안줬다는 거고. 그럼 딱 두 가지 중 하나네. 니가 로또에 당첨됐거나 남자가 생겼거나.”

정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던 그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너 이대로 돌아가려고?”

그렇지만 그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옷매무새만 다듬었다.

“너 나 좀 쳐다봐.”

“왜? 이제 내가 더 이상 필요 없을 텐데.”

“그게 무슨 의미야.”

“내 느낌으로 넌 다른 남자가 생겼고, 그 남자가 준 돈으로 새 집에 이사한 거야. 그러면 네게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거잖아.”

그녀는 그의 이런 반응이 충분히 예상되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화가 치밀었다.

“그래. 네 말대로야. 나 다른 남자한테 도움을 받았어. 나는 그 도움을 주는 남자가 너였으면 더 행복했을 거야. 그렇지만 너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었잖아. 그리고 나는 지금껏 다른 여자가 있는, 아내가 있는 너를 지극히 사랑했어. 그런데 너는 내게 남편도 아닌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이렇게 화를 내고 있어. 이건 너무 불공평하고 이기적이잖아. 나는 늘 네게 숨겨진 여자로 살아야 돼? 내가 너의 여자로 세상에 드러낼 기회가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돼? 아니잖아, 너는 그럴 가능성마저 항상 차단해왔어. 내가 너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그래서 너 지금 내게 화를 내고 있는 거야?”

윤철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던 그는 슬그머니 돌아갔다. 그녀는 그가 앉아있던 자리에 엎드려 오랜 동안 서럽게 울었다.

“오늘도 같이 씻을까?”

하우스 캐디로 일하는 그들은 같은 요일에 휴무를 얻었다. 회사는 캐디들이 일주일에 한번은 쉴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회사에 고용되지 않은 신분이었지만, 캐디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형편에 그나마 회사에서 배려를 한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풀죽어 있던 그의 성기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게 말귀를 알아듣나보네. 너 그러다가 막상 일 시키면 또 고개를 푹 수그릴 거지.”

연지가 장난스럽게 그의 물건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렸다.

“이 놈은 내가 어떻게 안 되더라. 늘 지 멋대로야.”

지난 번 일이 생각난 현균이 무안해하며 한마디 했다.

“지금 보면 멀쩡한데 왜 문 앞에만 오면 기운을 잃을까? 내 조개가 무서운가봐.”

“아직 조개 맛을 못 봐서 그런가. 한번 맛보면 자꾸 먹으려 들지도 모르는데.”

“제발 그래보라고 해.”

두 사람은 장난스레 주고받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자 젊은 육체들이 더 생기를 뿜어냈다. 일생에서 몸이 가장 아름다울 나이인 이십대 초반의 그들이다. 서로는 천천히 상대방의 몸을 더듬으며 촉감을 느꼈다. 서로의 눈을 응시한 채 두 사람은 양손을 서로의 머리부터 얼굴을 거쳐 목덜미와 가슴을 향해 애무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의 계곡과 남자의 돌덩이에 그들의 손이 이르렀다. 흥분된 몸은 가빠진 호흡을 감당하기 어려워 ‘흑’하고 숨을 들이마시게 했다.

“아직 빳빳하게 잘 버티고 있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연지가 말했다.

“네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

“그래. 살살 넣어줘.”

조심스럽게 갈라진 계곡을 향하던 돌덩이가 입구를 잘 찾지 못하자 그녀가 손을 뻗어 조금 더 밑으로 돌덩이를 이끌었다. 그렇지만 입구가 뻑뻑해 진입이 쉽지 않았다.

“잘 안 들어가네. 아플 거 같은데 괜찮겠어?”

그녀는 입술을 꽉 다문 채 눈이 허공을 향해 있었다.

“아직 괜찮아. 조금 더 천천히 살살 들어와.”

아직 강도를 유지하고 있는 성기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감싸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앞으로 당겼다.

“아, 아파.”

그녀의 반응에도 그는 이제 멈추기가 어려워졌다.

“악”

돌덩이가 거의 다 들어갔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그를 밀쳐냈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그가 당황하며 빼내자 그의 성기가 급격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짧은 순간 그의 성기에 빨갛게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겨우 욕조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고 그녀의 계곡에는 핏방울이 맺혀 타일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