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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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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28회] 6부 깊은 산사의 노승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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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 가까이 길을 따라 올라왔으나 계속 험로가 버티고 있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거의 없는 이런 적막한 곳에 암자가 있다는 게 쉽게 믿기지 않는다. 산은 말이 없고 석천(石川)의 물은 흘러간다. 인간사 모든 것이 만나고 헤어지는 윤회이거늘 결국 헤어지기 위해 만나고 만나기 위해 떠나는 것인가. 눈앞에 나타나는 산의 비경은 절묘했다. 먼 옛날의 선계(仙界)가 이러했을까. 조선의 승려 부용선사가 3년 수도 끝에 선각(禪覺)을 이루었다는 태백이었다. 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산을 오르는 길섶에는 소나무, 잣나무, 떡갈나무들이 즐비했다. 또다시 산자락을 타고 한풍이 밀어닥친다. 박 화백은 옷깃을 여미고 해봉처사가 있는 수로암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으나 암자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산중턱을 넘어서부터는 길이 더욱 가팔랐다. 등줄기로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추위는 사라지고 대신 허기가 엄습했다. 급한 마음에 아침을 거르고 온 것이 박 화백은 후회가 된다. 산굽이를 돌면서 갈증까지 겹친다. 바람은 줄어들었으나 이번엔 한낮의 볕이 이마 위로 강하게 쏟아진다. 몽롱하다. 마치 꿈속을 걷는 것 같았다. 간혹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자신이 꿈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박 화백은 현재의 삶이 한갓 꿈이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샛길에 이르러서야 멀리 암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길가 큰 바위 위에 붉은 글씨로 수로암이라 표기가 되어 있었다. 혼미하던 박 화백의 정신이 제자리를 찾는다. 박 화백의 걸음이 비로소 빨라졌다. 수로암은 낡고 오래 된 암자였다. 절의 기와는 녹슬고 서까래는 부식되었다. 박 화백은 우선 바가지에 물을 떠서 목을 축였다. 고지대에 세워진 암자는 사방이 확 트여 바람이 쉴새없이 몰아쳤다. 암자라기에는 석탑, 등(燈) 같은 절을 상징하는 징표를 찾아볼 수 없어서 흡사 깊은 산 속의 소규모 선실(禪室)을 떠올리게 했다. 독경소리가 흘러나왔다. 법당에는 스님 한 분이 예불을 올리고 있었고 경내에는 그 외 다른 사람의 그림자라곤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박 화백은 또다시 불길한 쪽으로 자꾸 마음이 쏠린다. 만약 그가 이곳에 없다면, 그가 이곳을 떠나 거처를 옮겼다면 이제 어떡할 것인가. 어디서 그를 찾는단 말인가. 박 화백은 머리를 흔든다.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도로아미타불이다. 스님이 예불을 마치고 나왔다. 박 화백을 보자 스님은 합장을 하며 다가왔다. 스님은 젊은 수도승이었다. 박 화백은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스님에게 물었다. 「해봉처사님을 만나고자 왔습니다.」 그러나 박 화백의 목소리는 떨렸고 듣기에 따라 그것은 간절한 바람이었다. 스님은 박 화백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없이 절 맨 끝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박 화백은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제하며 스님이 가리킨 방 앞으로 다가갔다. 방 앞까지 온 박 화백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해봉처사를 불렀다. 「해봉처사님.」 반응이 없다. 「처사님.」 「…….」 박 화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방 안은 빛이 가려 어두웠다. 해봉처사는 방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한 손에 염주알을 굴리며 눈을 감고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염불을 외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며 좌선에 몰입해 있는 듯도 보였다. 가까이에서 본 그는 고요한 풍모의 고승이었다. 장대한 기골에 얼굴은 학처럼 맑았으며 누더기 가사장삼을 걸친 그의 전신 위로 청정한 기운이 감돌았다. 박 화백은 그만 실망했다. 박 화백은 첫눈에 그가 추동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동안(童顔)이었으나 칠순이 훨씬 넘어 보여 자신이 알고 있는 추동삼보다 한참 연배였고 무엇보다도 세파에 시달린 승부사의 모습과는 무관했다. 그는 맑고 푸른 한 마리 노학(老鶴)이었다. 자신이 추동삼을 그리며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여러 날을 불면으로 뒤척이며 가슴 조아렸던 그 만고풍상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좌선을 끝낸 해봉처사가 눈을 떴다. 「젊은 처사가 아닌가?」 「해봉처사님을 만나고자 왔습니다.」 「어떤 연유인가?」 「황판수 씨를 아시죠?」 「그 사람은 저승객이 되었네.」 「제가 찾아온 건 그 때문이 아닙니다.」 해봉처사는 박 화백을 유심히 바라본다. 「정명운 국수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해봉처사의 손에 들린 염주알이 다시 굴러간다. 「나무아미타불.」 「이 기보를 기억하십니까?」 박 화백은 기보를 꺼내 해봉처사에게 건넨다. 해봉처사는 기보를 받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바둑판을 돌려 주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벽송이던가?」 「벽송이라면?」 「바둑판 말일세.」 「그렇습니다.」 박 화백은 혹시나 싶어 그에게 묻는다. 「처사님의 속명이?」 해봉처사는 그 말에 답하지 않고 허황한 눈길로 들창 밖을 바라본다. 「가고 오지 못하는 것이 세간의 일이건만 참으로 무상하도다…….」 박 화백은 비로소 해봉처사가 추동삼이 아님을 확신한다. 「추동삼 그분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추동삼…….」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이 문자락을 흔들었다. 해봉처사는 생각에 잠긴다. 노안에 공(空)의 세월이 흐른다. 조선(朝鮮) 제일의 명인(名人) 설숙(雪宿)의 장제자였으며 공문(空門)에 든 지 어언 30여 년. 세속에서 벗어나 오직 불사를 위해 일도정진해 온 해봉처사 최해수(崔海秀). 어느덧 그의 기억은 그 행마의 출발선, 첫 수를 놓은 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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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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