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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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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19회] 4부 나타난 승부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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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틈에 술집 밖이 어둑어둑 해 진다. 송 영감은 흡사 그 당시 추동삼과 양포의 바둑을 눈앞에 그리듯이 눈을 갈래갈래 뜬다. 「우리들이 보기에도 그대로 가면 이번만은 양포 쪽으로 판이 기울 것 같았어. 그런데 중반전이 넘어갈 즈음 갑자기 추 사범의 괴력이 판 전체를 들쑤시는데 정신이 없더라고.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수들이었어. 난 그때 바둑의 진면목을 봤어. 태어나서 처음 고수의 바둑을 구경한 거지…….」 송 영감은 갈래갈래 뜬 눈을 고쳐 잡으며 허공을 바라다본다. 「바둑이란 게 이상해. 놓으면 그럴 수 있다 싶은데 막상 놓기가 힘들어. 그런 자리를 놓을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결국 마지막에 가서 양포가 다시 잡히더군. 전날 밤에 시작한 대국이 새벽녘에 끝이 났어. 바둑이 끝나자 추 사범은 곧바로 자리를 떴지. 추 사범은 언제나 바둑이 끝나면 가타부타 말없이 곧잘 사라졌으니까. 조금 후에 양포의 원래 전주인 강 사장이 쫓아 들어왔어. 다짜고짜 천 사장의 멱살을 잡고 싸움이 벌어졌지. 서로 욕설이 튀고 난리가 났어. 강 사장 입장에서는 자식같이 키워 온 양포를 돈만 앞세워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고 천 사장은 천 사장대로 양포를 믿었다가 소실된 금액이 얼만데 그러냐는 것이었지. 그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양포는 얼이 빠져 바둑판을 멍하니 보고 앉았더라고……. 막말로 안됐더구만. 지금도 그 얼굴이 간혹 생각이 나. 내 70평생에 그렇게 처참한 얼굴은 처음 봤어.」 박 화백은 송 영감을 통해 승부의 냉엄함을 상기해 본다. 소주를 한 잔 들이켜자 그 진한 독소가 폐부를 찌른다. 송 영감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그 후 양포는 시들어 갔어. 한땐 대마 킬러로, 반상의 무법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였지만 추 사범에게 패한 이후로는 예전같이 성적도 좋지 못했고 자기보다 한두 질 아래인 선수들에게도 맥없이 무너지곤 했지. 그리고 그 해 겨울 양포는 답십리 고갯길에서 술에 취해 얼어 죽은 모습으로 발견됐어. 사람들은 양포의 죽음을 놓고 자살이냐 사고사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 참으로 비통한 일이었어.」 어느덧 소주는 다섯 병째 비워지고 있었다. 양포의 종말은 두고두고 내기바둑꾼들 사이에 화제였으나 4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는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박 화백은 송 영감에게 술을 따르며 원래 목적인 추동삼의 종적을 다시 캐물었다. 「그 후 추동삼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추 사범도 그러다가 얼마 안 있어 그 바닥에서 자취를 감추었지…….」 「추동삼씨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만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글쎄…… 워낙 행적이 확실찮은 사람이라서…….」 「추동삼씨의 전주였던 유 사장이란 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유 사장, 강 사장, 모두 죽었어. 그들은 우리보다 10년 이상 연배였거든.」 신 영감이 송 영감 대신 답을 한다. 박 화백은 막막했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추동삼에 대한 근거는 없었다. 헤어질 때 송 영감이 뜻밖의 인물을 거론했다. 「김헌자(金憲字) 사범이라고 있었지. 양포와 추 사범이 나타나기 전엔 최고의 바둑이었어. 내 기억에 추 사범이 그 양반과는 친분이 있었어. 추 사범이 바둑 두는 자리에 종종 모습을 보였고, 보통 바둑이 끝나는 새벽에 청진동에 있는 해장국 집에 같이 있는 걸 내가 몇 번 본 적이 있었어. 대전 시내에 있는 기원에 한 번씩 나타난다더구만. 대전 가서 김 사범 찾으면 소식은 들을 수 있을 거야. 우리 연배니깐 그 양반도 많이 늙었겠구만.」 두 사람과 헤어진 박 화백은 늦은 시간이었으나 인사동의 한 카페에 들러 술을 더 마셨다.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들을 통해 전해들은 떠돌이 승부사들의 삶이 한편의 흑백사진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불현듯이 추동삼의 아버지 추평사가 떠올랐다. 추동삼을 찾으려 그의 고향 봉화에 들렀을 때 막걸리에 취해 횡설수설 하던 장 노인의 마지막 말이 술에 취해 몽롱한 의식 속으로 가물거렸다. 「허기사 종살이했던 고향이 머 좋다꼬 들리겠노……. 누가 반기 주는 사람이 있나…… 내라도 안 돌아오겄다.」 5부. 잊혀진 내기꾼들 다음날 박 화백은 주저 없이 대전으로 내려갔다. 박 화백은 도착 즉시 대전 중심가에 있는 기원들을 집중 수소문했다. 그러나 송 영감의 말과는 달리 김헌자 사범의 소재는 묘연했다. 그를 아는 사람은 더러 있었으나 근간의 행적에 대해선 한결같이 불분명했다. 부산에서 그를 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구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었고 광주에도, 전주, 군산에까지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었다.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김 사범은 대전에 기거하다가 얼마 전부터 전국을 무대로 돌아다니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차피 내기꾼들은 돌아다니기 마련이었고 돌아다니다 보면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서로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김 사범에 대한 여러 내기꾼들의 정보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었다. 그나저나 박 화백은 난감했다. 어디서부터 그를 찾아야 할지. 수천 개나 되는 전국의 기원을 다 뒤져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궁리 끝에 박 화백은 부산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부산에서부터 시작해 거슬러 올라올 생각이었다. 단 자정이 넘은 시각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과거 박 화백의 경험으로 봐서 밤새도록 영업을 하는 속칭 야통기원이 김 사범을 찾기에는 보다 적합할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찾아야 할 기원의 숫자도 줄어들어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부산에 도착한 시각은 늦은 밤이었다. 박 화백은 영도에 있는 남항동 부둣가로 차를 몰았다. 부둣가에 차를 세운 박 화백은 시트를 뒤로 젖히고 누웠다. 자정이 넘을 때까지 박 화백은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자정이 넘자 박 화백은 잠에서 깨어나 차의 핸들을 잡았다. 잠시 후 차는 영도다리를 지나 자갈치시장을 쪽을 향해 부산시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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