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설 무렵에 감정의 뿌리는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전의 경험을 통해서 감정을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는 편이다..

강한 감정적 충격으로 해결에의 전망이 아득한 일이 있었지만

일만년 정도나 지나야 실마리가 풀릴 것 같던 그일도 반년이 지나니 숨쉴 틈이 생기는 것을 보고는

감정은 결국 믿을 것이 못됨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래도 종종 감정자극은 발생하여서 말썽이 있었는데

오늘 생각하니 모든 감정의 이면엔 생각이나 견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집을 나설 땐 3시 5분 경이었다..

오늘은 코스를 달리할 생각이었는데, 기본코스인 낮은 정자길을 향하지 않고

반대편의 등산진입로를 택해서 정상으로 갔다가 반대편으로 내려가, 다시 원래의 도보코스를 통하여 복귀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엇이든 비젼이란 묘해서, 생각만 해도 그 코스가 마음에 들었다..

근자에 좀 바빠서인지 등산을 하는 것이 부담되었는데, 오늘 코스를 쓰려니 거리는 먼데도 도리어 관심이 끌린다..

예의 그 창모자와 긴수건을 차려입고 뒷동산에 진입.. 익숙한 산길을 오르니 오랜 만인데도, 또 목 쪽으로 자극이 오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을 쉬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반대편 정자에 이르니 이미 자리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대로 통과

이웃마을로 향하는 산책코스를 따랐다.. 노변을 따라서 귀가길로 향하니 비님이 강해진다..

나는 중동식 차양으로 변장하였지만, 더욱 거세지는 빗발에 잠시 제과점으로 도피하였다..

귀가해서 보니 90분 정도의 순환이었으나 아마 비가 오지 않았으면 75분, 숙달되면 한 시간 정도의 코스일 것이다..

요 근자에 든 생각 중 하나는, 노장이나 불교가 어려워보이는 이유에 관한 것이었다..

조금 내용은 다르겠지만, 공자의 자서전을 빌어서 적어보면

지천명에서 논하는 세계와, 이순에서 논하는 세계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종심에서 논하는 고전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종심의 입장에서 보면 지학이라고 하는 학은 결국 종심이다.. 그러니 자연히

이립이라는 틀의 형성을 말할 수도 있지만, 그 학인이 가진 종심의 자질을 짚어주어서 핵심을 먼저 부각시키는 방편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가령 선종의 십우도를 보면 반본환원이라는 단계도 말하지만, 입전수수를 말하기도 하는데

수행자가 정말 반본환원을 거치고 입전수수하였다면, 그 사람이 말하는 고전은 인우구망 등과는 다를 수도 있다고 느껴진다..

출세간과 세간이 완전히 통합된 입장이라면, 출세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상 자체가 바로 이미 출세간임을 말할 가능성도 있으리라.. 이렇게 되면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다는 것보다도, 우리들의 모든 생활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이라고 말할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 물론 불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한마음 일심이고, 그의 영광은 진여의 공덕이겠지만 말이다..

나도 정서적이거나 감정적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는데

감정과 생각의 연계라는 문제를 좀 구체적으로 음미하여야 하겠다..

만약 감정과 견해가 원리적으로 직결된 것이라면, 이 문제를 숙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이란 바로 번뇌인데, 모든 번뇌가 바로 견해때문이라는 말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가설은 이미 그럴 가능성이 많다..

유식에서도 자아의식의 구성을 아치와 아견 아만 아애 등으로 말하니 아견때문에 모든 번뇌가 가능하다면

모든 번뇌는 그의 아견 즉 아치의 구성요소에 대한 가리킴이 될 수 있다..

즉 모든 감정반응 혹은 번뇌는 고정된 견해때문에 생기는데, 견해나 관점이 고정된 것은 그것이 습관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습관들이 모여있다가 외적인 자극이 오면 반응을 하면

감정은 호오가 일고, 거기에 따라서 현실적인 머리가 작동을 하고, 거기에

안이비설신 등의 감각반응이 결합되면사 자아감이 형성, 보존, 혹은 강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실제로 산다는 것은 대개 감정자극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들의 습관에의 자극인지도 모른다..

수행론의 복합성의 문제는 며칠 전에 써보고 싶던 내용인데, 오늘 써보게 되었다..

이전에도 공자에게 지학을 志하게 한 것이 천명이라는 생각은 종종 했었지만, 오늘 쓴 생각은 그보다 진보된 것이다..

선종에서도 체용불이를 말한다.. 그래서 용에서 체를 드러내는 방편이 상당한데

이렇게 되면 복합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잘만 인연이 되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후의 처리과정도 많은 기간과 혼돈가능성도 있어보이지만 말이다..

복합성에 관해서 써보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모든 감정자극의 이면에 견해와 습관이 있다는 착상은 실무적으로 의미로와 보인다.. 그리고

산길과 도보길을 포함하는 4킬리미터 정도의 길이 개발된 것도 좋은 일이다..

대개 불교에서 두 가지 장애를 말하지만, 거기에선 번뇌장이 끝나도 소지장이 남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렇게 되면 감정자극을 벗어난 견해들도 있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하나의 단서는 다른 틀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의문을 일으켜서 형이상학을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풍진객님이 종종 생각난다..

선종의 핵심과 교학적 배경이 겸비되는 것은 인간세상에서 흔한 일이 아니다..

연령대도 50대 중반은 지난 것 같았는데, 연령에 어울리는 현실적 덕성이나 지혜도 겸비된 것 같았다..

풍진객이라는 용어는 영가현각의 증도가에 나오는 것이다..

선종의 속내를 갖춘 분이 풍진객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그것은 대개 노자가 말하는 화광동진이나 피갈회옥의 의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