投石(5)

선비만석

  오로 대국실의 애기가들의 풍문에 의하면 좌스꽝 왕별이 대머리의 바둑은 어쩌면 서 모 프로기사의 바둑일지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였다는 설이 돌았다. 하지만 프로기사 중에 서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어디 한 사람 뿐인가. 잡초바둑으로 유명한 순수 국내파 된장바둑인 서 방술 9단에, 손오공 이라는 별명을 가진 서 낭욱 9단 두 명의 기사가 있으니 두 서 씨중에 누구인지 궁금증이 유발되기 시작했다. 좌스꽝 왕별이야 말로 프로이면서 자기의 본색을 들어 내지 않는다고 하는 이야기가 돌긴 하지만 애기가 들은 왕별들이 아마 고수이던 프로기사이던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인터넷 바둑의 장점은 바둑을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둑이 두기 싫으면 대화 창으로 들어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이다. 거기다가 배팅을 하여 자기가 배팅한 기사가 이겨 주었을 때 그 쾌감이야 또 다른 즐거움 이였다. 대기실 대화 창의 단골손님 중에 한 사람인 굴 과장1급, 고기뀌지6단, 치위1단은 바둑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많은 애기가 들과 대화에 재미를 붙여서는 오로바둑 대기실은 그들의 대명이 안 뜨는 날이 없었다.

  어찌 되었거나 첫판을 반집으로 패한 왕별 대머리의 가슴은 승부욕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수제자에게 다시 대국 신청을 하였다. 수제자도 오랜만에 바둑을 둘만한 호적수를 만난 것이 기뻤다. 두 번째 대국이 벌어졌다. 수제자는 흑번이라 는 유리함을 가지긴 하였지만 아까처럼 실리 위주로 소극적인 바둑을 두지 않으려고 하였다. 좀 전의 바둑은 사실 대머리의 완승국 이라고 하여도 될만한 대국 이였다. 막판에 패를 내어서 넉 집을 이득 보는 바람에 대머리가 반집을 졌으니,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약간은 흥분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마도 오픈 대국 이였으면 흥분된 대머리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을 것이라고 상상을 하면서, 수제자는 첫 점을 우하 귀 화점에 착 점을 하였다. 컴퓨터의 마우스를 끌어다가 오른손 인지에 힘을 가해 누르자, 컴퓨터 바둑판에 검은 돌 하나가 떨어진다.      

  대머리는 수제자의 흑번이므로 이번은 수제자가 실리 위주의 바둑을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렇다면 수제자가 어떤 포석으로 끌고 갈지 그것이 상상되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이므로 자신의 기풍대로 바둑을 이끌기로 작정을 하였다. 관전자들은 수시로 들 낙 거렸으나, 천명을 넘긴 관전자의 수가 천이백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오로서버의 전체 접속자의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관전자들 앞에서, 바둑을 둔다는 것은 여타의 대국과는 다르다. 인터넷에서 바둑을 게임으로 분류하여 놓은 것이 사실상 대머리에게는 불만이긴 하지만, 바둑이 게임인가 스포츠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바둑을 즐기는 애기가 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있는 한, 바둑은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기도 하고, 게임이기도 하며, 놀이이기도 한 것이다. 

  [대머리 사봄이 얼었나? 왜 바둑을 안두고 있는 거여?!]

  [첫 판을 졌으니 신중하게 둘 라고 하는 기여]

  [거참 ...고수들 바둑 두는데 시끄럽구만......]

  대기실 대화창의 골수 멤버들은 저마다 한마디 하면서 대머리의 착 점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머리는 첫 수를 수제자와 같이 좌상 귀 화점에 두었다. 어차피 실리던 세력이던 변화가 쉬운 화점 바둑이 그의 두터운 바둑에 어울리는 것이다. 이내 수제자의 돌이 반상으로 날아든다. 이번은 좌하 귀 소목이다. 대머리의 손은 컴퓨터의 마우스를 끌어서 우상 귀 화점에 갔다대자 바로 손가락에 힘을 가했다.

  바둑돌을 잡는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덕분에 가상의 대국실로  몇 천 명이 모이는 편리함 때문인지 기원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오픈 바둑을 두어왔던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생리적으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자욱한 담배 연기와 시끄러운 다툼들에서 해방되어 조용한 가운데 바둑을 두기를 원하는 애기가들 에게는 인터넷 바둑이 인기를 끌만 하였다. 

  애기가 들은 오로라는 가상공간뿐만 아니라 타이젬, 한게임, 등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인터넷 게임 바둑에서 자신이 원하는 곳을 찾아 바둑을 둘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오픈 대국에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바둑은 첫판과는 다르게 빠르게 진행 되었다. 이미 첫판으로 상대방의 바둑에 대해서 알만큼은 알아버린 두 사람은 묘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밀고 당기는 듯 한 그러면서도 서로의 균형을 잃지 않는 조심스러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져야 구경꾼들이 재미있겠지만 대국자의 심리는 위험부담이 큰 전투를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애기가 들이 쎄돌이 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모 프로의 바둑을 좋아하는 것은 그가 바둑을 틀에 얽매이지 않으며 강하게 둔다는데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대머리는 첫판을 졌으니 이번 판은 이겨야 했다. 그가 마우스의 클릭을 멈춘 것은 초반 포석이 진행되던 삼십 수가 넘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