投石(4)

선비만석

  대머리는 다음 착 점을 신중하게 생각하였다. 어차피 수제자가 실리로 나올 것이므로 실리는 조금주고 두터운 바둑을 두기로 마음을 굳히자 이내 손이 나갔다. 자신의 갈라 침에 대해 두 칸을 벌렸다.

수제자는 대머리의 착 점을 기다리면서 대머리가 상변에 착 점한 자신의 돌에 대해서 가까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소목 날 일자 굳힘에 또한 두 칸을 벌려 실리로 가려고 하였다. 한데 대머리는 수제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우변의 갈라 침을 보강한다. 두 칸 벌림이다. 일립 이전이라는 바둑의 격언을 착실히 지킨다. 아주 평범한 두 칸 벌림 착수는 9급이면 다 아는 수이지만 고수가 둘 때는 뭔가 다르게 보인다.  수제자 역시 대머리의 삼 연성 화점방향으로 두 칸을 벌렸다.  전투는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포석이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누군가가 전투를 시작하려 할 것이다.

  반상무인 이라 했던가.  바둑판을 마주 놓고 앉아서 두는 것을 요사이는 프로 기사의 대국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고 대개의 아마추어 대국자들은 인터넷에서 바둑을 즐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다보니 기원에서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수읽기에 골몰하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움직여 두는 바둑 또한 색다른 묘미가 있기는 하다. 사람은 없고 바둑돌 착 점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시대의 흐름에 기원은 이미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 사실 대머리는 기원에서 바둑 두던 시절이 그립다. 또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친목을 도모하던 그런 시절이 기계문명에 의하여 너무나 삭막한 상황에서 바둑을 두다 보니 승부욕만 앞서기 일쑤이고 상대편이 보이지 않으니 무례함을 범하기 일쑤이다. 

  바둑은 어느새 중반전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대국이 벌어지자 오로 배팅 방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오십 수 이전에 대머리와 수제자에게 올인 한 배팅 족들이 벌써 몇 백 명이다. 이런 열기에서 작전 판이란 없다. 또또뱃 배팅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바둑은 승부를 예측 할 수 없는 팽팽한 힘겨루기로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의 대국을 관전하는 사람이 천명이 넘어섰다. 종반전으로 들어갈 무렵 대머리의 두터움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누가 봐도 반면으로 10집 정도는 대머리가 남긴 것 같았다. 여섯 집 반의 덤을 내고도 세 집반을 대머리가 유리한 국면으로 오로 형세분석기를 누를 때 마다 대머리에게 배팅을 한 애기가 들은 흐뭇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제자의 마지막 승부수가 준비되어 있음을 그들은 몰랐다.  

  [내가 조금 유리한가?] 대머리는 계가를 하면서 그리 생각이 들었으나 그것은 대머리의 착오였다. 고수의 바둑에서 가장 어려운 패가 나는 수를 대머리는 보지 못했다. 서로가 이십초 한번의 시간이 남았을 무렵 이였다.

  대화 창은 그야말로 애기가 들의 난리 법석 이였다. 대머리에게 올 인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축하를 하고 있었고 대머리 만세를 대화 창에 올리는 사람, 수제자를 원망하는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 틈에서 두 사람의 바둑을 유심히 지켜보는 왕별이 있었다. 버드였다.  버드는 일본인으로 오로 대국실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일본랭킹 153위이나 그는 한국 왕별들의 킬러로 불렸다.

  두 사람의 바둑은 애기가 들의 간장을 다 녹이면서 종국에 이르러 패를 이긴 수제자가 반집승을 하자 대머리는 너무도 허탈하였다. 수제자의 실력은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자신의 교만함이 패국으로 이어진 것이 너무도 속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