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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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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27회] 6부 깊은 산사의 노승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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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화백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그렇소 문둥이 영감. 그분이 이 기원에. 생전에 간혹 들렀지요. 해봉도사가 누구죠? 인근 수도사(修道寺)란 절에 있는 사람인데 스님은 아니고, 바둑이 대단한 고수요. 모르긴 해도 선생께서도 그 양반에겐 몇 점 붙여야 될 거요. 존함이 어떻게 되죠. 도사가 무슨 이름이 있겠소. 구사일생이라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어느새 박 화백의 가슴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기료를 지불하고 거스름돈을 받을 사이도 없이 박 화백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읍내에서 수도사까지는 한 시간 가량 걸렸다. 박 화백은 단숨에 수도사에 당도했다. 수도사에는 해봉도사라는 사람은 없었고 다행히 해봉도사와 같이 있었던 스님이 있었다. 「해봉처사님과 황판수 씨는 절친한 사이였죠. 황판수 씨가 간혹 여기 와서 며칠씩 지내다 가기도 했습니다. 황판수 씨가 죽자 처사님은 그분의 시신을 거두고 얼마 후 이곳을 떠났습니다.」 「어디로 갔습니까?」 「강원도 태백 못 미처 장암사란 절이 있습니다. 수로암이라고 그 산 중턱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에 계십니다.」 시기적으로 계산해 보면 황판수가 죽은 직후 해봉처사는 거처를 옮긴 것이 분명했다. 「지금도 그곳에 계실까요?」 「계실 겁니다. 제가 반 년 전에 만행중 수로암에 들러 처사님을 뵈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박 화백은 뛰는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운 박 화백의 차는 도로 양쪽으로 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선 길을 헤치고 해봉처사가 있는 태백을 향해 먼 행로에 들어섰다. 해봉처사. 그는 분명 추동삼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그가 추동삼일 가능성은 많았다.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이 그와 만날 수 있으리라. ‘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김헌자 사범의 기억에 의하면 고요해 보이나 승부사의 얼굴이라고 했고 송 영감은 그냥 준수한 용모라 했다. 그를 찾아 다니면서 몇날 며칠을 상상해 봐도 떠오르지 않던 그의 얼굴이었다. 박 화백은 제발 그가 그곳에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달리는 차의 핸들을 굳게 잡았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밤이 깊었다. 종일 해안도로를 달려온 박 화백이 장암사에 도착하자 차도는 그곳에서 끊어졌다. 본절 입구에 차를 세워 두고 수로암까지는 도보로 올라가야만 했다. 팻말에 표기된 수로암(修路庵)은 함백산(咸白山) 중턱에 위치한 고도의 암자였다. 지금 당장 20여 리나 되는 어두운 산길을 올라가기란 불가능한 일이어서 박 화백은 절에서 하루를 묵어 가기로 작정했다. 박 화백은 경내로 들어가 스님에게 하룻밤 유숙할 것을 청했다. 연령을 짐작키 어려워 보이는, 젊어 보이기도 하고 늙어 보이기도 하는 스님 한 분이 우물가에서 그릇을 씻다 말고 흔쾌히 박 화백을 객방으로 안내했다. 박 화백은 흐르는 물로 세수를 하고 법당에 가서 예불을 올렸다. 법당 중앙에 아미타불을 주불(主佛)로 하여 관음(觀音)보살님과 대세지(大勢至)보살을 모신 삼존불상(三尊佛像)이 있었다. 백팔 배를 하는 동안에도 박 화백의 뇌리에선 줄곧 추동삼과 바둑판이 떠나지 않았다. 전라도에 있는 도성암이라는 암자에서 수행하다가 여기 온 지 반 년이 넘었다는 스님에게 박 화백은 장암사로 오는 길 옆 목로주점에서 산 태백산 미곡으로 빚은 곡주를 한잔 권했다. 스님은 곡차를 받아들 뿐 마시지는 않았다. 그간 추동삼을 찾기 위해 허겁지겁 돌아다니다 보니 늘상 쫓기는 심정이었는데 모처럼 마음이 한적했다. 「스님, 어떻게 이 산중까지 오셨습니까?」 「인연이 있어서 왔지요.」 「인연따라 왔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언젠간 떠나시겠군요.」 「인연이 다 되면 떠나겠지요. 언제까지 있고 어디로 가고 하는 그런 계획은 없습니다. 그저 흘러다니는거죠.」 스님은 곡차를 든 채 눈을 지그시 감는다. 곡주를 마시니 입 안에 향기가 가득했다. 「스님. 산문 밖 비각에 새겨진 부용선사라는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선조시대 때의 승려이신데 선승으로서 대각을 이룬 높은 분이시죠.」 「스님은 불명(佛名)을 뭐라고 하시는지요?」 「저같이 못난 사람이 이름이 있습니까. 이름도 없고 나이도 모릅니다.」 스님은 자신을 밝히길 꺼려한다. 그저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있었다. 하긴 누가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도 없을 테고 또 가야 할 곳도 없을 것이었다. 그저 인연 닿는 대로 운수객(雲水客)이 되어 떠도는 것이 선승들이 아닌가.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스님은 법의를 추스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히 쉬십시오.」 스님이 돌아가자 박 화백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차를 몰고 오느라 피곤했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일이 되면 마침내 추동삼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로 가슴이 타고 조바심이 났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설핏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박 화백은 아침 공양도 마다한 채 곧바로 수로암을 향해서 출발했다. 산길로 접어들자 아침 나절부터 눈발이 휘날리고 계곡을 타고 거슬러 올라오는 초겨울의 세찬 바람이 산등성이를 모질게 몰아쳤다. 우여곡절 끝에 추동삼을 찾아온 박 화백이었다. 추위와 피로를 잊은 채 박 화백은 산길을 올라갔다. 그 정도의 추위쯤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앞에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길은 험했고 올라갈수록 첩첩산중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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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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