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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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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22회] 5부 잊혀진 내기꾼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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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자 사범은 독한 소주를 단숨에 비우고 소매로 입가를 훔친다. 「동문이라는 사람이 찾아 온 이후 추 사범은 바둑을 잘 두지 않더구만. 뒷전에서 구경만 하는 날이 많았지. 그리고 얼마 후에 자취를 감추었어……. 그것이 나하고도 마지막이었네.」 「그 뒤 전해 들은 소식은 없습니까?」 「그 후 몇 년 뒤에 추 사범을 봤다는 사람은 있었지만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고…….」 김헌자 사범을 통해 추동삼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고대했던 박 화백의 계산은 또 한 번 빗나갔다. 「술을 같이 마셨다던 황판수라는 사람은 누굽니까?」 「그 사람은 추 사범과 각별한 사이였지.」 「바둑을 두는 사람이었나요?」 「아닐세. 바둑이야 3, 4급 초보 수준이고 노름꾼이었지. 그 세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가였다더군.」 「도박을 전문으로 하는 분이였군요.」 「그렇게 봐야지.」 「그런 분이 어떻게 추동삼씨와 가까워졌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네. 내가 보기엔 추 사범과 황판수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어. 추 사범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 황판수였고, 그 다음이 정천명 5단이었을 거야.」 「황판수씨 소식은 전혀 모르시죠?」 박 화백은 뻔한 이야기를 물어 본다. 「……모두들 어떻게 됐는지……. 그들도 우리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겠지…….」 추동삼을 찾기 위한 숙제는 다시 황판수로 좁혀졌다. 추동삼이 어떻게 해서 전문노름꾼인 황판수란 사람과 교분이 이루어진 줄은 몰라도 김헌자 사범의 말을 놓고 볼 때 분명 추동삼과 황판수는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전문기사 정천명 5단의 이름이 이야기 도중에 나왔으나 그는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 정천명 5단은 40대 초반의 나이에 아깝게 죽었다. 끈질긴 장고바둑으로 유명했던 정천명은 그 끈질김으로 막판 뒤집기가 장기였다. 연고도 없이 흘러가는 바둑을 울며불며 쫓아가 결국은 승부의 방향을 돌리는 정천명은 염원의 승부사였다. 그러나 그는 죽음이란 승부만은 되돌리지 못하고 바둑사의 한 귀퉁이에서 잊혀진 사람이 되었다. 두 사람이 포장마차에서 나왔을 때 거리엔 어둠이 드문드문 걷히고 있었다. 빈 택시가 새벽 거리를 쏜살같이 질주한다. 겨울이 오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도시를 에워싼다. 바람은 이내 도시의 저편으로 멀어진다. 헤어지기 전 박 화백이 김헌자 사범에게 물었다. 「아까 그 바둑은 귀에서 수가 나지 않았습니까?」 김헌자 사범이 대답했다. 「쓸데없이 수를 내는 건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네.」 그는 손을 흔들며 미명 속으로 사라졌다. 6부. 깊은 산사의 노승 방송국 PD로 있는 정 감독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박 화백이 서울로 올라온 지 보름쯤 지나서였다. 박 화백은 올라와서 황판수를 찾는 일에만 매달렸다. 송 영감을 다시 찾아가서 황판수에 대해 물었으나 송 영감은 황판수가 추동삼의 전주 노릇을 잠시 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을 뿐 황판수의 행적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황판수를 찾는 일은 추동삼을 찾는 일보다 더 막막했다. 추동삼은 기원이라는 마지막 보루가 있었으나 황판수는 길이 없는 들판에 고삐 풀어진 야생마였다. 박 화백은 황판수의 주무대였던 청계천의 기원들을 둘러보았다. 기원 도박은 이미 마작이나 포커가 화투를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문 화투꾼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가 힘들었다. 황판수를 찾는 길은 이름이 있는 노름 전문가들이나, 왕년의 섯다꾼이어야만 가능했다. 박 화백은 고민스러웠다. 어디 가서 그런 노름꾼을 찾는단 말인가. 노름꾼들은 대개 연고지가 없다. 그들은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아다니는 자들이었다. 박 화백으로선 그들을 찾을 길이 없었다. 섯다판을 넘나드는 사람들과 연이 닿지 않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생각한 게 대학 동창인 정 감독이었다.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고 있는 정 감독은 지난해 도박과 관련되는 다큐를 만들어 세간의 좋은 반응을 얻었었다. 그때 정 감독이 취재를 하며 알게 된 노름꾼 중에 강석중이라는 노름꾼이 있었다. 그는 화투 기술에 얽힌 책을 펴내 시중에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정 감독은 박 화백과 함께 강석중이를 만나 직접 황판수의 일에 대해 부탁했다. 강은 박 화백의 이야기를 듣고 황판수를 알 만한 왕년의 선배 노름꾼들을 대상으로 여러 사람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강은 황판수와 비슷한 연배에 활동 시기도 대략 맞물리는, 거기다가 솜씨 또한 그 당시 몇 손가락 안에 꼽혔다는 원로 선배를 찾는 데 성공했고 급히 정 감독을 통해 박 화백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박 화백은 차를 몰고 약속 장소인 신촌으로 향했다. 화단 선후배들 사이에 박 화백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박 화백이 개인전을 포기하고 2년 전부터 나가던 대학 강사 자리도 휴직계를 내 버리자 박 화백이 붓을 꺾었다는 둥 젊은 나이에 너무 빨리 크더니 일찍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둥 말들이 많았다. 박 화백의 성품을 평소 잘 이해하는 그의 아내 입장에서도 본업을 내팽개치고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박 화백의 행동이 고울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박 화백에겐 그 모든 것이 하찮게 느껴졌다. 지금은 오직 추동삼을 찾는 일만이 유일한 그의 목적이었다. 강과 함께 찾아간 곳은 난지도 근처 상암동 빈민촌이었다. 강이 말한 노인은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황판수 그 사람은 왜 찾누?」 노인은 의심의 눈초리로 박 화백을 째려본다. 「여기 박 선생님께서 꼭 만날 일이 있답니다.」 강이 박 화백을 대신해 노인의 물음에 대답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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