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만에 간신히 공부를 끝마친후 아내의 강력한 압력에 못이겨 엘에이로 이사를 왔다. 
살기 좋은곳이라서가 아니라 처가집 식구들이 살고있었기 때문이다. - =;;

그래도 한가지 좋은점은 있었는데,  한인들이 많이사는 대도시여서 기원도 여럿 있었고 바둑두는 사람도 자주 만날수있었다. 
(바로 이 웨스턴 길에 있는 한국기원에서 루이나이웨이와 올인의 주인공 차민수를 만난일이 있으나 이것은 이미 한번 글로 써 먹었으니여기서는 패스하기로 하자) 

같은 직장은 아니었지만  한빌딩에서 같이 일하게 되어 만난 앤디 (Andy, 여자이름같지만 남자 이름이다.) 라는 나와  동갑내기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친구도 바둑을 무척 좋아한다는것이었다.
바둑에 굶주려있던 나는'이게 웬 횡재인가' 신이났고 우리는 즉시 바둑판을 구입해 퇴근시간이 땡 하고 울림과 동시에 바둑을 두었다.

바둑실력도 비슷했는데, 이론위주로 바둑을 배운 내가 포석에는 좀더 강했지만 중반 전투와 끝내기에 밀려 열판 정도 둔후에는 내가 흑을 잡고 두게되었고 그나마 흑잡고도 지는 때가 더 많았다.
그냥 두기 심심하니 저녁 내기를 하자고 해서 세판을 두어 두판지는 쪽이 저녁을 사기로 했는데, 어쩌다 한번얻어먹으면 네번 정도는 내가 밥값을 내는 정도의 실력이었다. ㅜㅠ

하루는 신문에서 이창호와 최명훈(? - 상대가 누구였는지는 확실히는 기억이 않난다) 의 대국이 미국 바둑팬들을 위해 엘에이에서 열린다는 광고를 본것이다.
 가슴이 쿵쾅 쿵쾅 뛰기 시작했다. 
' 오 드디어 천재 소년을 볼수있게 되었구나'  (소년 - 그렇다 이게벌써 십몇년쯤 전이었으니, 창호는 그당시 여드름꽃이 한창이던 틴에이져 이었다.)

대국당일 목욕재개하고 가장좋은 양복을 빼입고 회사의 아침 회의가 끝나자 마자 대국장으로 달려갔다.
대국모습을 볼수있을거란 기대를 잔뜩하고 갔으나 막상 대국장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대신 호텔의 연회실에서 커다란 자석 바둑판을 놓고 윤기현 사범이 해설을 하고계셨다.

바둑은 이창호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난 창호의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끝까지 남아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윤기현 사범님께 창호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다 식어서 차게된 음식을 혼자서 먹고 있는 창호에게 데리고 가주셨다.
그리고는 사인도 받게 해주고 악수도 하게 해주었다... 
밥먹는 도중에 미안했지만 이런기회가 내평생 언제 또 오겠는가 싶어 악수를 청했다. 

사실 악수라기 보다는 색시 보다 더 수줍게 내민 맥없는 창호의 손을 내가 잡았다고 표현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여튼 창호와 악수를 하고는 난 그날부터 삼일 동안은 손을 닦지 않았다.

바둑 열기가 온몸에 가득차 그날 나의 바둑친구 앤디 에게 도전을 했다. 
"이제부터는 세판 지면 무조건 칫수를  바꾸기로 하자"
그유명한 오청원의 칫수고치기 십번전을 제시한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