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마공은 오다가다 만난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가정을 꾸리게 된 마공은 심기일전 떠돌이 독립군 생활을 청산하고 한 곳에 정착했다. 마공은 변두리에 조그마한 기원을 월세로 인수하여 영업을 했고 마공의 아내가 된 여자는 문제의 주류회사에 직공으로 다니며 부부가 맞벌이를 했다.

처음 1년은 전셋방 칸도 마련했고 살림살이도 점차 틀이 잡혀 가정은 그런 대로 행복했다. 사건이 터진 건 아내가 일하러 나간 지 1년이 조금 지난 후였다.

마공의 아내는 일하던 도중 사고를 당했다. 야간 작업중 쌓아 둔 소주 상자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같은 조의 여공 두 명과 함께 그 밑에 깔렸다. 연일 계속되는 과중한 작업으로 인한 불의의 사고였다. 그 사고로 인해 마공의 아내는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병원에서는 마공의 아내에게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마공은 회사측을 상대로 산재보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마공의 요구를 한 마디로 묵살했다. 본인이 부주의하여 일어난 사고는 회사측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마공은 회사 간부를 찾아다니며 통사정을 했으나 별무신통이었다. 오히려 회사에서는 병원에 누워 있는 마공의 아내에게 그 달치 봉급과 소액의 위로금을 지불하고 일방적으로 해고 조치를 취해 버렸다.

마공은 막막했다. 기원에서 나오는 수입으로는 아내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큰 회사를 상대해 법적으로 대항할 수도, 싸울 수 있는 힘도 없었다. 생각다 못한 마공은 기원을 그만두고 다시 독립군으로 돌아갔다.

마공은 독립군 생활 시절 가깝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을 찾아갔다. 그는 사기 바둑꾼이자 도박 전문가로서 무전기와 약품을 이용해 도박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데 일급 기술자였다. 그를 찾아간 마공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고 그의 도움을 빌려 사제폭탄을 만들었다.

그 후 마공은 지금까지의 수순을 밟아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이 영감의 장례식 날, 마공은 늦도록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누워 있었다. 술에 취한 마공이 아내의 손을 잡았다. 마공은 열 살이나 아래인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다.

달동네에 살던 시절, 마공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처녀는 마공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마공은 마구잡이로 술을 마시고 처녀의 방에 쳐들어 갔다. 말로 설득되지 않으면 덮칠 요량으로 마공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다.

처녀는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아 놓고 다소곳이 누워 있었다.

「이것 보쇼, 아가씨! 사람 너무 괄세하지 마소. 나 이래 봬도 알아주는 승부사구마. 승부사를 무시하마 예의가 아닌 기라요. 알겠능교?」

처녀가 예상대로 반응이 없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소! 뭐라 대답 좀 해 보소!」

그러나 처녀는 여전히 그대로 누워 있다. 마공은 화가 나서 이불을 확 들쳤다. 처녀는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마공이 기가 막혀 처녀의 팔을 끌어당기는데 팔이 축 늘어진다. 마공이 화들짝 놀란다. 처녀의 눈에 초점이 없고 동공이 허옇게 떠 있다.

마공은 술이 확 깼다. 마공은 여자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여자는 깨어났다.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오빠와 같이 자란 처녀는 1년 전 트럭 운전을 하던 오빠를 사고로 잃고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되었다. 그 후 처녀는 여기저기 전전하며 온갖 고생을 다했다. 그리고 세파에 지칠 대로 지친 처녀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자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했다.

병원에서 마공이 처녀를 타일렀다.

「사람 목숨을 가벼이 생각하는 건 죄악이라요. 세상에 부질없는 목숨은 없다 카이요. 외롭고 힘든 삶이라 캐도 소중하기는 마찬가지라요. 나 같은 건달까지 당신을 괴롭게 했으이 오죽했겠능교. 미안하구마. 인자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꺼구마. 용기를 가지고 잘 사시오.」

마공은 그날로 달동네를 떠났다.

몇 달 후 처녀는 이 기원 저 기원 수소문 끝에 마공을 찾아왔다. 그 처녀가 지금 마공의 아내였다.

마공은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본다. 창백한 아내의 얼굴이 애처롭다. 마공은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속이 쓰라리다. 아내를 속수무책 방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한 처지가 원망스럽다. 마공은 어떻게 하든 아내의 병을 자신의 힘으로 고칠 것이라 마음 먹는다.

다음날 마공은 부두에서 노역을 하는 고향 친구를 찾아갔다. 마공은 친구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한 뒤 마침내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던 승부수를 결행했다. 승부수란 다름 아닌 친구가 자신을 고발하여 현상금을 타게 한 후 사건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친구가 그 돈을 다시 자신의 아내에게 몰래 전달하는 수법이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마공은 동남기원에서 태연하게 형사들을 기다렸고 끌려가기 전 그간 미루어 왔던 송강과의 세 번째 대국을 마지막으로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집부족증에 걸린 마공이 던진 수는 착각이요 속수였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고향 친구가 공범으로 몰리자 친구는 마공의 사주를 실토했고 졸지에 현상금은 공중에 떠 버렸다. 결국 아내를 살리기 위한 마공의 암수는 패신에 홀린 나머지 자멸을 초래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화려한 방내기꾼으로서 세인의 가슴을 울렸던 마공 김월출.

그는 전성기 때의 그 화려한 행마를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채 제도와 보수의 칼날 앞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참으로 허망한 종국이었다.

송강이 소주 한잔을 쭉 들이킨다.
마공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후 송강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셨다. 오늘도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는데 민수가 찾아와서 동석을 했다. 민수는 송강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마공은 그와 사이가 불편했고 밝혀진 바대로 마공의 방식은 송강이 지향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송강은 마공에 대해 그 어떤 비난이나 옹호도 없었다.

「이념의 끝은 인간에게 묘한 여운을 남기지. 우리가 꿈꾸어 왔던 세상도 그렇고, 우리가 열병을 앓았던 지난 젊은 시절이 그랬어. 그러나 다 부질없는 짓이야. 사람이 궁극적으로 돌아가는 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지, 이념과 공평(公平)이 횡행하는 세계가 아니거든. 인간의 희로애락이 결여된 이념은 인간 개인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공평이란 삶의 정당성을 말함이지 그릇된 욕구 불만을 평준화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네.
삶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해. 혁신(革新)이라는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네. 마공의 패착도 바로 그런 것이야. 마공이 추구했던 자유는 날고자 하는 염원이지 결코 날아갈 수 없는 허구의 날개에 불과했어. 그것이 역사고 본질이라네.」

송강이 다시 소주잔의 술을 비운다. 벌써 세 병째다. 마공이 없는 송강이 왠지 외로워 보인다.

「……난 떠날 수밖에 없었어…… 거리의 함성도 차가운 철창 안의 피 끓는 용기도……. 다 지난 젊음의 피였어…….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나마 나를 지탱시켜 주는 건 순수한 열망으로 몸부림치던 그들의 얼굴과, 그들과 마신 몇 잔의 술이야……. 난 모든 것을 버리고 진실로 자신을 찾고 싶었어……. 평생 외롭게 살더라도 어쩌면 이젠 내 삶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송강의 얼굴에 고뇌의 그림자가 지나간다.

「한 판의 바둑에서 낙관도 금물이나 비관도 금물이다. 박 사범, 자넨 학교로 돌아가. 방황이 젊음의 특권이긴 하나 방황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어. 힘들겠지만 부닥치고 헤쳐 나가야 해. 인간이란 어차피 어딘가를 향해 갈 수밖에 없는 존재야.」

그리고 송강은 염불하듯 중얼거린다.

「……여기 줄이 하나 있다. 가늘고 허약해 곧 끊어질 듯하지만 어떤 두터움이나 세력에도 견딜 수 있고, 어떤 슬픔이나 외로움도 이겨 낼 수가 있어. 그것이 진정한 고수의 행마야…….」

송강이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민수가 송강을 붙잡는다. 송강은 민수를 뿌리치며 흐느적흐느적 술집 밖으로 걸어 나간다. 민수가 뒤따라 나가 송강을 부축한다. 거리에서 송강이 민수를 끌어안았다. 밤바람이 그들 옆으로 지나갔다.

「잘 있어.」

송강은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밀려들어 갔다. 길 건너편 레코드 가게에서 애조를 띤 노랫가락이 흘러 나온다.

여기에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가슴에 기대어 수줍던 그 모습이.

세월은 흘러서 당신은 떠나고   남겨진 마음에 눈물이 흐르는데…….

훗날 충호를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송강의 후일담은 이러하다.

송강은 세 들어 살던 전셋돈의 일부를 마공의 아내에게 치료비로 내놓고 식솔들을 데리고 남해안의 어떤 섬으로 떠났다고 했다.

결국 송강과 마공, 그들은 모두 떠났다.

얼마 후 민수가 기원에 들렀을 때 기원 우측 벽면에 삼류 시인 이병태가 시를 한 수 적어 놓았다.

아무리 봐도 어디서 베낀 것 같은데 삼류 시인은 한사코 자작시라 우겼다.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마공(魔功) 이제 가면

어이 올거나.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는 이미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잘 가. 민혜…… 잘 가……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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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세요. 오로 회원님들.

이번 회로 변방 기원이야기를 마칩니다.

저도 다시 이 글을 보니 불현듯이 그 시절이 너무 그립습니다.

충호형, 송강형. 이병태선생(이 시인) 등, 그 기원 사람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 후

이 시인께선 병으로 타계하셨다는 말을 풍문에 들었고 송강형은 어떻게 연락이 되어 십 수년 전, 같이 술을 한 잔 한 기억이 납니다.

책에 소개 되지 않은 그 기원 출신의 사람들을 다른 도시 다른 기원에서도 우연히 만난 적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 또한 다 지나간 일입니다.

이제 기원이란 장소는 저자거리의 한 모퉁이에서나 간혹 보이는 낯설은 대장간처럼 한 시대의 유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기원에 가 보았더니 기원은 단란주점으로 변했더군요.

감사합니다.

조 세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