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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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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51회] 11부 파문당하는 제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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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운이 백상훈 집을 찾은 것은 순전히 바둑을 두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 건너온 두 전문기사 야마다(山田)와 기무라(木村). 조선의 국수급 인사들을 한칼에 쓸어 버린 그들은 그때 백상훈의 집에서 기거를 하고 있었다. 남작의 지위에 걸맞는 화려한 서구식 응접실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상면했다. 「나는 조동선이란 사람이오. 당신들과 기예를 겨루기 위해서 왔소.」 뻐드렁니가 앞으로 튀어나온 30대 초반의 야마다가 두루마기를 걸친 늙은 자운을 보고 비웃었다. 「조동선? 별로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군. 우리는 아무하고나 바둑을 두지 않소.」 반백인 자운의 머리칼이 천장으로 곤두섰다. 「그대들이 어찌 조선 국수들의 이름을 다 안다 할 수 있는가!」 자운의 기세가 워낙 호기등등해서인지 야마다가 머쓱해했고 옆에 있던 전형적인 사무라이 상을 한 기무라가 대신 나섰다. 「좋소이다. 노인장은 제가 상대해 드리리다.」 기무라가 선선히 대국을 응낙하여 곧바로 바둑이 시작되었다. 자운은 초반부터 배수의 진을 치고 판을 힘겹게 짜 나갔다. 육신은 늙었으나 정신은 젊은 사람 못잖은 기개와 패기가 있었고, 나라의 체신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대항했다. 얼굴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시종일관 침울했으며 간혹 두 눈을 부릅뜨고 반상을 쏘아 보는 그의 얼굴은 망국의 한을 품은 투사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바둑은 분노와 모멸, 적개심이 뒤얽히면서 100여 수 가까이 흘러갔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자운의 의기는 드높았지만 그것을 받쳐 주는 기량에 있어서 만큼은 기무라에 미치지 못했다. 노구의 몸으로 최선을 다해 승부에 임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승부는 한쪽으로 기울어 갔다. 평사가 보기에 중반에 들어 한두 번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기회를 살리기에 이미 쇠퇴한 자운의 기력으로는 승부를 뒤집기가 용이치 못한 일이었다. 종반에 접어들어 집은 집대로 부족한 가운데 자운의 대마가 기어이 위험한 지경에 다다랐다. 자운은 전멸을 각오하고 처절하게 버티었으나 그의 마지막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기무라의 튼튼한 동아줄은 서서히 자운의 목줄을 죄어 들었다. 마침내 대마의 죽음이 선명하게 바둑판 위에 드러난 순간 지금까지 한 점 떨림 없이 꿋꿋하게 반상을 지키던 자운의 몸이 휘청거리며 벽 쪽으로 쓰러진다. 자운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식은땀을 흘리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평사가 황급히 자운을 부축하여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반 혼수상태에 빠진 자운에게 평사는 물을 먹이고 팔 다리를 주무르며 그의 의식이 회복되기까지 정신없이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한참 후에야 자운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간신히 고비를 넘긴 자운을 보자 평사는 겨우 안도한다. 자운이 평사의 손을 잡으며 어렵게 입을 뗀다. 「면목이 없네.」 혼신의 힘을 다한 노 기객의 말에 평사는 목이 멘다. 그때 대국을 했던 옆방에서 기무라와 야마다의 대화가 들린다. 「그 노인네 미련하기는 아 대마가 살아도 끝난 바둑인데 그만 돌을 던져야지. 조센징들은 다 그런가? 승부에 미련이 많아.」 「그 왜 학골 선기재의 우석이란 사람 말일세. 그 양반 우리에게 작살나고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더군.」 「그 늙은이나 이 늙은이나 똑같아. 늙으니까 승부에 노욕이 생기는가.」 웃음소리에 섞여 그들의 말이 계속 들려 온다. 「그나저나 이번 일로 조선인들은 우리 대일본제국보다 열등한 민족이라는 게 바둑에서조차 증명된 셈이니 보람이 있었네. 게다가 수입도 수월찮았고…….」 「어쨌든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바둑의 종주국은 일본이라는 것을 심어 줬으니 그것도 성과라면 성과지.」 평사가 자리에서 일어날 기세다. 「하지만 여목이라는 늙은이를 아직 꺾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안타깝군.」 남작이 그들의 말에 제동을 건다. 「내가 듣기에 여목이란 사람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하던데, 자네들은 여목을 상대로 확실한 승리를 장담하는가?」 「이보시오 남작님. 이제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으면서 무슨 말씀이시오. 자칭 타칭 국수라고 소문 난 사람들이 어디 우리에게 힘이나 한 번 씁디까? 여목 그 사람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소. 그 바둑이 그 바둑이지.」 마침내 평사가 일어섰다. 평사는 굳은 얼굴로 돌아서서 그들이 있는 방문을 확 열어젖혔다. 「내가 당신들을 상대해 주지 !」 난데없이 평사가 치고 들어오자 야마다와 기무라가 놀라 평사를 바라본다. 그들은 평사를 그냥 자운을 따라온 사람쯤으로 치부했었다.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던 사람이었기에 그들로서는 전혀 예상 밖의 도전이었다. 「넌 누구냐?」 야마다가 물었다. 「스승을 욕하는 자들은 용서할 수 없다.」 기무라의 눈이 번쩍 뜨인다. 「너의 스승이 여목이냐?」 「그렇다.」 「네가 진정 여목의 문하란 말이지.」 「그렇다.」 「요시! 잘 만났다. 내 당장 요절을 내 주겠다.」 바둑판을 가운데 두고 평사와 기무라가 마주 앉는다. 「그 전에 돈을 걸어라 ! 조선놈들은 못 믿겠다. 하나같이 형편없는 솜씨로 큰소리만 쳐대니.」 기무라가 돈을 걸 것을 요구하자 평사는 난감했다. 승부의 액수가 모르긴 몰라도 작은 금액이 아닐 터인데 평사에게 그런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평사가 머뭇거리자 옆에서 사태의 추이를 보고 있던 남작이 나선다. 「자네들 여목을 상대로 두어도 확실히 승리를 장담한다고 했겠다?」 「그렇소.」 야마다가 자신 있게 대답하자 남작이 장난스럽게 말한다. 「저 친구 판돈은 내가 대지.」 ***************************** 이번 주부터는 매주 일요일 연재 쉽니다.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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