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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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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50회] 11부 파문당하는 제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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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장에 돌아와 보니 자운(紫雲)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예전부터 평사의 자질을 높이 사서 평사에게 깊은 관심을 주던 사람이었다. 자운 선생의 본명은 조동선(趙東宣)이며 여목 스승의 절친한 후배로서 다방면에 걸쳐 대가의 호칭을 듣는 문사였다. 특히 바둑과 대금, 그리고 사군자 중 매화에는 탁월한 경지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사대부 집안의 출신으로 그의 조부는 대사헌까지 지낸 명문이었지만 조부가 철종 때 안동 김씨의 모함으로 강화에서 귀양 도중 사약을 받았다. 대원군이 조부를 복권시켜 주었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사후에 취해진 조치였고 안동 김씨에게 한번 받은 상처는 치유될 길이 없었다. 그는 평생을 부운처럼 떠도는 사람이었다. 성격이 활달하고 정이 많았으며 한 군데 얽매이기를 싫어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히 그에겐 따라다니는 일화가 무성했다. 그 중 한두 가지를 소개하면, 자운 선생이 소년 시절, 그는 전라도 나주에 있는 외가에서 몇 년 기거를 했다. 자운이 어린 나이임에도 여러 가지 악기를 능숙하게 다룬다는 소문이 인근에 번지자 나주에 기거하고 있던 대금의 명인 영파(永波) 선생이 소년 자운을 불렀다. 한번 대금을 불면 죽어 가는 잎에도 생기가 돌고 메마른 꽃이 슬피 운다는 영파 선생이었다. 영파 선생은 소년 자운에게 음의 재능을 시험해 보고자 거문고 탄주를 시켰다. 자운이 그에 응해 한 곡 탄주하였는 바 진정 그 재기가 심상치 않았다. 영파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음률을 감상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자운이 탄주를 끝내고 당돌하게도 영파 선생에게 대금을 청했다. 영파 선생이 소년치고는 뱃심이 있는 놈이라고 생각하며 그 청을 받아 대금을 한 곡 연주했다. 대금을 불다가 영파가 자운을 보니 꼭 자기처럼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음률에 빠져 있는 품세였다. 연주가 끝나고 영파가 자운에게 물었다. 「소리가 어디에 있느냐?」 자운이 당돌하게 물음에 답했다. 「소리는 먼 곳에 있습니다.」 영파는 어린 자운의 상을 본다. 대금이라는 악기가 단소보다는 음이 부드럽고 장중한 데다가 자신의 곡은 선비의 기상과 힘을 표현하고자 했는데 그 음의 해석이 자신의 의도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영파가 다시 자운에게 물었다. 「소리란 무엇이냐?」 자운이 곧바로 대답했다. 「소리란 흘러가는 것입니다.」 영파가 혀를 찼다. 「재주는 타고났으나 부초 같은 삶이로고！」 영파는 자운에게 3년간 대금을 가르쳤다. 자운은 영파의 예언대로 평생을 한 군데 뿌리 박지 못하고 떠돌며 살았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자운이 행려(行旅)중 평양에 있는 지우를 찾아가다가 어느 주막에서 하루를 유하게 되었다. 긴 여독 때문인지 자운은 그만 앓아 눕게 되었다. 며칠 동안 심하게 앓았는데 그 주막의 젊은 주모가 자운의 번듯한 외모에 반하여 병간호를 극진히 했다. 자운은 몸이 낫자 그 주모의 간병에 보답하는 뜻으로 대금을 한 곡 불어 그 노고를 치하했다. 푸른 달빛을 깨치고 울려 퍼지는 대금의 소리는 구슬프고도 애절하여 주모의 심금을 울렸다. 소리가 끝나자 주모가 자운에게 말했다. 「어르신. 쇤네 소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무엇이오.」 「며칠만이라도 좋으니 어르신을 모시고 싶습니다.」 자운이 여인의 눈을 보니 뜻밖에도 그 여인의 심정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자운은 여인과 달포 남짓 정을 나누었다. 그 주모에게는 평소 가까이 지내는 샛서방이 있었다. 인근 마을에 살면서 주모와 정분이 깊었던 샛서방이 소문을 듣고 분기탱천하여 연놈을 때려 죽인다고 주막으로 쳐들어왔다. 샛서방이 당도해 보니 마침 자운이 평상 위에 걸터앉아 대금을 불고 있었다. 교교한 달빛 아래서 단정하게 앉아 있는 자운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았고 그 손끝에서 울려나는 소리는 천상의 음률 같았다. 샛서방이란 자도 평소에 풍류깨나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금소리에 취해 그만 자기가 가져온 몽둥이를 던져 버리고 자운에게 한 곡을 더 청하게 되었다. 자운은 영문도 모른 채 그의 청에 따라 한 곡을 더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샛서방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원래 저 여자와 오랫동안 정분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주막으로 쳐들어온 목적을 이야기하며 자운의 대금에 반해 몽둥이를 던졌노라고 실토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자운이 벌컥 화를 냈다. 「빈 배에 주인이 어디 있더냐.」 「그렇기는 하지만 배는 제가 먼저 탔습니다.」 「네 이놈！ 배를 탔으면 노를 저어야지 풍류깨나 한다는 놈이 흘러가는 빈 배가 처량치도 않더냐！」 자운의 호통에 샛서방은 혼비백산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평사는 자운 선생을 존경했다. 자운 선생은 도장에 올 적마다 문하생들과 격의 없는 지도대국을 가졌다. 자운 선생의 기품은 그의 기질처럼 자연스럽고 유연했으며 대세를 판단하는 눈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기인(奇人) 자운. 그가 개성에서 내려온 이유는 내로라 하는 조선의 국수들이 일본서 건너온 두 전문기사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비분강개하여 그들과 승부를 결하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자운은 평사를 데리고 백상훈 남작의 집을 찾았다. 백상훈은 조선에서 손꼽히는 친일파 거두였다. 그의 일본에 대한 충성심과 정치적인 처세술은 항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일본 군부는 그에게 특별히 남작의 작위를 주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대다수의 조선인들에게 있어 지탄의 대상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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