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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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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47회] 10부 여목도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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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목은 초로의 몸으로 일경들의 잔인한 고문을 신음 한마디 뱉지 않고 받아 넘겼다. 일경들은 조서에 다음과 같이 단 한 줄로 기록하였다. ‘1급 불령선인. 개전의 여지가 전혀 없음.’ 설숙은 한달음에 조부 소담을 찾아갔다. 급보를 받은 소담은 그 길로 상경하여 백방으로 여목의 구명 운동을 벌였다. 소담은 명문 대가의 후손으로 아직도 그 후광이 남아 있었다. 소담이 백방으로 뛰어다닌 보람이 있었던지 여목은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여목이 도장으로 돌아오자 그 동안 침체에 빠졌던 도장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여목은 전과 다름없이 문하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며 일상에 전념하였다. 누구도 3·1운동 때 왜놈의 총칼에 쓰러진 동문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모두의 가슴에 동문의 가슴을 관통한 총알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평사가 여목도장에 입문한 지도 어언 몇 년이 지났다. 여목은 지병인 속앓이와 고문이 남겨 준 고질적인 무릎 관절로 가끔 봉화의 소담댁에 들러 요양을 했다. 그 동안 문하엔 두 명의 제자가 떠났고 새로 몇 명이 입문했다. 도장은 대체로 평온했다. 그 중에 큰 변화가 있었다면 벽송의 반면 수정이었다. 여목은 벽송이 순장 바둑판인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비록 벽송이 역사적인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는 크다 할 수 있겠으나 바둑판은 그것이 실전용으로 쓰일 때라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순장 바둑판이라 해서 못 두라는 법은 없지만 그 실효성이 떨어짐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2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반면의 옻줄이 일부 훼손된 부분도 있었기에 반면 수정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반면 수정을 맡길 수는 없었다. 대패로 미는 작업은 고도의 숙련을 요구했다. 넓은 바둑판을 한 부분도 높고 낮음이 없이 고르게 대패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옻줄을 입히는 과정은 더욱더 어려웠다. 좋은 줄을 치기 위해서는 고도의 숙련 이전에 흐트러지지 않는 정심(定心)이 필요했다. 일본 사람 중에는 기반사라 하여 특별히 바둑판을 만드는 전문 직업인이 있었다. 그러나 여목은 여하한 경우가 오더라도 일본인에게 반면 수정을 맡길 마음은 없었다. 여목은 은밀히 벽송을 손질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했다. 물색 끝에 경기도 수원 땅에서 많은 바둑판을 만들어 보급한 경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냈다. 우종구(禹宗久)라는 이름을 가진 그 노목(老木)은 그때까지 손수 제작한 바둑판이 200여 개가 넘으며 기반을 제작하는 기술만은 조선인으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수원 땅까지 직접 찾아가서 우종구 노인이 만든 바둑판을 본 여목은 그에게 벽송의 손질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여목이 우 노인의 작업실엘 들렀을 때 뜻밖에도 우 노인은 여목의 내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늘 선생께서 찾아오실 줄 알고 있었소.」 「어째서 그렇습니까?」 「약 한 달 전부터 어떤 노인이 꿈속에 자꾸 나타나는 것이었소. 노인은 나에게 매번 똑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조만간에 어떤 사람이 당신을 찾아갈 것인데 일을 하는 것은 허락을 하되 2년을 기다려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소. 어젯밤에 그 노인이 또 나타나더니 ‘내일 그분이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어떤 조건을 내세워도 2년 후에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하였소. 너무나 같은 꿈을 생시처럼 여러 번 꾸었기에 꼭 선생이 오늘은 찾아올 걸로 믿고 있었소이다.」 여목은 꿈속의 노인이 벽송을 만든 김달수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벽송의 문제로 꿈속에 나타날 사람은 김달수밖에 없었다. 그 길로 여목은 우 노인을 데리고 상경하여 도장으로 돌아왔다. 벽송을 씌운 덮개를 벗기자 우 노인은 한참 동안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벽송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우 노인이 벌떡 일어나더니 바둑판을 향해 큰절을 두 번이나 하였다. 「왜 바둑판에 절을 하시오?」 여목이 물었다. 「이 바둑판은 건조 과정에서부터 제작 과정까지 사람의 혼이 실린 명반입니다. 물론 보관 상태도 좋았겠지만 제작 후 200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원형을 보존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오. 게다가 이 반면의 평형(平形)은 가히 명인의 숨결이 숨어 있소이다. 그리고 옻줄을 입힌 솜씨도 세월은 흘렀으나 처음의 옻줄을 추정하건대 이 또한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듯한 생각마저 드오. 이제야 그 노인이 왜 2년간을 기다리라고 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우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2년 후에 다시 오겠노라 하며 수원으로 내려갔다. 약속대로 2년이 지난 후 우 노인은 다시 여목도장을 찾아왔다. 그리고 손수 정갈한 작업실을 만든 후 매일 목욕재계하고 제단을 만들어 기도하기를 백일을 하였다. 백일기도가 끝난 후 우 노인은 처음으로 신중하게 대패질을 시작하였다. 약 2밀리미터를 고르게 깎아 내는 정교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내려온 종가의 비법으로 정성 들여 옻줄을 입혔다. 여목은 사람들에게 작업장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금족령을 내렸다. 그렇게 정성 들여 작업하기를 두 달 만에 벽송은 재탄생하게 되었다. 그 동안 연락을 받고 경성에 올라온 소담과 여목 이하 문하생들이 보는 앞에서 새 생명을 얻은 벽송이 처음으로 그 얼굴을 내밀었다. 방 안은 비자나무의 은은한 향기로 가득 차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옻줄은 세상의 모든 어둠을 빨아들인 암흑의 제왕처럼 도도히 모습을 드러냈다. 여목과 소담의 가슴에는 감동의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우 노인은 말했다. 「지난 2년간을 하루도 편안하게 자지 못했소이다. 좋아하던 술도 끊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목욕재계했소. 좋은 옻줄을 치기 위해 다시금 기구를 만드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기구를 손에 능숙하게 익히기 위해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연습을 했소이다. 내 일생에 영원히 다시는 이런 명반에 손을 댈 기회는 없을 것이오.」 우 노인은 사례를 하겠다는 여목과 소담의 호의를 뿌리쳤다. 「돈을 받고 작업을 하려고 했으면 벌써 했소이다. 이런 명품에 사사로운 욕심을 가지는 것은 명반에 대한 예가 아니오. 오히려 당신들이 이 늙은이의 평생 소원을 풀어 주었소.」 우종구 노인은 이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의 뒷모습은 당당한 장인의 품격으로 빛나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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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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