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ng){kind=logo}
나도작가
|
작가의 말[46회] 10부 여목도장 (1)
|
|
| 바둑판 위에는 이미 여러 수가 전개되어 있었다. 「이 한 수는 분명히 요혈에 속한다. 물론 백의 어깨 짚는 수가 그릇되다 할 순 없으나 이 수로 선수가 기약되는 것은 아니다. 선수를 빼앗긴다는 것은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당하는 것과 같다.」 여목은 그 변화를 설명한 후 동일한 조건에서 다른 곳에 한 수를 놓았다. 「여기에 착점한 한 수는 사혈에 속한다. 전단이 너무 급속하게 벌어짐으로써 잘못하면 여기에서 승부의 윤곽이 드러날 수도 있다. 바둑은 인생과 같이 긴 승부이다. 물론 좋은 결과를 얻어 우세를 점하면 더 이상 바랄 바가 없지만 조급하게 서둘러 형세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사혈을 건드릴 때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 한다. 기예를 쫓는 자는 기나긴 승부에 있어 단 한 수에 결정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여목 스승의 말은 계속 이어졌고, 스승의 말을 새겨듣는 평사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도장의 분위기는 자유스러운 편이었다. 그러나 대국에 들어가면 제자들 사이에는 불꽃 튀는 경쟁이 벌어졌다. 평소의 교분과는 관계 없이 각자 최선을 다해 대국에 임했고 일단 승부가 가려지면 복기를 하며 진지하게 국후 검토를 하였다. 여목도장은 자애와 규율이 적절히 조화된 그야말로 이상적인 도장이었다. 문하생들은 가끔씩 여목의 허락을 얻어 바깥세상을 구경하기도 했고 경성 안에 집이 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그런 평온한 여목도장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평사가 도장에 몸을 담은 그 다음해, 헤이그 밀사사건을 지시했던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퇴위된 지 햇수로 12년 만에 승하하였다. 「왜놈들이 고종을 독살하였다.」 이런 소문이 전국에 나돌았다. 인심은 극도로 흉흉해졌으며 조선의 피 끓는 젊은이들은 그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드디어 고종의 국장을 며칠 앞둔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만세 운동이 터졌다. 파고다 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국을 독립의 열기로 몰고 갔다. 피 끓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소년, 소녀, 나이 든 노인들까지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여목도장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평소 여목의 가르침을 뼛속 깊이 새겼던 문하생들은 모두 거리로 뛰어나와 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 워낙 만세운동의 규모가 크고 그 열기가 뜨거웠기 때문에 모두들 독립이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보신각 대로변에서 여목은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비장한 자신의 심경을 토했다. 「오늘의 이 만세운동에 즈음하여 모두가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 한 목숨을 바친다는 결사의 정신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살아도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니며 죽어서도 후세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조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젠 일어서야 할 시점이다. 비록 왜놈들의 총칼이 무섭다 하나 그것이 무서워서 이 시점을 놓치면 실기하고 만다. 독립은 반드시 우리의 피와 땀으로 얻어야 한다. 수없이 많은 이 땅의 정령들이 죽어 갈 것이나 자신의 피를 흘리는 걸 두려워하여 승부를 결하지 못하면 조선의 아들이 아니다.」 여목은 그렇게 말하며 만세운동의 집회에 직접 문하생들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그러나 총칼로 무장한 일본 군대는 무자비한 진압을 강행하였다. 일본은 탄탄한 국제적 지위를 등에 업고 무차별 사격과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일본의 그 잔인한 만행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조국의 산하에 그 피를 뿌렸다. 이 전대미문의 학살은 수천 년이 지나도 지워질 수 없는 통한의 상처를 조선의 가슴에 남겼다. 만세운동의 상처는 여목도장도 쑥밭으로 만들었다. 문하생 중 한 사람이 현장에서 왜경의 총격을 받고 즉사하였고 두 명이 총상을 입었다. 또 다른 두 사람은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고 끝까지 만세를 부르던 여목은 설숙과 또 한 사람의 문하생에 의해 겨우 도장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지목된 여목을 체포하기 위해 순사들이 도장으로 들이닥쳤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분노에 떨고 있던 여목은 의연한 자세로 일경을 맞아들였다. 「당신이 이상순(李常舜)인가?」 여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은 나를 여목이라 부른다.」 「건방진 늙은이 같으니…… 체포해라!」 일경의 지휘관이 순사에게 명령했다. 「무슨 죄목인가?」 「코노야로, 몰라서 묻는가? 어제의 폭동을 주도했던 죄이다. 대일본제국에 반기를 든 용서받지 못할 죄이다.」 여목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도장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일경을 보는 순간 여목의 눈에서는 서슬 푸른 기운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일경은 그 무서운 안광을 접한 순간 움찔해서 걸음을 멈추었다. 「폭동? 무엇이 폭동인가. 나라를 잃은 사람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세를 부른 것이 폭동인가? 용서받지 못할 죄라니? 무엇이 용서받지 못할 죄인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것은 너희, 총칼로 조선 땅을 점령하고 수많은 약탈을 자행하며, 또한 헤아릴 수도 없는 이 땅 젊은이의 피를 금수강산에 뿌린 너희들이 저지른 것이다. 내 너희 일본인들에게 고하노니 지금 당장 총칼을 거두고 이 나라 죄 없는 백성에게 머리 숙여 백 번 천 번 사죄하고 너희들 섬나라로 돌아가라. 내 장담하노니 너희들이 뿌린 이 피의 값은 누대에 걸쳐 그 업보를 받을 것이다. 그 죄값은 하늘도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만약 하늘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그리하고야 말 것이다 !」 그 엄청난 꾸짖음에 일경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수습한 일경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여목을 체포하려 했다. 남아 있던 문하생들은 결사적으로 여목의 앞을 가로막았다. 개머리판이 난무하며 문하생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평사도 죽을 각오로 일경을 가로막았다. 불과 10대의 어린 소년이 일경들 앞을 가로막자 일경들이 잠시 주춤했다. 다시 여목의 추상 같은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부 물러섰거라 !」 여목의 그 한 마디에 문하생들은 행동을 멈추었다. 「내 스스로 걸어갈 것이니라 ! 내 죄가 없음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2천만 동포 모두가 알 것이다 !」 여목은 그렇게 스스로 일경에게 잡혀갔다. | |
|
밥시기랑
한강수타령
서울 중구 퇴계로27길 28(충무로3가) 한영빌딩 6층 [사업자정보확인]
제호 : 사이버오로 I 발행인 : 곽민호 I 편집인 : 정용진 I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아02753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병준 I 발행일자 : 2013년 7월 26일
E-mail:oper@cyberoro.com Tel:02-2285-6950 (상담시간10:00~14:00) Fax:02-2285-6955
Copyright ⓒ 세계사이버기원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