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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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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44회] 9부 하늘이 내린 제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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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도청의 수사는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김달수에게도 의심의 눈길이 쏠렸으나 김달수가 딱 잡아떼자 사건은 유야무야 제자리를 맴돌았다. 김달수는 오직 궁중에서 올 소식만 초조히 기다렸다. 유병로가 없는 이상 궁중 진상품은 이제 자신의 몫이었다. 애타게 기다리는 소식 대신 어느 날 포도청의 군졸들이 집으로 들이닥쳐 김달수를 잡아 갔다. 김달수는 완강하게 버텼다. 모진 고문 속에서도 김달수는 자신의 물건이 진상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며칠 후 포도청에서 유병로를 죽일 때 사용한 김달수의 칼이 나왔다. 피 묻은 한 자루의 칼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다. 「네놈의 아내가 스스로 이 칼을 가져왔다. 이래도 네놈이 잡아떼겠느냐!」 「아니오! 그럴 리가 없소!」 김달수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네놈 아내는 어제 목을 매 자결했다.」 김달수는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형조에서 판결한 김달수의 죄목은 살인죄로 인한 참수형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김달수는 조용히 죽을 날만 기다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형의 집행은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도 옥으로 사람이 찾아왔다. 중추원 부사 댁의 청지기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은 김달수에게 의외의 제안을 했다. 우연히 600년 묵은 비자 원목을 한 둥치 구한 부사가 그 나무로 희대의 명반을 만들고자 하는데 그 나무를 다룰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나무를 재단하고 완벽하게 옻줄을 칠 수 있는 사람은 죽은 유병로와 김달수 당신밖에 없는데 한 사람은 죽고 없으니 자연 남은 사람은 당신밖에 없노라 했다. 부사는 그 사실을 알고 형조판서에게 은밀히 부탁하여 김달수의 형 집행을 미루고 있었으며, 만일 그 나무로 후세에 길이 남을 명반을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최소한 바둑판이 완성될 때까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안절부절 못하던 김달수에겐 참으로 뜻밖의 제안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수락을 했지만 비자 원목 둥치를 본 김달수는 이내 비자나무에 젖어 들고 말았다. 김달수는 울었다. 명공은 누구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거늘 오직 하나 영목(靈木)을 대할 때는 예를 갖춰야 한다는 선친의 말이 떠올랐다. 그 원목으로 천하 제일의 명반을 만들고자 작심한 김달수의 투지가 어느덧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5년만 기다려 주시오. 그렇게만 해주시면 그때 대감께서는 천하 제일의 명반을 자손만대에 물려주는 첫 번째 주인이 될 것이오.」 은밀하게 부사와 회동한 자리에서 김달수는 그렇게 호언장담했다. 부사는 김달수의 말을 믿었다. 김달수는 하인 한 명과 더불어 원목을 걸머지고 소백산으로 떠났다. 자신이 언젠가는 쓸모 있게 사용하리라고 기억해 두었던 5백 년 묵은 영삼(靈蔘)이 난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산삼은 본래 지기(地氣)가 높고 한(寒), 습(濕), 열(熱)이 침범하지 못하는 영험한 자리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김달수는 천하 제일의 명반에 영묘한 지기를 불어넣고 최적의 상태에서 자연 건조시키기 위해 삼밭을 찾은 것이었다. 김달수는 그 땅에 차양을 치고 비자목을 건조시키기 시작했다. 나무로 건조시키는 동안 김달수는 끊임없이 결의 원리를 터득하고 조각에 몰두했다. 조금만 칼질이 빗나가도 김달수는 가차없이 목각을 불 속에 처넣었다. 3년이 가까워져서야 김달수는 그 옛날 유병로가 말했던 ‘순’의 도리가 생각났다. 다음날부터 김달수는 완성된 형상에 옻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붓이 조금만 미끄러져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였다. 조각을 하고 옻으로 그림을 그리기 다시 2년이 다 되어 부사와의 약속 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김달수는 드디어 완전한 하나의 칠기 조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때서야 김달수는 바둑판의 제작에 착수했다. 바둑판 제작은 건조하는 과정을 우선으로 한다. 통상 3년에서 4년 이상 자연 상태에서 완벽하게 건조시키는 것을 제일로 친다. 김달수는 더 이상 건조될 수 없도록 마른 비자 원목을 조심스럽게 재단했다. 재단된 원목의 다음 과정은 대패질이었다. 한 점의 어긋남도 없는 완전한 수평은 눈의 정확도에 달려 있다. 대패질 후에 남은 과정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옻줄을 입히는 일이었다. 김달수는 이 모든 과정을 일호의 빈틈이 없이 수작업으로 해 나갔다. 피를 말리는 작업이 연일 계속됐다. 김달수는 바둑판에 순(順)의 숨결을 불어넣고 자신의 혼을 불살랐다. 바둑판과 씨름한 지난 3개월 동안 김달수는 진정한 장인이었다. 생사를 초월해 오직 명반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김달수가 완성된 바둑판을 들고 나왔을 때 김달수는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온몸의 정기가 한 점 남김없이 빠져 나간 허깨비와 같은 형상이었다. 뜻밖에 부사가 손수 청지기를 데리고 그 먼 산골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완성된 기반을 본 부사는, 「오！ 정녕 천하 제일의 명반이 아닌가！」 부사가 김달수의 손을 잡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나 피골이 상접한 김달수의 얼굴에선 어떤 감정의 빛도 찾아볼 수 없었다. 헤어지기 전 부사를 수행해 온 청지기가 김달수에게 넌지시 귀띔을 했다. 「자네 아들이 치악산에서 화전민이 되어 살고 있네. 그곳으로 가게. 이후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말게. 이것은 내 뜻이 아니고 대감마님의 뜻일세. 부디 명심하게.」 바둑판을 메고 떠나는 부사 일행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김달수도 서서히 하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달수가 찾아간 곳은 근처 관아였다. 스스로 관아에 걸어 들어간 김달수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한양으로 호송됐다. 도착한 지 보름 만에 김달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달포가 지나 부사는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에 불러 바둑판을 처음 공개했다. 이리저리 바둑판을 구경하던 한 식객이 바둑판 밑에 새겨진 벽송이란 글씨를 발견하고 부사에게 물었다. 「벽송이라…… 푸른 솔이란 말인데, 무슨 뜻입니까?」 「벽송? 어디 한번 보세.」 당황한 부사가 바둑판 밑을 살펴보았다. 과연 바둑판 밑에는 정교한 솜씨로 벽송이라는 글씨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부사는 청지기를 불렀다. 「벽송이 김달수의 아명이더냐?」 청지기가 대답했다. 「벽송은 김달수의 호가 아닙니다. 벽송은 김달수의 칼에 맞아 죽은 목공의 명인 유병로의 아호입니다.」 「유병로라…….」 부사가 깊이 탄식했다. 이미 불귀의 객이 된 초췌한 김달수의 얼굴을 떠올리며 부사의 눈에 비로소 이슬이 맺혔다. 벽송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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