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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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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32회] 7부 구한말의 대국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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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석정은 대대로 내려온 무인 가문의 딸이었다. 석정이 일곱 살 나던 해 우연히 석정의 아버지가 그녀의 기재를 발견하고 여자로서는 드물게 바둑 공부에 전념시켰다. 어릴 적 석정에게 있어 아버지의 모습은 우상이었다. 몸집이 큰 무장답지 않게 석정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였으며 가정을 위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나무랄 데 없는 남아였다. 그러나 그렇게 존경했던 아버지는 청일전쟁의 발발로 조선에 파견되어 전쟁의 패배와 함께 전사하였다. 어린 왕석정은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겨야 한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 남는 것이다. 그때 석정의 나이 열한 살이었다. 석정의 바둑이 여인답지 않게 대담하고 전투적인 것은 가문의 피가 무인인 탓도 있었지만 어릴 적 겪은 아버지의 죽음에도 원인이 있었다. 어머니의 친정이 부호였던 관계로 석정은 어려움 없이 바둑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열아홉 살의 나이로 천진(天津)과 북경을 오가던 상인인 남편과 결혼하여 북경에 자리잡았다. 남편은 개화된 사람이었지만 여색을 지나치게 밝혔고 아편 중독자였다. 여색과 아편에 찌든 남편은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스물네 살에 과부가 된 석정은 북경에 눌러 앉아 바둑 속에 묻혀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주위 사람의 천거로 원세개의 집을 출입하게 되었고 여목을 만난 것이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던 석정은 옷을 차려 입고 여목의 숙사를 찾아갔다. 새벽 한 시가 넘었으나 여목의 방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석정은 여목의 방문을 두드렸다. 이내 가라앉은 여목의 음성이 들려 왔다. 「누구시오?」 「어르신, 접니다.」 방문이 열리며 여목의 단정한 모습이 불빛 속에 나타났다. 「야심한 시각에 어인 일이오?」 「한 가지 걸리는 일이 있어서 늦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여목은 잠시 석정을 보다가 몸을 한쪽으로 비켰다.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방에 들어선 석정의 눈에 바둑판이 들어왔다. 그것은 낮에 자신과 두었던 바둑이었다. ‘이 사람의 바둑이 그렇게 강한 이유 중의 하나는 끝없이 노력하는 이런 자세였구나.’ 석정은 내심 이렇게 중얼거렸다. 최소한 자기의 눈에 여목의 바둑은 인간으로서는 더 오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런데도 여목은 끝없이 노력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불현듯 자신의 안이한 바둑 수업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그래, 무엇이 그렇게 부인의 심기를 미편하게 하였소?」 「어르신께서 바둑이 끝난 후 물어 온 그 질문 때문입니다.」 「아! 현재 북경에서 부인의 기력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가 하는 그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에 대한 답은 부인이 이미 하지 않았소. 대략 다섯 번째라고 말이오.」 「제가 궁금해하는 것은 왜 그런 이야기를 제게 하였나 하는 점입니다.」 「…….」 「제가 너무 당돌한 질문을 했나요?」 「……아니오. 내가 중국 땅에 올 때는 대인의 부르심도 있었지만 대국의 기예를 접하고 배우려는 의도가 있었소. 막연하게나마 바둑의 발상지인 중국이 조선의 바둑보다는 한 수 위일 것이라 생각했소. 막상 부인과 대국을 해 보니 그런 나의 생각이 더욱 옳게 느껴졌소. 그래서 나는 이 넓은 대륙에서 또 다른 고수들을 만나 바둑을 두고 싶은 것이오. 그러나 이런 문제를 대인에게 일일이 부탁하기도 쉽지 않고…….」 여목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석정은 여목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 말했다. 「현재 북경에서 일인자로 불리는 사람은 상관숭(上官崇) 선생입니다. 조만간 제가 그분과의 대국을 주선해 드리겠습니다.」 「…….」 「저 혼자 짐작하는 것이지만 저는 어르신의 생각을 알 듯도 싶습니다. 만약 상관숭 선생과의 승부에서 이긴다면 그것으로 어르신의 행보가 멈추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 「어르신에게 하나의 소청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오, 부인.」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고…… 상관숭 선생과의 승부에서 어르신이 이기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 「밤이 늦었습니다. 이만 돌아가야겠습니다.」 방문을 나서며 석정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저는 지금 부인이 아닙니다……. 편히 쉬십시오.」 상관숭은 60대의 연령에 걸맞지 않게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혼탁하지 않은 눈을 가졌다는 것은 수양의 깊이를 말해 주는 것이었다. 조선이란 나라에서 온 한 이름 없는 기객과 북경의 일인자 상관숭의 대국이 이루어지기는 실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 대국이 이루어지기까지 석정의 노고가 컸음은 말할 나위 없었다. 여목과 수인사를 나눈 후 바둑판에 마주 앉은 상관숭이 석정에게 물었다. 「그대가 정선으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말이 진정 사실이오?」 「예.」 상관숭은 여목에게 제안했다. 「그렇다면 호선으로 합시다.」 여목이 가만히 흑돌통을 당겼다. 「오늘은 제가 흑번으로…… 다음에는 백번으로 두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그때 돌을 가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여목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연장자에 대한 예우였고 상관숭의 입장에서는 체면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제가 백을 잡지요.」 바둑이 50여 수 진행되었다. 상관숭이 느끼는 여목의 바둑은 참아야 할 곳에서 참을 줄 알고 약점과 뒷맛의 여지를 별로 남기지 않는 두터움을 지향한 바둑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대붕(大鵬)이 나래를 접고 있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대붕일비장천구만리(大鵬一飛長天九萬里) 대붕은 가만히 나래를 접고 있으면 모르거니와 한번 날개를 떨치고 날면 9만 리를 치솟아 날아간다. 상관숭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비록 공식적인 대국이 아니지만 명색이 북경에서 일인자로 통하는 자신이 조선의 이름 모를 기객에게 패하게 된다면 자신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중국 바둑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40여 수가 지났다. 상관숭은 대국 중간중간 쉴 새 없이 계가를 했다. 반면으로 엇비슷한 형국이었지만 흑의 두터움이 살아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흑의 유망한 형세였다. 상관숭은 궁리 끝에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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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수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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