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으면서 공감 100프로,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강연자는 대략 스물 남짓한 청년인데, 내용을 들으니 그야말로 일사후퇴때 피난내려온 어느 노인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어려선 고모와 살다가 열살 무렵부터 새엄마라는 사람과 살았다는데, 아버진 교도소에 있었다고 한다. 중3무렵이 되자 그 새엄마라는 사람은 이제 키워줄 수 없다고 하면서 내보냈다고 하자, 친척들이 사는 수원으로 갔더니 친적들 중에서 나서는 사람은 없고, 보육원으로 보내자는 말들.. 할머니가 나서서 같이 살자고 했다고 한다..

소년은 할머니가 자신을 키워주었다고 하지만 흐름을 보면 사실 상 같이 사는 동지였다.

굶기도 하고, 노인정의 쌀을 훔쳐서 먹기도 하는 등 세월을 보내다가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그리고 고3이 되자 야간자율학습때문에 일할 시간도 없어지자 비로소 사정을 알려서 대입준비를 해서 합격했지만, 장학금을 못받아서 등록금을 낼 수 없었다고 한다. 단지 생계를 위해서 공사장 인부를 하였다가 부상을 당하고 할머니도 어깨가 부러지는 일들이 겹치자, 힘들더라도 새로 대학을 가서 안정되게 살아야 겠다고 결심하고

열두시간을 일하고나서 공부를 하기로 했더니 하루에 여섯 시간을 공부하면서 4천문항의 수학문제를 세번 풀어보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몸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개 저녁이 되면 한잔의 술과 더불어 한담에 담배를 피우며 인생을 논하는 것과는 달리 그런 식으로 공부해서 2년 만에 다시 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의대를 합격한 것을 다루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그게 문제가 아니라, 대략 아홉살무렵부터 시작된 흐름을 보면 지금 스물 남짓하니 십여년의 평생을 모두 근거없는 고생만을 해오고 있는데, 그 상황을 타개해온 흐름이 마치 흥남철수해서 남하한 난민소년이야기처럼 들려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요즘은 이전에 비해서 등록금도 비싸지고, 또 이미 90대가 된 할머니가 얼마나 의지처가 되어줄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과정을 헤쳐온 흐름이 마치 산속에서 길을 잃은 원시인의 생존이야기처럼 들려서 무언가 귀담아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을 손쉽게 하려다가 전체를 망치는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다.

저 청년도 나중에는 다시 포만감에 나태해질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열 두시간을 새벽 다섯시까지 나가서 일하고 귀가해선 다시 여섯 시간을 공부하는 흐름을 만들어서 난관을 타개해본 경험은 정말 누구 못지 않다. 출가자들이 집중수행을 할 때에도 사분정진이라고 해서 하루를 네 등분해서 정진을 하기도 하고, 100일간 잠안자는 수행을 한 일도 있다고 하지만, 그건 또 그 맥락이 있는 것이고, 아마도 일상의 맥락에서 뚜렷한 조언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스무 살이 이루어낸 성취로선 정말 지독하고도 불가능한 성과가 아닌가 싶다..

그 어디에도 타인에 대한 비난이 없고, 젊은 박진영의 눈에는 다만 아흔 둘의 고마운 할머니와 힘들더라도 희망있는 미래, 그리고 난관을 벗어난 귀한 경험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인성을 왜곡할 방식의 고난이 더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말썽이 나려면 스물 두 번도 더 날 상황인데, 어떻게 저렇게 묘하게도 어려운 판세를 인내하고 헤쳐나왔을까?

개인은 아마도 개인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하나의 견본에서 파생된 다양한 양태들일 것이다. 살기 바빠서 고매한 질문을 해볼 겨를이 없는 전쟁고아들.. 아마도 그래서 불꽃 속의 연꽃이라는 말도 생겨났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