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요리에 브라운 루,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궁금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브라운 루만 있는게 아니라, 화이트루도 있고, 브론드 루도 있는 것이었다.

문맥을 보니 결국 볶은 밀가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볶는데, 버터에다가 볶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식용유 대신에 버터를 녹이고, 거기에 밀가루를 넣어서 색이 변하도록 볶는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가만히 생각하니 우리 미숫가루가 볶은 것이라는 생각이 나고

이게 미숫가루 비슷한 것이구나 싶어서 해보았다. 버터만 넣기는 뭣해서

설탕도 조금 넣고 소금도 넣고 해서 미숫가루처럼, 혹은 커피믹스처럼 먹을 만하게 조정을 해보았다. 커피믹스와 섞어서도 먹어보고, 그냥도 녹여먹어보았는데,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대개 볶는 것은 물에다가 바로 녹여서 먹을 수 있다는 뜻인 것 같다..

홍화씨도 볶아서 파는 것을 이따금 보는데

원래 홍화씨가 알려진 것은 지리산에 살던 인산이라는 분이 죽염 등과 함께 보급하면서이다. 그 책에선 홍화씨를 쓰도록만 알려주었는데, 이따금 보면 잘게 부수어서 볶은 것을 판다. 아마도 차마시듯이 물에다가 타서 먹으라는 뜻인 것 같다..

대개 요리들은 물에다가 재료를 넣어서 끓이거나 증기에다가 찌는데

볶는 것은 이미 요리가 된 셈이니, 흡수하기 편하도록만 하면 된다. 그러니

미숫가루나 커피믹스나, 라면이나 기본발상이 비슷한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에는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을 수 있고, 관념적 집착이 적으면 가능성도 더 풍부해진다..

정석을 원만하게 활용하는 수준에 이르려면 거의 최고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어쩌면 정형적 틀을 모르고, 전체적 판짜기나 기본개념을 독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과정적 행복을 위해서 더 나을 지도 모른다..

부분적으로 아는 것을 늘려서 성장하는 경우도 있고, 판짜기를 알고나서 부분적으로 개선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박소연의 경우 흐름이 좋아보였다. 점수는 낮았지만 전체과정을 운영한다는 측면에선 매력이 있었다. 대개 세상에선 결과가 더 중요할 수도 있으나 과정적인 행복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당장의 성과가 부족해도

판짜기를 알면 과정을 즐길 수 있다..

마오를 위기에 빠뜨린 것은 아마도 트리플 악셀이었을 것이다.

하다가 안되면 한발 물러섰다가 전체적 힘이 강해진 후에 다시 도전할 수도 있을텐데

항상 시험에 쫓기듯이 강박적으로 묘수연습을 하니 전체적 균형이 무너진 것이 아니겠는가?

작은 요리법을 하나 알게 된 것도 기쁨이 아닌 것은 아니다.

미숫가루를 먹을 줄 아는 사람은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먹을 줄 아는 사람은 몸이 있고, 몸이 있는 사람은 스피노자의 견해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 세상은 스피노자와 미숫가루를 연결해주지 않기 때문에, 전체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스피노자를 먼저 찾게 되고

미숫가루를 만들 줄 알게 되는 사람들은 그 과정에 무언가를 알게 되지만, 자신들이 알게 된 부분의 전체적 의미를 알 기회가 없거나 적다.

스피노자는 말하길 인식에는 3종의 인식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지성이 발달하게 된다는 논리를 젊어서 정립했다가, 그 실천과 연구과정에 보다 통합적인 설계를 한 것이 바로 그의 도덕경인 에티카라고 한다.. 아마도 3종의 인식이라는 표현은

제상이 비상이라고 할 때에, 상과 비상을 중간 쯤에서 매개하도록 설계한 것이 아닌가 짐작되는데, 자세한 내막은 아마도, 브라운 루가 생활의 일부가 될 때쯤이면 알려지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