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토끼

2,000원에 제공되는 병원 식사는 참 맛깔스럽다. S의료원은 예전엔 호텔 신라에서 식당을 맡아 고급의 맛있는 식사였지만 최근엔 S그룹의 다른 회사에서 제공 하는 것이 값도 두 배에 맛이나 식단도 전 같지 않은데 C병원의 식사가 오히려 나은 것 같다. 병원 측에서 보조비를 지급하여 그런 것인지 확실히는 모르겠다.

배식대에 줄을 서며 넓은 식당 안을 둘러본다. 우리 직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는지. 11시반부터 1시 까지의 식사시간이어 이미 거의 다들 다녀갔을 시간이다. 콜 센터의 여직원들과 신입직원 등 몇이 식사를 하고 있다. 딸 같은 나이의 어린 직원들과 동석하기도 뭐해 조용히 다른 구석으로 간다. 샐러드 바에는 신선한 채소와 아이스크림을 녹인 것 같은 맛있는 드레싱이 마련되어 있다. 불고기에 소채류와 샐러드, 떡국 등은 과분할 정도로 맛을 음미하게 된다. 의사나 간호사, 수녀님들과 신부님들, 의대의 교수 직원 등이 식사를 하니 수준이상의 식단을 차리겠지만 맛을 즐기며 수혜를 만끽하는 이들은 미화나 주차 보안등의 직원들이겠지.

혼자 앉아 천천히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식사를 한다. 12시 경에 나서 1시경 도착하여 식사 후 1시 반에 사무실에 들어가면 딱 맞는 시간이다. 아까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 본 시계는 12:40분 이어 충분히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식사를 하다 문득 벽시계를 보니 어느새 1:15 분이다. 아직 가운을 입지 않고 사복이니 식사 후 담배 한 대를 피고 부지런히 가면 시간이 딱 맞을 것 같다.

수술장 앞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바쁜지 둘러보려 5층으로 간다. 수술장과 회복실, 중환자실, DSC(Day Surgery Center)-통원수술센터, 심혈관센터(Angio)등의 핵심부서들이 몰려있어 5명의 우리 직원이 배치되어 있다. ER(응급실) 카트에 얼굴이 피범벅인 환자가 누워 수술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촌각을 다투며 수술장에 들어가야 할 텐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유는 다른 엘리베이터 로 오고 있는 환자의 가족들이 한 번 더 환자를 볼 수 있게 기다린다는 것이다. 얼굴 한 번 더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빨리 수술장에 입실하여 수술을 서두르는 것이 더 중요할 텐데 환자 가족들에게 수술장 입구로 오라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보다. 얼굴부위가 피범벅인 환자는 중태인 듯 한데 그 곁에 무심코 서서 기다리고만 있는 우리 직원은 내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보이려고 저러는 것 일까? 내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저렇게 계속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교육을 잘 못 시킨 탓일까? 나한테 어깃장을 놀려고 저러는 것일까?

어제 저 친구에게 통지를 하였다. 7월1일 부터는 응급실을 떠나 일반 병동에서 근무하도록 보직을 변경했다고. 동료들 간 화합을 못하고 큰 덩치의 위세로 임의로 근무표를 바꾸거나 간호사들에게 반말을 건네고 간호부 모니터링에서는 수시로 지적을 당해도 문제라고 생각하기는 고사하고 그래서 뭐? 라는 막무가내 식이다.

한동안 나름 고심을 하다 지금 조치를 하지 않으면 나중엔 더 문제가 커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 어제 조치를 한 것이다. 지금 수술장 입구에서 하는 짓을 보니 판단력이 결여된 무지한이라 여겨지며 어제 조치를 통보한 것이 역시 잘 한 일이었구나 싶으며 다행스럽다.

CT촬영을 마치고 다시 Bed로 옮겨진 여 환자는 이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지 농담을 한다. “서울에 오니 좋은 기계도 많네요.” 멀리 울산에서 오셨다는 보호자인 남편은 마음의 여유가 없으신지 입을 굳게 다물고만 계신다. 분위기를 풀어보려 일부러 이야기를 계속한다. “S의료원은 전국에 계열사와 공장들이 있어 전국에서 환자가 많이 오는데 싸게 해 줄줄 알아도 사실은 받을 것은 다 받아요.“ ”그룹사 임원들이 병실을 찾아도 방이 없다 그러고 특별히 마련했다며 비싼 방 특실에 넣어요.” “C병원은 아주 양심적이죠.” 쉽지 않은 병을 가지고 병원치레를 많이 했을 것 같은 여환은 잠시나마 여유롭게 웃기도 한다.

병원 내부의 동선을 한눈에 파악 할 수 있는 장소인 2층 영상의학과 앞에 서있는데 환자복의 모친을 모시고 온 임상병리과의 여직원이 인사를 한다. “여기 계시네요.” 예쁘장한 여자 임상병리사는 반색을 한다. “어머니 모습을 많이 닮으셨네요.” 하며 인사를 드리자 모친은 흡족하신 표정이다. 딸의 직장인 큰 병원이 자랑스럽기도 하시겠지만 본인의 병이 불안하기도 하실 텐데 따님이 발이 넓은 것을 보면 더 기쁘시겠지.

몸은 피곤해도 병원근무는 보람과 재미가 있다. 시간이 잘 흐른달 까.

S의료원 바둑동호회의 말일 모임에 초청한 연구생들의 약속을 재확인 전화한다. 화요일의 예정은 모두 준비가 되었다.

귀가 버스 속에서 많은 생각이 교차된다. 금전적으로 충분치 못해 처의 고생도 면하지 못하게 하는 무능력한 내 모습과 향후 계획 등. 그저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내가 편하면 족한 것일까? 돈을 더 번다며 행여 내가 사이드 잡이라도 얻을까 걱정하는 처가 한 말이 기억난다.

“두 토끼를 쫓으면 두 마리를 잃는 것이 아니고 세 마리를 잃을 줄 알라고.”

직장과 부업 그리고 세 번째는 자신이라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