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은 절벽아래 작은 반석이 있어 저 법당이 있기 전에는 아마도 귀인이

바둑판을 마주하고 있었을법하다

길 잃은 사슴이 사냥꾼을 피해 숨어들었을 것이고 순박한 나무꾼도

여기서 도끼자루를 썩혔을 것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중생이 그 모습 담으려 절벽을 어떻게 올랐는지 의아했고

내려오면서 후들거리는 다리와 달음질하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아득한 아랫길

후회 막급한 순간들을 지나 긴 한 숨으로 달래야 했다.

딸내미가 일본 이모가 입국한 것과 우렁각시 생일이 겹쳐 제 스케줄을 접고

귀한 걸음 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니 내려가는 길은 인간적으로 자기를 데려다 줘야한다고 엄포를 놓는데

이미 우리는 홍룡사와 내원사를 계획했고 가는 길에 같이 데려가기로 했었다

당연히 모시는 것으로 하고 겸사해서 들르는 것으로 했지만.

악천후라는 기상예보와는 달리 전형적인 따뜻한 봄날에 한 끗 여유로움으로

고속도로를 100km 산사 길을 30km로 달리다보니 산하가 같이 걷고

산들거리는 봄바람과 들꽃들의 수다마저 들리는 듯했다.



지나온 시련들이 밀려와 파도처럼 굽이쳐 내 여린 언덕을 후리치며 할 켜도

깎여져 휩쓸린 자리는 더욱 둥글어져 반짝이고 그 굽이 너머 멀어진 곳에는

고통도 갈등도 없이 비단처럼 매끄럽고 평온하니 망각의 착시현상 때문인가

마음을 다잡아 이루는 것 많지만 마음을 비워 이룰 것 없음 또한 삶의 진리니

속세인연을 버리지 못하는 중생은 살아 있는 동안에 행함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여기 홍룡사 폭포에서 깨달음은 멀어도 속세의 인고의 파도소리를 묻어 버리고

그저 명리심으로 머물다 가는 것으로도 족하다 하리라.

누구나 할 수있는 평범한 일이라도 자신이 하지 않으면 특별하게 된다
가난이 불편하지만 우리의 산사 길은 부자들이 할 수 있는 향응의 길이 아니라

마음만은 결코 가난하지 않는 이들이라야 할 수 있는 실천보시행이라 감히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