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성서로 가요”

인사도 하기 전에 문을 열면서 목적지부터 밝히는 중년의 여인.

“쿵”

거창하게 문 닫는 소리에 깜짝 놀라면서 슬쩍 짜증이 오르려 하는데

하수도에 마늘 실은 화물차가 전복된 듯한 냄새가 화끈하게 들이닥친다.

“휴”

시작이 이러니 앞으로 벌어 질 사태에 긴장을 하면서 염주에 손이 간다.

마무리니 제발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하사이다.

나무아미........

염원을 담아 돌리지만 왠지 아무 탈 없이 끝날 것 같지 않은 불길함 예감에

불현 듯 스치는 오늘 지은 업들이 혀 바닥을 날름거리며 눈앞에서 희롱한다.

잘돼야 잘 되는 거지.

새벽2시.

이제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이것저것 정리하면서 애마를 쳐다보니

20여 시간을 어떻게 저 좁은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하루지만 평생 같기도 하고

지난 오늘이나 다가 올 오늘이나 늘 그렇게 반복되는 무능한 노동의 안타까움을

한 모금 불어내는 담배 연기가 나대신 애마의 노고를 애무하고 휘돌아 간다.

“딩동.”

콜이 접수 되고 문자로 위치를 확인하니 3000냥 막걸리 집.

이 시간에 막걸리 집이라면.

.................................................!

“성서 어디쯤으로 모실까요.”

.................................................?

정확한 행선지를 확인하기 위해 재차 물어봤지만 뒷좌석은 고요하다

원래 여자 손님에게 인사말과 질문 외에는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모실 때에는 밝은 웃음으로 모시지만 승차 후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친절하려다 오해를 살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뒤돌아보니 그새 중년의 여인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누워 버렸다

핸드백을 베고 휴대폰을 꼭 잡고.

원래 30분의 거리지만 새벽길이라 마음만 먹으면 15분이면 족한 거린데

어떻게든 정신을 챙기게 해야겠다 싶어 창문을 모두 열어 젖혔다

지금은 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내심 불안을 떨칠 수 없다

“어. 어. 아저씨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창문은 왜 다 열어놓고.

“내가 술 취한 줄 알아요. 얼른 차 돌려요 참 이상한 아저씨네.”

“성서로 가고 있는뎁쇼.”

“성서는 누가…….

“그래요 근데 이게 성서 가는 길 이야요. 얼른 차 안 돌리면 신고…….”

차가 도시고속도로를 달리니 잠결에 차의 속도나 강변길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고객님 하명대로 따를 뿐이죠.”

(나도 집에 모시는 여시 셋으로도 벅찬 놈이거든요.)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저씨 지금 팔달교를 지나는 거 맞아요.”

“네.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아. 예. 미안합니다. 계속 가 주세요.”

그리고는 또 조용하다.

이제 남은 거리는 5분정도지만 그 정도로도 취객으로선 충분히 깊이 잠들 시간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뭔 놈의 신호가 착착 떨어지면서 어쩔 겨를도 없이

어느새 그녀가 처음 지목한 무지개타운 아파트에 도착했다.

“손님. 손님. 목적지 도착했습니다. 일어나세요.”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꿈쩍도 안하면서 입으로만 중얼거린다.

“아. 알았으니 가기나 하세요.”

“다 왔는데 또 어디로 가라고 하십니까. 그만 일어나세요.”

목소리에 짜증과 울화가 섞여 톤이 거칠게 나오다 고함으로 바뀌었는데도.

“아. 알았다는데 그 아저씨 참 이상하네.”

허.

나는 어쩌라구. 고 자기는 됐다니까요. 로 일관한다.

경비실로 달려가 지원을 요청하려고 했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지금 순찰 중) 이라는 팻말을 꽂아놓고 아무도 없다

경찰을 불러야 하나.

흔들어 깨우다가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발생할 거고.

아예 차문을 열어젖히고 누가 이기나 본격적으로 해보다 안 되면

그때는 민중의 지팡이로 찌르든 패든 해야지모.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지만 정말 어이없는 일이 마무리에 걸렸다

담배를 한 대 물고 상황을 추슬러 보는데 새벽하늘 끝에 달린 달이 참 처연하다.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여기는 어딘데...”

뒤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제는 틈을 주지 말고 속사포를.

“지금 고객님 댁으로 왔잖아요. 정신 차리시고 둘러보세요.”

“우리도 하루하루 힘듭니다. 이러시면 안 되죠.”

추위에 깨어 난 여인은 멍하니 둘러보다가 전화기를 두드린다.

뭐고. 차비 없다는 소리가.

한숨이 절로 나오고 여러 번 속았던 (계좌번호 주세요.)라는 소리가 앵앵거린다.

다시는 안 속는다. 전화기라도 받아놔야 제때 들어오지.

매번 다짐을 해도 그 상황이 되면 또 그렇게 돌아가고 후회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저씨 모 하세요 가요”

허걱.

지금 와서 또 어디로 가자는 건가.

“저 지금 마쳐야하고요 몸이 너무 피곤하니 일단 계산해 주시고 다른 차를 이용....

“아저씨”

“네”

“지금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고 아저씨는 차비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

“그야........ 그래서 이번엔 어디로.”

사실 남자라면 벌써 112 신고를 했다

하지만 여자 손님은 이런 경우가 드문데다 어떻게든 좋게 마무리 하려고 하지만

그게 모두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할 수없이 또 길을 나섰다.

이번엔 성주로 가잔다.

성주대교 앞에 검문소가 있는데 이놈의 돌대가리가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도대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모 검문소라 하고.

그 검문소에 가면 근처에 편의점이 있으니 그리로 가잔다.

그래. 가보자.

요금이 그럭저럭 2만원 가까이 나왔으니 이제는 물러 설 수 없다.

여자라고 파출소 못 데려 갈 이유는 이미 넘어섰으니.

결국은 새벽 여인과 함께 시외로 나가는데 참 황당하였다

위안이라면 검문소로 가자고 했으니 여차하면.

설마하니 아무생각 없이 그리 가자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무슨 연고가 있겠지.

검문소에 도착하니 다행히 불이 켜져 있고 그림자가 보여 일단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여인은 새록새록 잠들어 있었고 왠지 아까처럼 깨우기가 측은해졌다

어쩌면 단칼에 승부를 결정지으려는 잔인함인지도 모르지만.

몇 번의 깨움에도 비몽사몽 헤매기에 검문소로 바로 쳐들어갔다.

“실례합니다.”

느닷없이 들이 닥친 불청객에 전경은 적잖이 놀란 기색이고 황급히 방문을 두드렸다

누군가 책임자가 있고 아마도 격무에 잠시 눈을 붙이러 들어 간 모양이었다.

여기서도 비몽사몽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뛰어 나오는 사람에게 과연 맡겨도 될지.

“실례합니다. 경찰관입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경찰이 나섰는데 어라.

자세로 바로잡고 항변한다.

“경찰 아저씨가 왜요. 제가 뭘 잘못했어요.”

“이봐요 기사아저씨”

“네”

“뭐 때문에 경찰을 불렀어요. 내가 아저씨를 어쨌어요. 참 웃기는 아저씨네”

“아까 성서에서 여기 검문소로 가자고 했었잖아요.”

“그랬죠.”

“검문소에 도착해 깨우니 또 안 일어나니 전들 어떻게 합니까.”

“아. 요새는 다들 그렇게 헤프게 경찰을 불러요.”

“사내자식들이 옳은 게 하나도 없어.”

억.

(그래서 요새 우렁각시도 나에게 저런 생각으로 막 부려 먹는가.)

경찰관을 향해 무슨 동네 이름을 말하는데 두 사람의 말이 엇갈린다.

일단은 경찰관 말을 듣고 검문소 옆길로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길은 갈수록 좁아지고 인가도 드문드문 하더니 결국은 불빛도 없는

첩첩 산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건 아닌데...)

“저기 ...... ”

돌아보니 또 엎어져 있다. 오늘 제대로 걸렸나보다

예전에도 이런 길을 헤맨 적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나 혼자였고 지금은.

갑자기 머리끝이 싸 하고 등줄기에 찬바람이 지나간다.

안되겠다 싶어 차를 돌리는데 좁은 길에서 돌리려니 뒤뚱뒤뚱 하였고

잠결에 일어 난 여인이 기차게 한마디 던진다.

“이 아저씨가 보자보자 하니 정말 웃겨. 아예 모텔로 들이 미시지요.”

“하하하하”

정말 어이가 없어 한 바탕 웃어젖히고

“경찰관이 일러 준대로 왔는데 나도 정말 웃깁니다. 주소를 말해보세요.”

“아니. 아저씨 근데 왜 이런 길로 들어 왔어요.”

“아까 경찰관이 이리로 가면 된다고 했고 손님도 고개 끄덕였잖아요.”

“아 됐어요. 연세도 있는 분이...... 얼른 돌려나가세요”

후우~

다시 검문소에서 시작하기로 하였다

여인이 가리키는 대로 가보니 24시 편의점이 있어 이제 종착역인가 싶었다.

잘돼야 그렇지.

무슨 24시 편의점이 불은 켜 놓고 사람이 없다. 입구에 굵은 쇠줄 열쇠가 채워졌고.

진짜 돌아버리겠네.

다시 검문소로 왔다 그리고 경찰관을 찾으러 가는데.

여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검문소 앞을 지나 좁은 농로가 보였다

재차 확인을 하고 긴가민가 그길로 들어서니 아까와는 반대로 갈수록 넓어졌다

그렇게 10분여를 달려가니 작은 마을이 나왔다

이제는 여인도 어느 정도 술이 깬듯하고 대화도 되는 듯한데 요금이 무려 4만원.

이거 쉽지 않은 돈이라 내심 불안한 마음으로 어느 농가에 차를 세웠다

근데 갈수록 난감한 게 이건 거의 폐가라고 말할 그런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당에 1톤 화물트럭 한 대 있는 것 외에는 완전 폐가다

여기에 사람이 산다고. 후우~.

안 나오면 나는 여자도깨비를 태우고 밤을 새운 것이다.

담배를 3대나 피우고 나니 어둠속에서 여인이 다시 나타난다.

“시발 놈. 그 돈도 없다고.”

(사람이 있기는 있었나.)

“아저씨는 차비만 받으면 되죠.”

“그럼요~~~”

“나가세요.”

(으앙~~~~~ 또 어디로요~~~~)

현금은 없고 체크카드라 시간상 결제가 안 되었다.

결국은 다시 시내로 나오게 되었고 원래의 아파트로 가기로 하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편의점으로 들어갔고 악몽의 3시간이 마무리 되려는데

그 나머지 10여분도 그렇게 길었다.

친절하게 내 마실 음료수와 현금 4만원을 받아들고 연신 감사하다고 머릴 박았다

“아저씨 가요. 수고 많았어요.”

‘네네~ 그럼 그 아파트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

“아니요. 마음이 변했어요.”

“우당탕. $#@^&*$ ”

또. 또. 또.

결국은 다시 그 폐가(?)로 무상으로 데려다주고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길을

몰려오는 졸음을 쫒으려 창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오디오 볼륨을 크게 올렸다

그리고 소리높이 따라 불렀다.

♪으~샤 으~샤

사는 게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