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고통이 있는 길 그 외롭고 고독한 길이 바둑이라 본다.

이기고 지고의 과정과 결과에 따르는 희로애락을 즐기는 것이 바둑이고

둘이서 혼자인 바둑. 그래서 고독하다

나 혼자 만의 생각으로 바둑을 두지 않는다. 알려주지 않는 상대의 생각도 

가늠하고 대응책도 마련하고 그리고 상대 생각의 허를 찔러 앞서가야 한다.

누구와 의논 할 수도 없으며 나의 생각을 상대도 짐작하고 있다.

잘못 읽고 달려들면 덫에 걸리고 허를 보여 유혹하려다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배려하는 그 순간들의 모음이 고독이고 바둑이라 선달이는 감히 단정한다.

바둑이 고독하게 만드는지 고독한 이들이 바둑에 빠지는지

그도 저도 아니면 바둑이라는 미로를 걸으면서 고독해지는 것인지.

어찌 되었든 신선들 놀음은 아니라 본다. 신선들은 바둑을 모른다.

나무꾼이 진정 신선놀음 즉 바둑의 참 맛을 안다.

그들이 승부를 즐길 리 없고 승부 없는 바둑 또한 무의미하다고 보니까.

서로가 알고 있는 길을 흑돌 백돌 메우기가 뭐 그리 경이롭고 신비로울까.

고통도 고독도 없는 소꿉놀이하는 그들의 모습과 배경만 아름다울 뿐이다.

그 고통을 그 고독을 소유한 평범하고 무지하며 조금 모자라는 사람들의 바둑

그 고독한 길을 따라 헤매다 도끼자루를 썩힌 그 나무꾼의 후손들.

우리가 바로 신선놀음의 들러리가 아닌 신선놀음을 아는 바위며 낙락장송이다.

낙락장송 아래 널찍한 바위의 바둑 두는 두 노인을 팔짱 끼고 바라보며

선달이는 중얼 거린다.

“당신들은 바둑을 몰러. 바둑을 신비롭게 연출하는 모델 일뿐이야

“포석을 하면서 이미 공배를 메우는 게 무슨 바둑이야.

“밤차를 타고 목적지 가는 것과 배낭을 메고 걸어서 가는 차이 일뿐이야.

순간.

두 노인이 고개를 돌려 선달이를 바라보며 일갈 한다.

“뭐시라꼬라?  너 나하고 한판 할겨?

조용히 고개 돌려 입만 벌린 것 같은데 청천벽력같이 내리치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자빠진다.

우당탕. 와르르...  $#^%$&^%

의자를 맞물려 놓고 그 위에서 자던 선달은 몸부림치다 의자 중간으로 떨어지면서

비몽사몽간에 잠에서 깨려는 순간.

이건 또 뭔가.

“바둑 두러 왔다는데 제가 넘 크게 소리 질렀나요?”

으아악....!! 우당탕탕. %$#@&^%

양팔을 의자에 걸치고 시부렁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다 다시 벌러덩 나자빠진다.

사람 인기척에 놀라 다시 넘어졌는데 바닥에서 쳐다보니 이게 누군가.?

꿈에서 깨어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선달이 눈앞에 떡하니 서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개그맨 엄용수씨가 아닌가.

개그맨 엄용수씨가 공연차 왔다가 우리 기원을 둘렀는데 여간 시끄럽지 않다.

눈곱도 닦기 전에 들이닥친 작은 체구에 굵은 테 안경. 약간 언챙이의 두툼한 입술

당시에 잘나가든 엄용수씨가 틀림없었지만 너무 이른 시간에 이런 곳에 나타났으니

선달이는 엉거주춤 할 말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시~발 간밤에 문을 잠그지 않았구나.

어릿광대. 수다 왕 개그맨스타 엄용수.

원장님이 오시기전에 엉겁결에 한판의 바둑을 접대하게 되었는데 바둑 실력은 아마도

그때 기원1급 수준정도인 것 같다. 3점을 놓고 마주 앉았다.(당시 기원4급)

공인 아마 5단으로 뒤에 들었지만 그게 그거다.

스타에게 뭐라 해야 되는지. 찾아가도 볼 수없는 사람이 내 앞에 앉았는데도 멍하다

바둑이 눈에 들어 올 리 없었다. 한수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커피 한 모금 하고

한수 두고 하는데 연신 노래를 부른다. 바둑판만 쳐다보고 바둑돌로 장단을 맞추면서.

때마침 원장이 출근을 하였고 감사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원장도 앉으면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에게 껌벅 거린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혹..? 엄용수씨 아닌가요?

원장이 앉으면서 묻는다.

“맞습니다. 맞고요.

바둑 두러온 엄용수가 중요한가요 어떻게 둬야 하는가가 중요하지요.“

비슷하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호선으로 돌을 가려 대국을 시작했다

뭐. 기원에서는 (1급 둡니다). 하면 프로를 제외하곤 흑을 잡지 않습니다. 하는 뜻이니까.

그렇게 몇 판째를 두고 있는 그들을 둘러싸고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관전을 하고 있는데

선달이는 한쪽 구석에서 사투를 벌리는 중이다.

같이 구경을 하던 허과장이 엄지손가락으로 빈자리를 가리켰고.

선달이도 씨~익 웃으며 응답했다. 그래 우리는 할 일이 있지. 그렇게 시작한 바둑.

그게 상황이 여의치 않는데 끊이지 않는 노래 소리가 못내 성가시게 들린다.

어저께 하루 종일 재떨이를 비우고 마련한 군자금 일만 냥.

오늘은 이것으로 재떨이를 면해야 하는데 새가슴 선달이가 5천원 두 판을 제의했으나

묵살 당하고 황산벌에 섰다. 바둑이 좋으면 따라 부르겠는데 지금은 허과장이 흥얼대고

흔히 말하는 쫑 돈에 손질이 안 된다. 이판을 지면 비참한 하루가 기다리니

젖힐 곳을 늘게 되고 치중 타이밍을 놓친다. 계가는 이미 물 건너갔고 오직 한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영 헷갈리는 선달이가 낑낑 대는 게 지겨웠는지 허과장은

일어서서 원장님과 엄용수씨의 바둑을 관전하러 가면서 여유를 부린다.

“ 둘 때 되면 전화해. 내 삐삐 번호 알지? 하하하.

울화통이 치밀고 수치스럽기도 해 판을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선달은 화장실로 향한다.

모든 화를 풀고 가라는 곳. 머리는 열나지만 아랫도리는 시원하다. 한참을 참았으니...

길게 담배 한 모금을 창을 향해 내뿜는다.

빤히 보이는 곳으로 달려가다 유리창에 부딪치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안타까움이

마음은 빤한데. 눈앞에 보이는데.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고 애태우는 자신의 처지와

저 담배 연기가 너무나 흡사하다. 다만 누가 저 유리창을 열어젖히느냐가 문제일 뿐.

화장실에서 잠깐의 고독을 짧은 몸서리로 마무리 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나서는데.

보인다. 뭔가가 있다.

다시 마주한 허과장은 연신 싱글벙글 이다.

건너 저쪽에선 뽕짝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고 선달이 입에선 발라드가 흘러나온다.

의아한 눈으로 허과장이 쳐다본다.

이 사람이 화장실에서 뭐하고 왔나? 하는 듯 했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지나간 날들이지만 잊혀 지진 않을 거예요

................................................................

창문 너머 어렴풋이 수읽기가 되었지요.

따~악.

힘차게 내려찍는 소리에 흠칫 하던 허과장이 이내 미소를 지으며 뚜벅 뚜벅 받아온다.

선달이도 망설임 없이 받아간다.( 걸린 듯하여  내심 흥분이 되었다)

결과는 패지만 패감이 여의치 않다 하지만 선달이는 다른 것을 노리고 있었다.

패를 서로 인정하고 두어가다 살짝 비틀어 본다. 선패인데 실행하지 않고 마늘모로

바깥에서 삐딱하게 째려보았다. 한참을 쳐다보던 허과장이 패를 해소해 버린다.

부자 몸조심!!

하지만 걸렸다.

허과장은 더 이상 둘 곳이 없다는 뜻으로 투항을 권고하는 메시지였건만

선달이의 콧노래는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이번에는 소리 없이 옆쪽 대마에 잡혀있는 몇 점의 돌에 살짝 갖다 붙인다.

“인자 던지는 거야? 죽은 말에  .............. ???

허과장의 말이 끊긴다.

좀 전에 내려섰던 돌에 의해 맞보기로 살아있던 말의 퇴로가 차단되었고 그것으로

후절수에 대마가 함몰 했다. 궁도가 넓어 방심했고 잠시 잊어버린 것이다

벌겋게 달아오르는 허과장을 바라보며 선달이는 침묵한다.

창문을 열어젖히고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선달이는 연신 주머니의 포개어진

만 원권 두 장을 만지작거린다.

이 한판의 바둑이 아닌 인생의 반전은 언제 올까.

나의 앞을 막고 있는 창문을 누가 어떻게 열 것인가.

마음껏 눈에 보이는 저 넓은 곳으로 날아가 산화하고 싶다

오늘도 무력함을 고독한 미로를 헤매며 도끼자루를 썩혀야 하나.

도끼자루를...

도끼자루는 왜 썩는 것인가? 도끼는 왜 무능한 고철로 뒹구는 것인가?

자루가 있을 때  힘을 모아 강한 파워로 거목을 단숨에 쓰러뜨리는

그 잠재력을 바둑이 아킬레스 근을 조이고 놓아주지 않는 것일까.

스스로가 자루의 중요성을 알면서 적응 못 하는가 무심해서인가.

고독에 익숙하고 그러다 사랑하게 되어 버린 걸까. 아님 포기한 것일까.

한 시간여를 담소하고 모두에게 커피도 한잔씩 돌리고 깍듯이 인사하고

손 흔들며 떠나갔던 엄용수씨가 다녀간 까치까치 설날의 추억이다.

그의 진지한 바둑 이야기 삶의 이야기 남을 웃기며 살지만 고독한 사나이.

얼마 전에 그가 더욱 고독한 인생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선달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길게 한숨이 나왔다.

또 한 나무꾼의 도끼자루가.......

나무꾼의 후손. 개그맨이 아닌 바둑인 엄용수.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선달이는 인간 엄용수에 바둑인 엄용수에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

하지만...

고독한 사람들이여 그 고독한 몸뚱이로 저울에 오르지 마라.

날이 선 도끼도 혼자선 고철이고 그 고독은 스스로를 부식시킬 뿐이다

그대 몸에 맞는. 그대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줄 자루를 찾아

그 보잘 것 없는 나무 막대기에 고철덩어리를 맡겨보라.

사람은 사랑받기위해 태어났기에 사랑 받을 수 있도록 가꿀 의무도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가끔씩 아름다운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자루여 그대는 기다림에 지쳐 쉬 썩지 마라.

내 이 바둑이 끝나면 그대와 함께 성실한 나무꾼으로 돌아 갈 것이다.

그날로  선달이는 무릎을 꿇고 눈을 내리깔기로 결정한다.

다음날 고기 한 근을 사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눈물을 글썽이는 어머님의 손을 꼭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같이 울었다.

실직 후 근 6개월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국에 어머님이 가시를 발라 얹어주는 생선을 눈물로 받아먹었다.

얼마 후 선달이는 택시를 몰고 있었고 한참의 적응기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그 후 20여 년간 바둑도 멀리하고 기원에는 일체 가지 않았다.

도끼자루는 몇 번 인가 바뀌었지만 도끼는 그대로였고 그리고 바둑이 그리워

오로를 찾았고 여러분을 만났다.

고독한 바둑을 사랑하고 혼자서 고독한 운전을 하면서 사색을 하고

또 이렇게 그 마음들을 글로 옮기는 이 순간 이 고독함이  행복하다

내가 창문을 열어 젖혔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열어둔 창으로 외풍이 몸서리치게 할 때는 다시 창을 닫고 웅크리고 싶지만...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

지나간 날들이지만 잊혀지진 않을 거예요.......

생각나면 들러 봐요. 조그만 길모퉁이 기원

아직도 흘러나오는 수담은 옛 얘기겠지요.

그런................. ♬

지겨웠지요. ^^=

저도 이렇게 긴 글을 난생처음 써 보았습니다.

내일은 봉화 청량산의 청량사와 현불사를 돌아보고 오겠읍니다.

기대 하셔도 좋습니다. 글 (?)  아닙니다 풍경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