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93, 빛나리 와 꼼지락

빛나리 와 꼼지락

비가 오는 날이면 아침 일찍부터 기원에 오는 40초반의 그는 상당한 기력이다.

바둑티브이에 눈길을 주는 것 조차 보질 못했으니 바둑 책을 보며 공부 했을 리는 없고 돈을 걸고 하는 게임이니 돈을 따야 한다는 욕심만으로 이룬 실력일 것 같다.

비상한 수를 내서 상대의 대마를 잡으려 노리고 있는 것은 이세돌 類 라고 나 할까?

다만 욕심이 너무 많아 이긴 판에서도 수를 내려고 제자리걸음만 하며 큰 자리를 놓쳐 끝내기에 밀려 지는 경우가 많다. 나름 노상 상대의 대마나 허점을 노리며 칼을 간답시고 발 느린 수에 중복을 서슴지 않아 별명이 자연스레 꼼지락(이하 김이라 호칭)이 되었다.

빛나리(이하 정이라 호칭)는 40후반이거나 갓 지천명이 되었을 것 같다. 일찍 벗겨진 머리에 흔한 별명이 붙게 되었지만 나름 분위기를 이끌고 바둑을 주선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호감도 다소 포함된 별명일 것 같다.

평소 그리도 친한 사이인 둘인데 그리 좋아하는 바둑을 그만 두며 김은 일어선다.

편 바둑에서 같은 편이 되면 정은 기복이 심해 많이 지고 팀이 이겨놓은 판도 혼자서 공연히 무리를 하다 지곤 하니 모두 반기지는 않지만 어차피 운이 반 이상인데도 싫은 때는 단호히 하지 않는 성격인가보다.

“바둑 두는 것이 신뢰를 할 수가 없어”

자신이 두 점 놓는 상수를 저리 단호히 평가절하 하는 것은 기리 보다는 세상이치를 손익을 돈을 먼저 셈하는 것인가 보다.

정의 기력은 오로6단은 충분한 실력일 듯 한데 난전을 좋아하고 방내기를 많이 한 탓인지 대마사냥을 즐긴다. 중앙 戰에서의 그의 감각은 놀라울 때가 많다. 덜컥 手 가 많고 성격상 굳히기를 싫어하는가 보다.

며칠 안보이던 정이 벗겨진 앞이마가 검붉게 탄 채로 나타났다.

주위의 사람들은 반기며 묻는다.

“일 나간다더니?”

“끝났어요”

“나는 가보니까 할 일이 없어”

“사흘 일하고 35만원 받았네”

“그럼 괜찮은 거잖아”

“근데 한 달에 일이 열흘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비오면 놀고 기다려야 되고.”

“얼굴이 새카맣게 탓네”

“나는 옥상에만 있는 거에요”

“데모도 인데 할 일이 없어요. 필요도 없는데 꼼지락이 오야니까 시켜준 거지”

고층아파트 등의 외벽페인트칠을 하는 job 에 옥상에서 밧줄 묶는 것이 중요한데 목숨이 달린 일이라 기술자들이 다 직접 세 벌 안전장치로 묶는단다.

일주일 걸린다던 일이 사흘 만에 마치고 김은 자신의 일당은 하루 18만원으로 친단다.

“한 달에 몇 백은 벌 거에요”

“기술은 필요 없나요?”

“기술은 무슨, 몇 년 전만 해도 꼼지락이 골목에서 풀빵 장사 했었잖아요.”

미국이민시절 L.A한국기원에 있노라면 mexican들이 임금을 받으러 오곤 한다. 한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job이 주로 페인트, 조경, 빌딩청소 인데 일을 따서는 멕시코 인들에게 노역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의지의 한인들은 한국에서 안 해보던 일들도 궂은일도 이민 와서는 잘하는데 이역 땅에서도 바둑은 놓을 수가 없었나 보다.

열심히 일하는 김이 대견스럽다. 그의 바둑은 효율 속에 수익성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그의 판단과 상대의 대마를 잡아 大舶을 터뜨려야 많이 번다는 평소의 신념과 생활모습이 승부를 초월하고 유연함을 강조하는 기리 속 에서는 꼼지락 이라는 단어로 폄하된 것이겠지. 평소 그와 둘 때 이긴 듯싶어도 막판까지 물고늘어지는 그의 투혼을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겠군 싶다.

정은 강남주점들에 과일과 안주 등을 납품 하던 일을 그만 두었나 보다. 불과 얼마 오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남에게 이용만 당하며 술집 바지사장으로 명의나 빌려주고 술집에 납품한다며 남지도 않는 것을 시간과 노력만 이용당하고 사업자등록을 내 술집들에 부가세영수증이나 많이 끊어주는 자세히는 몰라도 하지 말아야 될 일만 자신의 손해인둘 모르고 하는 것 같더니 이제라도 그만두었으면 다행일 것 같다.

정이 사람 근본이 착하고 여려서 이겠지.

출중한 기력에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도 기재를 살리지 못 하는 것은 끈기가 없어서일까? 성격 탓일까?

기원아래 보쌈chain 사장이 자신의 가게 배달을 맡겼을 때도 그는 잠시 주문이 없을 때는 항상 기원에 올라와 있었지. 그 일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신pro가 맡았는데 월 150이상은 받는다는 것 같다. 선불을 천 받아 별거중인 고향 처에게 보냈다던데..

바둑판 앞에 마주앉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들은 다양하기 그지없다.

잠시 모든 사연들을 내려놓고 잊은 채 반상에선 기력만 다투는 것일까?

제각기 사연들의 스토리가 경험이 생활모습이 반상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잊고픈 현실을 뒤로 한 채 무림고수인 자신의 실력을 강호에서 겨루며 칼부림 속에 잠시나마 희열을 맛보는 것일까?

빛나리 정이 여유 있는 입장에서 바둑에 정진했다면 나보다는 엄청 센 고수가 됐을 것 같다.

꼼지락 김이 바둑 공부할 여건이었다면 내가 도달하지 못했을 경지에 이르렀을 것 같다.

나는 기회와 여건이 모두 다 되면서도 이정도 기력에 그치니 기재가 부족하긴 한가보다.

두 양반의 기풍에서 나는 나 나름 배움을 얻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