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삶을 배로 본다면 바다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파도는 목적지를 향한 시련의 변수고 닻을 항해의 시작이요 끝이라 본다면

이성은 돛 지성은 키

그리고 항구는 인연과 휴식이 있는 가정이라 볼 수 있다

인생은 최소한의 조건으로 최대의 목적을 가지고 운명의 바다를 건너는 것이고

닻을 올리고 내리는 횟수는 각자의 환경과 의지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다.

세상엔 아직 효자 효녀가 많다

하지만.

선비가 귀하 듯 심청이도 귀하다

억지 춘향이가 나머지 자리를 메우고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세상이 그런가.

나는 30년 넘은 간병 세월동안 애증으로 쌓은 돌담뿐이다.

휠체어가 아니면 업고 다녀야 되고 중풍 30년 넘어 합병증으로 호스로 연명하는 삶

대소변도 받아야 하는 몸인데 난데없이 고향엘 가고 싶다고 했다

젊었을 땐 촌사람들 무식하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죽을 고비 수없이 넘겼어도 한 번도 고향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병원가기도 힘든데 2시간가량의 차량 이동에 견딜 수나 있는지.

지난여름 폭우로 피해를 입은 부산 좌천에 계시는 작은 아버지 댁에 들렀다가

다시 울산 인근의 고향으로 다녀오시겠단다.

내심은 솔직히 지랄염병 떠는 짓이다

장원급제 알리려 가는 것도 아니고 몸도 부실한데 도저히 가당치 않았다

몸도 몸이지만 고향사람들 볼 면목도 없는데.

“꼭 가자면 가겠지만 상황이 꼭 갈일은 아닌데요.”

“가자”

단호하면서 여는 때와 같이 명령조다

욱 하는 게 올라왔지만

“이 몰골로 삼촌인들 부담스럽지 고마워하겠어요. 숙모도 몸이 편찮은데. “

“그래도 내가 가보고 싶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는 숨이 막혀오는 걸 참으며 말없이 밖으로 나왔다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팔 진짜.......)

언제나 선한 달은 둥글어도 야위어도 그 정겨움은 5년 전 내 품에서 가신 외할머니 같다

(할매. 저 영감 참 밉생이제.)

“야야 니가 좀 참아라.”

혼자 화를 삭히는데 어머님이 나오셨다

“내가 우야 든데.”

“마지막 유언이라 생각해라. “

“하하하”

“어무이 그게 30년이 넘었소.”

“여태 사망선고 한두 번 받았소, 못갈 것 없지만 객사한들 뭐 다르겠소.“

“다만 일가친척 식구들 볼 면목이 없어 그렇소.”

“장원급제했소.”

버럭 내 뱉는 소리에 한숨짓고 말없이 손을 비비며 머뭇거리는 어머니 모습이 안쓰럽다.

“가족을 위해 살다 얻은 병이면 뭣을 못하겠소.”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싼다더니.”

............................

어머님의 한숨이 잠깐의 침묵을 가르며 지나간다.

“그래도 니밖에 더 있나 동생들은 시근이 없고 니가 참 고생이 많다.”

“내만 하나 다 어무이랑 우리 업이지요.”

돌아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을 봤지만 달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님의 인생이 나보다 못하겠는가.

나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을 어머니는 서러운 밤 저 달을 얼마나 적셨을까.

사십 전에 다른 여자에게 가정과 자식을 빼앗긴 지금 팔순여인이 누구를 위해 저러시는가.

상종도 하지 않은 30년이 지나고 지금에 저러신다.

천륜의 도리는 한다는 내 살림이 갈수록 척박해지니 몸소 나선지 벌써 4년인가 5년인가.

할머니와 아버지를 서로 분담하다가 할머니 가시고는 다시 아버지에게 올인 하고 있다

최근엔 일 년에 두세 번은 몇 달씩 교대로 병원 바닥에서 자야했었다

그런 우리가족 공공의적인 아버지를 두둔한다.

여인의 서릿발 같은 한을 모정으로 녹이고 팔순의 나이로 대소변을 받는 병간을 하는 것이다

처음엔 나서지 않았고 나도 그러라 했으나 도리를 하고 산다는 길에 현실은 가혹했다

직업이 택시기사니 시간은 얼마든지 낼 수 있으나 무 노동 무 임금이라

갈수록 빚이 쌓이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직접 나서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모자지간이라기보다 간병전우로 평생을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살아왔다.

어머니의 간청에 할 수없이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자고 했지만 잘하는 일인지엔 의문이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술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

사실 내가 부끄러웠다.

전답 다 팔아 먹고 병신 되어 그것도 코에 호스를 꼽고 무슨 낯으로 고향엘 가겠는가.

기가 막힌다.

한 하늘아래 살아도 한 지붕 밑에는 살 수 없었던 할머니와 아버지.

지난 40년을 20리 길을 띄워 놓고 살았는데 할머니가 가셨는데도 집엘 오지 않는다.

그래서 세를 주면서 두 집 살림을 벌려 놓고 어머니랑 교대로 왔다 갔다 한다.

정말 가지가지로 애먹인다.

그래.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하다가 30년이 넘어 버렸고.

지난 밤 잠을 설쳐 컨디션이 엉망인 게 영 부담스러워 9시에 여느 때처럼 전화를 했다

떨어져 있는 관계로 매일 아침에 전화를 넣는다.

혹시 몸이 좋지 않으면 마음이 변해 취소 될 수도 있다는 바램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 아버지는 준비 다했으니 빨리 오라네.”

(그 참 이번엔 유독 유별스러운 게 올해는 진짜 가시려나.)

1.3.5 속설로 7년은 넘기지 않는다는 중풍을 30년을 넘기는 동안 올해는. 올해는. 했었다

그러나 사람 목숨 참 모질다.

할머니는 100수하시면서 말년에 치매로 10년 수발하여도 가여웠다

그런데 아버지는 30년을 넘기면서 증오가 연민으로 변한 애증의 시간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