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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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34회] 7부 구한말의 대국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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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바둑을 두며 경지에 오른 사람은 나름대로 독특한 기풍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예외다. 그는 자유자재(自由自在)하며 능소능대(能小能大)하다. 그때 멀리서 새해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온갖 축포 소리가 들려 왔다. 그것은 마치 여목의 승리를 축하해 주는 소리 같았다. 1910년의 새해가 밝아 오고 있었다. 방 안에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졌다. 승패를 떠나 서로 후회 없는 대국을 한 두 사람 사이에는 우의가 싹트기 시작하였고, 더불어 새해가 왔음을 자축하여 마련한 술자리였다. 술을 하지 못하는 석정은 번갈아 두 사람이 잔을 비울 때마다 그 잔을 채우며 간간이 여목을 바라보았다.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여목의 자세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 사람의 여자가 되고 싶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이 사람의 여자가 되어 살고 싶다……. 석정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여목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대인께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상관숭과 석정의 얼굴이 동시에 여목을 향했다. 「말씀하시지요.」 「대인 다음으로 한 수 지도받을 분을 추천해 주십시오.」 「…….」 「대인과 함께 몇 년이고 바둑을 두며 가르침을 받고 싶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유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꼭 만나 지도를 받아야 할 분을 한 분만 추천해 주십시오. 높은 기예를 지니신 분을 꼭 한 번 뵙고 싶습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귀인의 바둑은 더 이상 오를 경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드넓은 중국땅이라 하지만 귀인 수준의 기예를 지니신 분을 뵙기가 쉽진 않을 것입니다.」 「…….」 「일단 남경 땅으로 가시지요. 그곳에서 위지손(尉遲遜)이란 분을 한번 만나 보십시오. 제가 소개의 글을 한 자 적어 드리겠습니다. 아마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잠시 자리를 비운 상관숭은 밀봉한 봉투를 한 장 들고 왔다. 여목은 상관숭이 건네 준 밀봉이 된 봉투를 받았다. 여목은 약간의 취기를 느꼈다. 새벽 세 시가 되도록 계속된 술자리에서 오랜 지우와 더불어 술을 마시는 기분으로 부담 없이 취했다. 상관숭이 마련해 준 침소에 들며 소세를 마친 후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였다. 여인의 헛기침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어 석정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르신, 침수 드셨습니까?」 여목은 잠시 망설였다. 요즈음 들어 석정이 자신을 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그렇다고 못 들은 척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여목은 방문을 열었다. 석정의 청아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인 일이오?」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날이 밝은 뒤에 하면 안 되겠소?」 「지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들어오시오.」 석정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여목 앞에 무릎을 꿇고 대례를 올렸다. 여목은 갑작스러운 석정의 행동에 심히 난처했다. 「왜 이러시오, 석정?」 「전에 제가 어르신께 상관숭 선생과의 대국에서 이기게 되면 하나의 소청을 들어 주십사고 부탁 드린 일이 기억 나십니까?」 「…….」 「어르신, 여인의 몸으로 이런 소청을 드리게 됨이 심히 부끄러운 일이나…… 더 이상 대인을 향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내 석정의 마음을 익히 알고는 있지만 그것은 심히 부당한 일이오.」 「무엇 때문입니까? 조선에 두고 온 부인과 자식들 때문입니까?」 「그것 때문이 아니오. 나는 조선 사람으로…… 언젠가 귀국을 할 몸이오. 그렇게 되면 혼자 남게 될 당신이 받는 상처는 또 얼마나 크겠소……. 그만 일어나시오.」 「그 점은 전혀 개의치 마십시오.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애모의 감정입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어르신을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만으로도 남은 인생을 조금도 쓸쓸하게 살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여목은 참으로 난처했다. 석정의 말마따나 여인의 몸으로 이런 행동을 하기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일 터였다. 「그리고, 어르신은 앞으로 바둑을 두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여행을 해야 할 몸입니다. 아무리 어르신의 관어가 능숙하다 하여도 넓은 중국 땅에서 앞으로는 의사 소통도 힘들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풍습이나 관습이 각 지방마다 달라서 어려움이 더욱 많을 것입니다.」 「그만두시오. 내가 당신을 거둔다면 그것은 그런 이해 관계를 떠난 것이오.」 「그 말씀, 허락의 뜻으로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석정은 몸을 일으켰다. 여목이 무어라고 하기도 전에 석정은 방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석정이 미리 준비한 조촐한 술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석정이 술잔을 채우자 마음을 결정한 여목이 거침없이 잔의 반을 비우고 나머지 반 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받으시오. 이것이 초야를 치르는 조선의 예법이오.」 석정은 마다하지 않고 그 잔을 받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이내 발갛게 얼굴이 상기되었다. 석정의 몸은 풀잎처럼 가벼웠다. 여목의 손길이 반상을 누비듯 이곳 저곳 의중을 떠보며 물어올 때마다 석정의 몸은 격렬히 반응하였다. 때로는 오히려 그녀 쪽에서 여목의 주문대로 응하지 않고 손을 빼서 다른 곳에서 물어 오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여목은 노련한 반상의 운영 솜씨를 보여 석정으로 하여금 거친 숨결을 몰아쉬게 하였다. 때로는 가볍고 미끄러질 듯한 행마로, 때로는 광포하고 거친 행마로, 또 때로는 꾹꾹 눌러 참는 우직한 행마로 석정의 몸을 포석 단계에서 이미 압도하여 중반으로 끌고 갔다. 중반전이 되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석정은 중반전이 되어 여목이 처음 침공해 오자마자 경험 부족으로 비명을 질렀다. 전투에는 약한 듯 몸을 사리며 여목의 침공에 수비수로 일관하였다. 석정이 두 집을 내고 사는 동안 여목은 끊임없이 석정의 다른 대마를 들쑤셨다. 반상에는 여목이 띄운 강수로 곳곳에서 석정의 세력이 약화되어 갔다. 드디어 참지 못한 석정이 신음을 토하며 맞받아 대응해 오기 시작했다. 반상에는 바람이 불고 폭풍이 몰아치고 번개와 천둥이 잇따라 작렬하였다. 마침내 석정은 울면서 돌을 던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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