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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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20회] 5부 잊혀진 내기꾼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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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는 기원이 많았다. 대부분 야통기원들이었고 어딜 가나 내기꾼들이 득실거렸다. 박 화백은 차를 몰고 가다 불이 켜진 기원이면 차를 길가에 세워 놓고 무조건 올라갔다. 간혹 커튼을 쳐서 내부의 불빛을 차단시킨 기원도 있었지만 밖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야통기원의 유무가 금방 드러났다. 광복동, 남포동 등 시내 기원을 여러 곳 돌아본 박 화백은 아침 나절이 다 되어서야 여관으로 들어갔다. 사흘 동안 박 화백은 서면과 동래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이 잡듯이 뒤졌으나 한두 기원에서만 김 사범을 기억하고 있을 뿐 그의 행방에 대해선 역시 별무신통이었다. 대구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성로와 대신동, 원대 주차장 사이를 오가며 수십 개의 기원을 빼놓지 않고 추적했건만 그의 소재를 파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럭저럭 서울을 떠난 지가 1주일 가량 흘렀다. 박 화백은 초조했다. 이대로 가면 추동삼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 끊어진다. 지금으로선 그나마 김헌자 사범이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러나 김 사범의 연고는 갈수록 오리무중이었다. 다만 대구 동성로의 어떤 기원에서 웬 내기꾼 사내가 얼마 전 전라도 광주에서 그를 봤다는 믿을 수 없는 말 한마디가 전부였다. 지난 한 달간 박 화백은 정신없이 추동삼을 찾아 헤맸다. 자신의 집 서재에 있는 바둑판을 생각하면 박 화백의 마음은 한시도 편안하질 못했다. 정 국수가 타계하자 그와의 약속이 더욱 자신을 짓눌렀고, 추동삼은 추동삼대로 줄곧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쨌거나 추동삼을 찾기 위한 어떤 작은 가능성이라도 박 화백에겐 절실했고 그를 만나는 것은 이제 박 화백에게 있어 자신이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해결해야 할 몫이 되어 버렸다. 대구에서 하루를 쉰 박 화백은 이튿날 광주로 차를 몰았다. 고령(高靈) 쪽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서 차는 광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광주는 그림에 관련되는 일로 비교적 자주 찾는 도시였다. 광주에 도착한 박 화백은 우선 지면이 있는 광주 시내 기원을 몇 군데 확인했다. 그리고 올 때마다 가 본다고 벼르던 광주 중심가 충장로 한복판에 있는 무등기원으로 올라갔다. 그 기원은 벌써 20년 전 일이지만 과거 자신이 바둑에 빠졌을 때 떠돌아다니다가 기원 사범으로 서너 달 보낸 적이 있던 곳이었다. 광주에 올 적마다 한번 들러 본다고 여러 번 별렀었는데,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이행하지 못했다. 한 40평 남짓 되는 기원 구조는 옛날 그대로였고 그곳에선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박 화백은 행여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시내에서 큰 식당을 경영하는 차 사장이었다. 개기름이 흐르는 번질번질한 얼굴과 착점하며 연신 욕을 해대는 버릇은 여전했고 바둑 내용으로 보아 20년 전 4급이었던 기력이 지금도 그대로였다. 5선을 쭉쭉 밀어붙이는 말도 안 되는 그의 세력 바둑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머리만은 세월과 더불어 백발이 무성했다. 「김헌자 사범을 아십니까?」 무등기원 원장의 말로는 길 건너에 있는, 지금 박 화백이 들어온 이 기원이 내기 전문 기원으로서 광주에서는 내기꾼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 했다. 특이한 것은 이 기원 원장의 영업 방식이었다. 원장은 내기를 두지 않는 손님은 출입을 금지시켰다. 극단적인 예로 내기를 두지 않고 몰래 친선바둑을 두던 애기가(愛碁家)를 몰지각한 사람이라 하여 크게 꾸짖어 쫓아 버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내기바둑에 심취한 원장이었다. 원장이 박 화백을 바라보며, 「김 노인은 워찌 찾는다요?」 하고 물었다. 「만날 일이 있어서요.」 박 화백의 대답에 원장이 「잘 아는 사이당가?」 「그렇습니다.」 일단 박 화백은 그렇게 대답했다. 「며칠 전꺼정 여그서 바둑을 두었당께. 시방 자리를 비웠는디 아마 오늘 밤쯤 나타날 것이구만.」 「…….」 「내기바둑이나 두면서 기다리시구랴. 치수는 속이지 말고.」 그때 방금 바둑이 끝난 듯한 30대 가량의 사내가 원장에게 다가왔다. 「원장님, 물이 다 말랐는디 워쩐다요?」 「워쩌긴.」 「어차피 깡통은 찼고 친선으로 몇 판 두면 안 되겠으라우?」 「시방 친선이라 했는가?」 「야.」 「그런 짓 혀서 뭐 할라고?」 「그냥 가기가 너무 섭섭혀서.」 「섭섭혀다?」 「야.」 「자네 올해 나이가 몇인가?」 「서른 둘이어라.」 「부모는 살아 계신게라?」 「야.」 「양친이 다?」 「야.」 「진짠게라?」 「야 진짜여라.」 「훌륭한 부모들이시.」 「워찌 그런다요?」 「자네 같은 놈을 자식이라 여기고 있응께.」 사내가 원장의 말에 학을 떼고 비실비실 걸어 나간다. 원장은 행여 그냥 두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이 판 저 판 돌아다니며 조사를 한다. 박 화백은 늦은 시각이 되도록 어쩔 수 없이 돈을 걸고 바둑을 두었다.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 지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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