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지난 바닷가를 거니는 두 연인

철썩이는 파도에 말없이 눈을 주고 가끔씩 수평선을 바라볼 뿐

저녁노을을 한껏 가슴에 담은 그들의 모습은 왠지 고독해 보인다.

오랜 연인이었던 그들을 저 석양이 슬프게 만들었나.

아니면 슬픈 그들이 석양을 품었나.

바둑이.

한참을 거닐던 그들에게서 동시에 던져지는 말에 서로가 놀라 마주본다.

거제도 구조라 해수욕장에서 그들은 처음 만났다

까까머리 졸업반 선달은 실업계라 선 취업을 나간 탓으로 머리가 제법 길어

성인으로 보아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졸업 여행 겸 친구들과 캠핑을 계획한 것이 구조라 해수욕장이다.

동대구역에서 표를 절반만 끊고 나머지는 환송객으로 입장표를 들고 들어갔다

그때가 증기기관차가 막 사라진 얼마 뒤였지만 간혹 보였던 듯하다

하여튼 각 구간을 지나면서 역무원이 차표 검사를 했고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미꾸라지처럼 구역마다 빠져 나갔다

절반이 검사를 마치고 앞으로 전달하기. 일행들을 지명하고 화장실가기.

역에 잠시 정차 할 때를 기다려 맨 뒤 칸으로 튀기.

완행열차. 

지금은 사라진 샤브샤브 같은 영상들이 추억 길을 감칠 나게 한다.

구석구석에서 통기타를 치고 연인들이 마주앉아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고

자연스런 합석과 싱글을 찾아다니는 카사노바와 터미네이터와의 시비도 잦았다.

그러나 그렇게 웃으며 지나갔다

그때 부킹의 필수 조건은 통기타였으니 선달은 목숨을 걸고 배워야했고

손가락에 피멍이 들도록 연습하여 당시에 유행하던 캠프 송과 고고를 익혀갔다

그리고 바둑.

모두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흥겨워하는 틈새에 선달은 바둑판을 폈다

자연 시선을 끌 수가 있었고 바둑은 폼이고 주변을 훑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은 마음에 드는 여성그룹 바로 옆에서 도도한 척 펼쳤거든.

뭘 알까마는 눈사태 정석을 친구 놈과 심각하게 늘어놓으면서 끙끙대며 탄식도하고

힐끗거리는 여자애들과 조금씩 늘어나는 구경꾼들 속에서 서로 찡긋거리며 히덕였고

옆에서 한마디씩 거들면 짐짓 심각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일행 일곱은 그렇게 팀워크를 이루며 부산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열차에서 어느 정도 눈을 맞추었든 긴 머리 소녀에게 달려가 행선지를 물었다

“아저씨 동생들 하고 왔어 예.”

난데없는 질문에 당황스러워 하는데 연이어 날아오는 보디블로에 숨이 컥 막혔다

“우리는 ㅎ 대학생들인데.”

니는. 뭐고. 이거다.

학생이야. 아니면 공돌이야. 그리고 제들은.

자기와 일행들에게 깝죽거릴 자격부터 물어오는 것이다.

친구들이 아직 머리가 짧아 당시 유행하던 창만 기다란 태양모를 쓰고 있었고

나만 머리가 길었으니.

일단은 말을 섞었다는 것은 분위기는 통과 되었다는 것인데.

“나는 78학번인데.”

어림 나이로 밀어 붙였고 학생증이나 배지를 원하면 재수생으로 간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기가 막힌 순발력이다

그때의 대학생이란 엄청난 권위와(?) 자부심으로 뭉친 특권층이었다.

“언냐들은 몇 학년이고.”

나의 질문에 지나는 아줌마로 보았던 웬 뚱뚱이 보모가 나서더니

“예들은 같은 학번들이고 나는 3학년이야 그리고 쓸데없이 귀찮게 하지 않았음 .”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맥이 쑥 빠졌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금물의 자만심. 순간적으로 그녀를 포섭해야함을 직감하고

“아. 그러면 누나네. 누나를 보더라도 여러분들은 든든하겠어.”

“우리는 구조라 가는데 혹 같은 방향이면 우리가 필요할지 모르니 언제든지.”

너무 물고 늘어지면 차인다.

그리고 대학생이라는 말에 부담도 왔고 꿈의 구장에서도 얼마든지 기회는 있으니까.

나름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고 보고 돌아서 일행들에게 돌아왔다

“야. 어떻게 되었어.”

금의환향을 기대하던 친구들이 둘러싸고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차라마. ㅎ 대 생들이고 깐깐해서 글렀어. “

“에이....... , ”

그러나 속으론 아직은... 하면서 광장에 퍼질고 앉아 기타를 두드린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길. 츄 츄 츄~

저기 멀리서 우리의...“

노래가 시작되고 얼마지 않아 뒤통수가 “퍽” 한다.

“뭐꼬 ㅆ 발”

뒤 돌아보니 내 뒤통수를 갈긴 친구 놈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킨다.

그녀들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보모가 나를 보고 손짓한다.

앗사르비야.

친구들의 환호와 박수에 양손을 들고 답례를 한 후 한 걸음에 달려갔다.

“누나 무슨 일이야. 결정했어.”

보모는 처음과는 달리 다정하게 말했고 경계심도 많이 풀려 있었다.

“누나.” 요것이 한 몫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둑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그들은 요즘도 보기 힘든 바둑 동아리 회원들이었고 조치훈의 팬클럽이란다.

바둑이라면 나도 꿀릴게 없다

친구 몇몇이 나 정도의(기원3급) 실력이 되고 우리는 어느 정도 깡도 있는 멤버다

안전은 필수고 기타와 바둑도 있고. 그렇게 서로(?)현지조달이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비장의 무기도 있었다.

친구 한 놈이 트럼펫을 조금하고 또 드럼도 기초를 배운 놈이 있고 음악다방 DJ.

춤의 귀재 상하이 박. 그야말로 당시에 천하무적(?) 초호화군단이었다.

조치훈의 활약으로 말문을 터고 바둑이야기와 음악이야기로 이어지니 분위기 최고.

구조라에 도착하여 저녁은 여학생들이 맡았고 우리는 숙소와 군수품 조달을 맡았다

해운대로 잠정적으로 정했던 그녀들이 우리와 동행하게 되었고 민박을 원칙으로 하되

여의치 않을 때는 우리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조건이었는데

도착하기 전에 서로 소통이 원만해져 1박2일을 유예하고 분위기 좋으면 1박을 추가.

그러기 위해서는 자금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민박을 포기하고 텐트생활로 유도했다

그래야만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역사는 이루어지니까.

그렇게 우리는 텐트를 그들을 위해 제공하고 24시간 밀착 보호하기로 했다

시쳇말로 잠자리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오르가즘을 약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텐트와 텐트사이에 비닐을 치고 금모래 침대에서 이틀 밤을 보내야 했다

사실 그날을 위하여 몇 날을 머리를 싸매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었다

그 당시 우리네 풍경을 지금 젊은이들은 모를 것이다

텐트와 카메라(올림푸스) 그리고 버너와(석유) 코펠에 이르기까지 모두 임대했다

담배와 음료수가 100원대였고

뱃삯이 1000원 기차는 부산까지 300원 정도로 기억한다.

첫날.

가는 길에 부킹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지조달을 하기로 했다

먼저. 베이스캠프를 길목 좋고 물이 좋은 곳에 설치하고

해질 무렵 트럼펫이 일장으로 출전한다.

구조라 맨 끝 절벽에 올라 저녁노을을 향해 한 곡조 땡겨 관심을 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한잔씩 하면서 느긋하게 손님을 기다리다 여의치 않으면

풍악을 울리기로 하였다.

크고 작은 코펠을 늘어놓으면 드럼이 되고 어줍잖은 기타 솜씨로라도 두드리고

이때 2장으로 상하이 박이 출전하여 그의 현란한 춤 솜씨로 관심을 끈다.

상하이 박 치어 맨도 시내를 답습하여 앞서가던 춤으로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당시는 소올 과 투스텝만으로도 통했던 시절이니.

2차로도 적당한 멤버를 구할 수 없으면 할 수 없이 선달이의 사냥(?)에 맡긴다.

1.2.3차에 성공하는 사람에게 우선 선택권을 부여하고 나머지는 자율배식(?).

그 많은 계획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자 공조체재도 일찍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개성을 내세워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향한 공세가 치열해진 것이다.

5명 중 4명은 모두 그런대로 개성이 있었고 몸도 따라주는데.

그 와중에 선달이는 보모누님에게 찜되는 바람에 어이없이 예선 탈락.

트럼펫 풍진은 단발머리 설영이가 선택했고 화사는 타냐를 찍었는데 뜻을 못 이뤄

아직도 타냐를 쫒아 다니며 순정을 쏟고 있다

상하이 박은(황소) 미숙이가 적극적이었고 드럼 맨 아하는 햇살이 침을 발라버렸다

사람 좋은 DJ 못안은 모두에서 초연하고 그저 궂은일만 도맡았다.

지금도 머슴 같은 선비로 초야에서 세상사 우습다고 꼴을 매고 소죽을 끓이며 산다.

그는 소를 찾았고 자연의 음악과 함께 살고 있다.

25점으로 나에게 바둑을 가르쳐주고 수많은 자장면과 콜라를 뺏어먹은 웬수은사(?)며

수읽기명인(뺀?) 용진이의 침묵이 의외였지만 선달은 보모 미지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우울하고 무거운 첫날밤을 그렇게 맞이했다

아. 여자. 그 위대한 이름이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