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5호 통방이다. 관물 정리해서 나와.」

간수가 문 앞에서 동삼을 부른다. 형이 확정되어 기결수 감방으로 넘어온 지 1주일 만의 통방이었다. 옆에서 누군가 측은하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1주일 만의 통방이라. 그 지긋지긋한 신고식을 또 해야 되겠군. 당신도 되게 운이 없는 편이야.」

동삼은 묵묵히 짐을 싼다. 관물이라야 간단한 일용도구 외에 죄수복과 모포가 전부였다.

동삼은 감방에서 나와 간수를 따라 긴 낭하를 가로질러 2동 건물로 들어선다. 철창에 가로막힐 때마다 간수가 한 꾸러미의 열쇠를 끄집어내 문을 딴다. 이윽고 한 감방 앞에서 간수가 발을 멈춘다.

19호. 감방 문 앞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운 좋은 놈이군. 스님 감방으로 들어가다니. 들어가 봐.」

간수가 의미 모를 미소를 입가에 담고 동삼을 재촉한다. 동삼은 관물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세 평도 채 못 돼 보이는 감방 안에는 10여 명의 죄수들이 앉아 있었다. 어둠침침한 방 한가운데 앉아 있던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동삼 앞으로 다가온다. 최대포였다.

「어서 오게. 잘 왔어.」

최대포가 동삼을 반긴다.

얼마 전 최대포와 동삼은 우연히 작업장에서 마주쳤다. 최대포는 간수에게 뇌물을 써서 1동에서 복역중인 동삼을 자신이 있는 방으로 빼돌렸던 것이다.

「그나저나 떠돌이 국수께서 난데없이 절도라니, 무슨 이런 해괴한 일이 있나?」

떠돌이 국수…….

동삼은 씁쓰름하다.

서울로 올라온 동삼은 그간 내기바둑을 두어 생긴 돈을 전부 옥화에게 주었다.

「술을 좋아해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오.」

옥화는 남편의 일로 미안해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옥화는 행복해 보였다.

그 후 동삼은 공사장에서 일을 했다. 육신을 혹사하는 일이 그나마 제일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밤이 되어 혼자가 되면 속수무책 가슴을 저미는 공허와 주체할 수 없는 허무로 술에 취해 살았다.

그렇게 술과 거친 노동으로 세월을 보낼 때 같은 공사장 판에서 만난 한 동료가 동삼을 부추겼다.

「그 나이에 아직까지 혼자라니, 그러니까 매일 술만 퍼마시고 몸이나 축내지. 내 참한 색시 하나 소개시켜 줄 테니 여자하고 살림이나 차려 보시구랴.」

그 사람의 소개로 동삼은 한 여자를 만나 살림을 차렸다.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여자였다.

동삼은 그 여자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허구한 날 술로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동삼이 밤늦게 술에 취해 돌아와 보니 그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옆방에서 세 들어 사는 홀아비와 눈이 맞아 세간살이를 모조리 빼내 함께 도망 가 버렸다. 살림을 차린 지 석 달 만의 일이었다.

오다가다 만난 그 여자에게 동삼은 정도 미련도 없었다. 그 후에도 동삼은 여전히 공사판에 나갔다가 밤늦게 술 취해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이사한 지 몇 개월 후. 비가 와서 공사를 쉬고 있는 날 아침, 누가 동삼을 찾아왔다. 안면만 겨우 익힌 건넌방에 사는 강씨라는 사내였다.

「미안하지만 이 가방 며칠만 맡아 주시구랴.」

강이 손에 든 가방을 내밀었다. 가방이 꽤나 묵직했다. 귀중품이 들었는지 가방 지퍼엔 단단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방이 허술해서 문을 잠궈도 안심할 수가 있어야지. 내 술 한잔 살 테니 좀 부탁합시다.」

동삼은 별 생각 없이 강의 가방을 받아 방 한쪽 구석에 던져 놓았다. 가방 안의 내용물엔 흥미도 없었다.

1주일 후 강은 밤늦게 술과 안주를 사 들고 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방을 찾아갔다.

그 후 그런 일이 몇 번인가 반복되었다. 강의 말로는 지방에 내려가는 일이 잦아 귀중품을 빈 방에 두고 갈 수가 없기에 부탁을 드린다는 것이었다. 동삼은 강의 말을 그대로 믿고 그가 지방에 내려갈 때마다 그의 가방을 맡아 보관해 주었다.

어느 날 밤, 공사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동삼은 잠복하고 있던 형사들에게 체포됐다. 죄목은 절도죄였다. 강은 빈집털이 전문 절도꾼이었던 것이다. 마침 강의 가방이 동삼의 방에 있었기에 가방에서 나온 강이 훔친 물건은 꼼짝없는 증거가 되었다.

절도 공범으로 몰린 동삼은 초범인데도 불구하고 1심에서 징역 1년의 선고를 받았다.

동삼은 항소를 포기했다.

형이 확정된 동삼이 2개월간의 미결수 생활을 거쳐 기결수 감방으로 옮긴 것은 1주일 전의 일이었다.

「나야 사기바둑으로 다시 들어왔지. 이번엔 재수없게 된통 걸렸어. 2년을 받았거든. 재범이라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었지.」

최대포가 솔직하게 자신의 처지를 툭 털어놓는다.

「일이 꼬이느라고 그랬는지 피해자 삼촌이 경찰 고위 간부였어.  더럽게 걸린 거지. 한 1년 조금 더 남았네.」

자신의 바둑을 보고 자신에게 배려를 해주고 떠났던 최대포. 세상에 악인은 흔하지 않은가 보다.

「참, 그나저나 인사나 하시게. 이 감방 최고참이신 초성 스님.」

최대포가 동삼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사형수야. 집행이 안 돼 10년 이상 저러구 있지.」

한쪽 눈을 찡긋 하더니 본래의 말투로 돌아온다.

「어쩌다가 한번씩 염불을 하면 초성이 얼마나 구성진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네. 그래서 초성 스님으로 통하지.」

동삼이 스님을 쳐다본다. 50줄이 가까워 보이는 장년의 사내였다. 흉악범 특유의 잔인스러운 살기도 없고, 스님다운 대자대비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맑고 깊은 눈이 인상적이다.

「이 친구가 그 유명한 떠돌이 국수 추동삼이오. 국수전 3연패를 달성한 정명운쯤은 하루아침 해장거리지.」

「에이, 설마.」

누군가 최대포의 말을 걸고 나선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눈매가 날카로운 청년이었다.

「봐라, 세철아.」

「예.」

「아무리 여기가 기강이 없기로서니 너, 감방장에게 너무 까분다.」

사내가 빡빡 깍은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머쓱해한다. 말은 나무라지만 최대포의 입가에는 웃음이 서려 있다.

그날부터 최대포는 바둑판과 바둑돌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둑판이라야 종이에 금을 그은 종이 바둑판이었고 바둑돌은 먹다 남은 밥풀을 이기어 만들었다. 바짝 마른 밥풀로 만든 바둑알은 보기보다 매우 단단했다. 최대포는 꾸준히 그 작업을 했다.

감방 안 생활은 편했다. 다른 감방에 비하여 천국이란 말이 실감 날 정도였다. 어떤 압박이나 기합도 없었고 스님과 감방장인 최대포의 통솔 아래 한 식구 같은 분위기였다.

바둑판과 바둑돌이 완성되던 그날 뜻밖에 최해수가 교도소로 동삼을 찾아왔다. 회색 승가사를 걸친 최해수가 면회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오랫동안 두 사람 사이엔 침묵이 흘렀다.

「면회 시간 다 되어 갑니다.」

말 한 마디 없는 두 사람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간수가 면회 시간을 상기시킨다. 마침내 최해수가 입을 열었다.

「벽송이 자네에게 그렇게 중요했던가?」

동삼의 입 언저리가 옆으로 비틀어진다.

사실 벽송은 상징적인 물건이었다. 중요한 건 스승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었다. 유독 자신에게만은 이해할 수 없이 냉담했던 스승이 아니었던가. 벽송을 물려받는다는 건 그런 스승의 인정을 받는 유일한 징표였다.

「자네가 떠나고 난 후 남은 여생 동안 스승의 유일한 소원을 자네는 알아야겠기에…….」

최해수의 표정이 묘하다. 동삼은 최해수가 말하고자 하는 저의를 알 수 없다. 이윽고 결심한 듯 최해수가 가슴에 묻어 두었던 말을 끄집어낸다.

「그것은 생전에 자네의 바둑을 단 한 번만이라도 더 보았으면 하는 것이었네.」

이게 무슨 말인가? 동삼에겐 최해수의 말이 얼핏 와 닿지 않는다. 실감할 수 없는 말에 동삼의 머리 속이 흐릿해진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스승님께서는 자네의 바둑만 복기하고 계셨네.」

비통한 최해수의 음성이 고막을 울린다. 동삼의 얼굴에서 조금씩 조금씩 핏기가 가신다.

최해수의 극진한 간병에도 불구하고 설숙은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자리에 드러누워 있었다.
읍내 한의원에선 뚜렷한 원인이 없는 노인의 숙환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설숙은 고가의 안방에서 6개월간이나 죽음의 그림자에 시달렸다.

어느 햇볕이 잘 드는 늦가을 오후. 최해수가 스승의 방문을 열어  보니 놀랍게도 스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복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나 말라 보기조차 안쓰럽던 스승의 몸은 그날따라 모처럼 기력을 되찾은 듯 보였다.

「스승님…….」

최해수가 감격에 겨워 스승을 불렀다.

「오늘따라 정신이 맑구나.」

스승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참으로 오랜만에 대하는 스승의 밝은 모습이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최해수는 얼른 바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뜻밖에도 스승은 동삼과 아카기의 대국을 복기하고 있었다.

동삼은 도대체 스승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가? 저렇게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동삼의 바둑을 복기하는 그 깊은 속뜻은 무엇인가?

최해수는 의문에 찬 눈으로 스승을 바라봤다. 스승은 여전히 담백한 모습으로 차분히 한 수순도 틀리지 않게 바둑을 복기했다. 그런데…….

마지막 수를 놓은 스승은 이제까지의 삶이 한갓 꿈인 양 바둑판 위로 허물어졌다.

사흘 후 스승은 세상을 떠났다.

「스승의 마지막 유언은…….」

동삼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최해수를 노려본다. 머리 속에서 쉴 사이 없이 범종이 운다.

「……자네의 기보를 관 속에 넣어 묻어 달라는 것이었네.」

범종이 울부짖는다. 가슴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통곡하듯 범종이 울부짖는다. 범종은 산산이 부서져 바람에 흩어진다. 바람이 흩어진 그 자리에 동삼은 석불처럼 서 있다.

「스승이 일생 동안 가장 사랑했던 제자가 누구였는지 이제야 알겠나…….」

세월이 지나간다. 그 세월 속으로 사람이 지나간다. 사람이 지나간 그 위로 또다시 세월이 지나간다. 세월이…… 사람이…… 세월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무망스러운 일이어라…….」

최해수가 돌아가고 동삼은 간수가 끌고 갈 때까지 철창 앞에 앉아 있었다.

감방으로 돌아오니 최대포가 싱글거리며 동삼의 코앞에 대뜸 바둑판과 바둑알을 내민다.

「드디어 다 만들었네. 자 슬슬 떠돌이 국수님께 한 수 배워 볼까.」

조잡한 종이 바둑판과 밥풀로 이긴 돌이 제법 그럴싸하다.

「다섯 점은 놓아야 하지 않을까? 추 사범.」

최대포는 동삼의 동의 없이 판 위에 다섯 점을 놓는다.

동삼이 종이로 만든 바둑판을 멍하니 내려다본다.

「뭐하는가. 빨리 두시게.」

바둑판 앞에 고개를 숙인 채 동삼은 아무런 기척이 없다.

「…….」

동삼의 눈에서 바둑판 위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