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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3부 마지막 명인(名人) (3)

2007-03 조회 4017추천 0 프린트｜스크랩

검토하던 기사들이 형세와 차후의 수순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그때 반상을 바라보던 추동삼이 백돌 하나를 들어 판위에 놓았다. 계속해서 추동삼이 한 수 한 수씩 놓으며 반상위에 그림을 그려 나가자 검토실은 졸지에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술에 취했지만 추동삼의 한 수 한 수는 냉정하고 정확했다. 추동삼이 자기 입장에서 흑의 한 수를 놓으면 바둑은 뒤집어져서 흑의 유망한 국면이 되고 백의 입장에서 한 수를 놓으면 백의 승리가 굳어지는 것 같았다. 추동삼은 대국하는 두 사람의 속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중반전이 넘어갈 무렵, 백을 쥔 박순제 5단이 흑의 중앙 미생마(未生馬:바둑에서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말)를 공격하고 자기 말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 중앙으로 튼튼하게 날일자 행마를 했다. 검토하던 기사들은 일제히 그 수에 공감을 했다. 누가 보더라도 공수를 염두에 둔 절대점이었다.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석파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추동삼이 비틀었다. 「흑이 손을 빼서 우상귀를 지키면 승부는 끝이다.」 얼핏 보아 보강을 겸한 선수 같지만 사실 그 수는 대세를 놓친 수였다. 실리의 균형을 무너뜨린 승부에서 벗어난 한 수였다. 실제로 흑을 쥔 정명운은 추동삼의 말대로 우상귀에 철주를 내려 버렸다. 「정명운답군……. 정명운의 실리 지향 바둑은 앞으로 바둑사의 흐름을 주도할 것이다.」 말을 마친 추동삼은 술에 취해 바둑판 옆으로 꼬꾸라졌다. 「뒤에 전해 들은 얘기지만 정명운은 도전권을 획득한 기쁨보다 그때 전해 들은 추동삼의 해설로 인해 더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것 때문에 오랫동안 슬럼프를 겪었다고 하더군. 어쨌든 그날 전주여관 사건은 추동삼이란 한 인간의 기재를 극명하게 보여 준 큰 사건이었지.」 석파 선생의 회고담을 들으며 박 화백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마치 아득한 야사 속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후의 소식을 들은 기억은 없습니까?」「글쎄…… 소문에는 내기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도 있고…….내기바둑 쪽을 한번 훑어보면 그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는지…….」 그러면서 석파 선생은 내기바둑의 산실이라 불리던 답십리와 청량리 쪽 기원의 이름을 대여섯 개 가르쳐 주었다. 박 화백은 석파 선생이 가르쳐 준 기원들을 일일이 수첩에 메모했다. 석파 선생은 박 화백에게 문제의 기보를 돌려 주며 혀를 찼다. 「이 사람이 죽는 날까지 가슴에 돌을 얹고 살았구만…… 못난 사람 같으니…….」 정 국수의 선산은 경기도 용인군 백암리였다. 장지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이미 꽃상여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여에 관을 옮겨놓자 명정대와 공포대를 앞세우고 장례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소리꾼의 구슬픈 상여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하늘은 손가락만 닿아도 쪽빛물이 쏟아질 것처럼 푸르렀다. 원래 박민수 화백의 고향은 남해안에 있는 조그마한 항구도시였다. 어선 두 척을 소유한 아버지 밑에서 민수는 비교적 유복하게 성장했다. 그런 민수의 가정에 불행이 닥친 것은 민수가 국민학교 4학년이던 해 겨울이었다. 어부들과 함께 조업 나간 아버지의 배가 풍랑에 휩쓸려 사고를 당했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이 집 안으로 몰려들었고, 피해자들은 연일 죽치고 앉아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배는 소식이 없었다. 남은 배 한 척과 집을 비롯한 모든 재산을 내놓고 민수의 어머니는 민수와 민수의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시장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민수는 아버지에 대한 신망이 두터웠다. 아버지는 강했다. 파도에도 끄덕없었고 태풍 같은 큰 바람도 무사히 헤쳐 나오는 사람이었다. 민수는 언젠가는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거센 파도를 헤치고 뱃전에 깃발을 나부끼며 개선장군이 되어 나타날 것만 같았다. 방과 후에는 으레 선착장에 나가 저녁해가 질 때까지 민수는 바다를 지켜보았다. 선착장에는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어부들과 해녀, 시장 사람들, 그들의 상거래가 선착장의 하루 일과였다. 선착장 부근에는 인근 동네 노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주로 바둑이나 장기, 혹은 화투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민수는 선착장에 오면 늘 노인들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방파제로 달려가 바다의 가장 먼 곳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 날 그곳에 웬 노인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를 임 노인이라 불렀다. 임 노인은 행색이 바다 사람들과 달랐고 얼굴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선착장 노인들과는 구별이 됐다. 임 노인은 말이 없었다. 임 노인은 주로 선착장에서 바둑만 두었다. 노인들 중에 제일 센 사람이 임 노인에게 넉 점을 붙였다. 민수는 왠지 임 노인이 좋았다. 전에는 바둑에 관심이 없었으나 임 노인이 바둑을 두고부터 민수는 바둑을 어깨너머로 구경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저녁 무렵 민수는 여느 때처럼 방파제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방파제 쪽으로 임 노인이 걸어왔다. 그는 민수 옆에 말없이 앉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바둑을 두면 잊을 수 있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민수가 아다리(단수: 돌의 활로가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둘러싸여 따먹히기 일보 직전에 놓인 상태, 그 당시에는 일제 치하의 습성으로 그렇게 불렀다)를 아는 데는 사흘이 걸렸다. 두 집이 나야 산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다시 5일이 걸렸다. 패를 이해하는 데는 보름이 걸렸고 죽고 사는 모양, 즉 오궁도화나 매화육궁(梅花六宮:매화꽃잎처럼 동그랗게 뭉쳐 급소 치중 한방으로 죽는 6궁. 이름은 예쁘지만 비능률적인 모양의 전형)은 한 달이 넘어서야 대충 짐작이 갔다. 민수는 점차 오묘한 바둑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민수가 바둑에 심취해 있을 즈음 선착장에서 임 노인의 모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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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7단*	2조6553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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