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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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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11회] 3부 마지막 명인(名人)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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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승부욕이란 그만큼 처절한 것이야. 그리고 바둑이야말로 그 처절한 승부욕을 불지르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지. 바둑을 득도와 생사해탈의 과정이라고 하나 승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것이 바둑의 진면목인지도 몰라.」 석파 선생이 그런 결론을 유도하자 좌중은 일순 숙연해졌다. 그때 박 화백의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석파 선생이라면 혹시 추동삼을 알고 있을는지 모른다. 김 7단의 말에 의하면 추동삼은 짧지만 기사 생활을 했다지 않은가. 「석파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석파 선생은 박 화백을 물끄러미 건너다본다. 「고인하고 친척이 되시나?」 「아닙니다. 정 국수님과는 생전에 짧은 인연이 있었지요. 저기 걸린 초상화를 그린 사람입니다.」 「그래요? 운필에 힘과 기상이 넘치더구만, 존함은 어떻게 되시오?」 「박민수라고 합니다. 화단에 겨우 이름 석 자만 걸어 놓고 있습니다.」 「오! 박민수 화백. 내 인사동 화랑에서 익히 이름은 접했지만…… 오늘 처음 대면하게 되는군.」 방명록에 적힌 글씨에서 짐작했었지만 석파 선생은 나름대로 한학과 서예에 조예가 있었다. 박 화백은 문제의 기보를 꺼내 석파 선생에게 내밀었다. 「혹시 여기에 적힌 인물에 대해 아시는 바가 없습니까?」 그리고 간략하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석파 선생은 기보를 들여다보더니, 이미 하얗게 센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뜻밖에 설숙도장에 대한 언급을 했다. 「설숙도장이라면 한때 한국 바둑의 중심지라고까지 일컬어지던 곳이었지. 동란 전까지 서울의 필동에 자리잡고 있다가 사변 후에는 경북 영양(英陽) 근처 시골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지만……어딘지는 정확한 기억에 없소. 너무도 오래 된 일이라서…….」 「설숙도장이란 이름은 사람의 이름을 딴 것입니까?」 「당연하지. 설숙도장은 바둑의 보급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에 어쩌면 한국 유일의 바둑 도장이었는지도 몰라. 나도 해방 전에 꼭 한 번 설숙 선생을 뵌 적이 있는데 그 선비적인 기상과 서슬 푸른 기개는 당시 젊은 내 가슴에 우상처럼 남아 있었소.」 「어떤 분이셨습니까?」 「대단한 명문의 후예로 기억되는데…… 오래 된 일이라서 잘 기억할 수가 없소. 하여간 큰 재산가로서 기재가 있는 사람을 발굴해 무료로 입히고 먹이면서 준재(俊才)들을 양성했지. 나도 한 번 우연히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로서야 그분에게 바둑을 배운다면 일생의 영광이었지…….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그분 밑에서 바둑을 배울 수 없었어. 아마 내 기재가 그분의 성에 차지 않았는지…….」 「그런 분이 왜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웬걸, 우리 연배의 사람들에겐 그분은 상징적인 인물이었소. 그러나 당시는 일제 치하와 격동의 시절이었고 해방, 사변, 이승만 시대의 독재…… 가히 한국 바둑의 암흑기였지……. 일본에 의해 조선인의 정신세계까지 침략을 당했던 시절에 그분은 비록 바둑이었지만 조선인의 정신과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소.」 박 화백은 질문의 방향을 달리했다. 「혹시 최해수씨나 추동삼씨의 이름은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정 국수는 설숙 선생의 마지막 제자로 기억되오.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지. 그리고 최해수란 사람은 아마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설숙 선생의 또 다른 제자였을 것이오……. 그리고 추동삼이라…… 추동삼.」 박 화백은 추동삼의 이름이 거론되자 바짝 긴장했다. 「그 사람도 설숙 선생의 문하생이었을 거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 파문당한 제자였지.」 「파문이오?」 「그렇소. 내 기억이 틀림없을 것이오.」 「죄송한 말씀이지만 혹시 한일기원으로부터 제명당한 것을 잘못 기억하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파문과 제명을 혼동할 정도로 내 기억력이 쇠퇴해진 것은 아니오. 당시…… 추동삼씨는 입단 대회를 거쳐 정식 입단을 했었소.」 「듣기로는 기사 시절에 16연승을 구가했다고 하던데요.」 「그랬을 거요. 기존의 일급 기사들까지 그와의 대국을 피했을 정도니까. 이겨 봐야 당연하고 지면 망신이니, 게다가 누구도 추동삼과의 대국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소. 기사들 사이에 그는 공공연하게 기피 대상이었지…….」 「그런데 왜 제명을 당했습니까?」 「제명이라기보다…… 그땐 살기도 어렵고 해서 입단 후 그만두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소.」 「추동삼씨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은 없습니까?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석파 선생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1962년 겨울의 이야기를 들려 줬다. 1962년 겨울, 종로의 전주여관 특별 대국실에는 국수전 도전자 결정전이 열리고 있었다. 대국자는 정명운 4단과 박순제 5단이었다. 기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바둑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그 판은 주목을 끌었다. 대국실 옆에 마련된 검토실에는 많은 전문기사들이 나와 한 수 한 수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었고 일부 바둑 애호가들은 대국이 시작되는 오전 열 시 전부터 모여들어 전문기사들의 해설을 들으며 검토실의 열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지나 한참 중반전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던 때였다. 검토실의 문이 열리고 대낮인데도 벌써 얼큰하게 술에 취한 추동삼이 들어섰다. 검토실에 술이 취해 들어온 것은 분명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었다. 한일기원에서 제명을 당했다고는 하나 기사들에게 추동삼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술 냄새를 확확 풍기며 추동삼은 기사들 몇이 검토하는 곳으로 가더니 털석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술에 취해 건들거리며 반상을 내려다보았다. 정명운의 흑번, 박순제의 백번으로 진행되는 바둑은 중반전이 진행되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이 거듭되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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