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일기, 적성검사

 오늘이 무슨 중요한 날이었는데 모르고 지났다.
퇴근 길에서야 생각이 난다. 아차 오늘이 운전면허 적성검사 마지막 날 이었는데.
오늘 종일 중요하게 생각 했던것은 일찍 퇴근 해 S의료원에 가 00암 2기라는 그 분의 수술 스케줄을 잡아보려던 것이었는데.

 10년 넘게 같이 근무하던 이가 오늘 퇴직을 하여 회식스케줄이 있엇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그에게 미리 찾아가 참가를 못하는 양해를 구했다. 그토록 중요한 일이 있는 오늘 하루 인 것을 명심하고 있었는데 면허 적성검사를 못 했으니 이젠 운전을 못 하는 것일까?

 수술장에서 나온 환자는 정신병동으로 간단다.
오랜 병원 생활에도 이런 케이스 는 처음이다. 정신병자를 수술 했다는 것일까? 수술장 간호사도 헷갈리는지 반복해 예기한다. 10-3병동 환자에요. 장거리 환자니 제가 가야겠네요. 아뇨 저도 아직 못 가봤는데 제가 갈까요? 라며 수술장 우리직원 선임은 얘기한다.

 아파 아파 Long-Cart위의 환자는 계속 같은 소리로 호소한다. 무통주사를 눌렀으니 나아질거에요. 지금 병동으로 가니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환자에게 계속 예기해도 못 알아듯는것 같다.

 채혈실의 직원 하나는 8시 출근하자마자 조퇴를 하고 응급실의 직원 하나는 예비군이라 두시간 반 근무 후 들어갔다. 약제부 직원 하나를 채혈실로 대치근무를 시키고 ER엔 점심식사 후 내가 가서 돕는다. 그다지 바쁜일은 없어 다행이다. 약제 인원이 하나 빠지니 내가 고달프다. 돋보기를 계속 쓰고 일했더니 눈이 아른거린다. 공부도 젊어서 해야 한다더니 이젠 책 읽기는 커녕 사무 보기도 이리 힘들군.

 6시 신사동으로 예약 되어있는 퇴직자 회식에 가야 하는 것일까?
장로님의 수술건으로 S의료원에 가야 하는 것일까?
옳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나아 가야지 라는 신념대로 사실을 내가 아는 것을 있는 그대로 설명드린다.

0장로께서 00암 2기 판정을 받으셨다는 병원이 어딘지 아십니까?
00병원 입니다.

그 병원은 해당 과 전문의만 5명인 저도 아는 병원입니다. 대형병원은 오히려 이식수술 정도나 되야 수술로 치고 간단한 것은 전공의 들이 하게 될텐데 환자 당사자 에게는 큰 일이겠지만 대형 병원에선 1년 1년 반 씩 수술 스케줄이 가득 차있고 웬만한 부인 암 수술등은 오늘 입원 내일 수술 그 다음날 퇴원입니다. 그리고 청탁을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문화가 정착되 있어 원칙대로 하면 처음부터 검사와 판독 수술날짜 결정등이 몇 달은 걸릴텐데요. 물론 조금 앞 당길수는 있겠지만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시작해야 될 것입니다.

 환자 본인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첫 순서이니 이렇게 전해주시고 결정을 일러주시면 제가 할 수 있는일은 손을 쓰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었다. 그 후 저녁 늦게 전화가 온다. 그냥 작은 병원에서 수술을 하시기로 하셨다고.

 검사와 판독등을 다시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게 빠른 길일텐데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작은 종기만 나도 전신을 MRI 를 찍어 전이 가 없나 검사하는 것이고 설령 00암을 완치했어도 전이가 이미 어디까지 되어있는지 검사도 필요한것이긴 할텐데. 내가 의사도 아닌데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 이겠지.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으니까.

 종일 걱정을 하며 나자신의 적성검사 마감일도 잊었었는데 그래도 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퇴직자의 회식에도 못 가며 오늘 무엇을 한 것일까? 이래서 나는 항상 부족한 것일까? 안 되는 건 처음부터 모른다고 자르면 될 것을 해 보겠다고 했다가 해 주지도 못하고 욕을 먹고 자신을 자책하게 되는 것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