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162, 왕장고의 투석

편을 갈라 앉으니 내 상대는 왕장고 이다.
내 편 둘이 다 지더라도 최소 1등은 하겠군 내심으로 생각한다.
왕장고는 야채가게를 하다 이젠 아들에게 물려주시고 은퇴해 등산 후 기원에 오는 것이 일과이다.
룸사롱을 하는 유사장과 연배여서 둘이 같이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둘 때마다 최소 다섯방 보통은 일곱방 씩 이기게 되 칫수가 안 맞는것이 아닌가 이상하기도 하지만 편바둑에선 서로 칫수가 정확하게 판별이 되니 왕장고가 유독 내게만 약한것이다. 왕장고와 둘때는 시간만 지나면 이기는 것이니 내심 즐겁지만 문제는 반상에 돌을 놓지않고 마냥 장고를 하는 것이다.

엄청난 장고 후에 반상에 돌을 올려놓길래 너무 반가워 혹시 다시 돌을 떼기라도 할까봐 급히 둔것이 뻑으로 몇십집을 손해 보았지만 그래도 네 집인지 이긴적이 있었다.

왕장고는 잘못걸렸다고 생각되는지 둘까말까 망설이는 기색이다. 빠지면 나까지 빠져야하고 그럼 나머지 넷이서만 편 바둑을 두게 되는 것이다.

오랜만이시네요. 작년 초 J기원에서 두고는 일년도 넘었네요.
저는 일년동안 바둑을 안 둬서 많이 줄었을텐데.

그동안 바둑을 안뒀어? 정말 오랬동안 못 봤어. 자주 좀 오지 그랬어.

바둑을 오래 안 뒀다니 감각이 줄었을까 실력이 좀 줄었을까 마음이 조금 놓이는지 그제서야 반상에 돌을 올린다. 두점을 올린다.

오래 안둬서 칫수도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두점은 아니었는데요. 옆의 박사범이 판 진행이 안되자 묻는다. 룸사롱 유사장과는 칫수가 어떻게돼지? 선3목 입니다. 그럼 그 칫수로 같이 하면 되겠네. 5목을 주자 바둑은 시작된다. 둘때도 왕장고이지만 시작까지도 엄청 오래 걸린다. 에휴 이렇게 어렵게 바둑을 시작해야 하나?

쉬운 길 보다는 복잡한 정석등을 택해야 실수가 나올테니 초반부터 흔들자 더더욱 장고에 빠진다.
경적필패 라더니 초반 패 가 생겨 좌하 귀가 죽어버린다. 4 5십집은 헌납하고 시작하게 된다.

여유가 생긴 장고는 함빡 웃음지으며 주위를 돌아보며 으스댄다.
산에서 내려올 때 눈발이 날리니 정말 멋있던데. 내려오니까 길은 다 녹아있어.

같은 편의 두 명은 모두 져서 합 25집 정도이다.
더욱 여유가 생긴 장고는 연실 벙실벙실 웃음지며 주변 사람들과 잡담을 즐긴다.

중앙에서 결판을 내야되겠군 싶어 좌변에 두어온 돌을 몰아 중앙으로 띄운다. 곤마가 아닌 세력이라 할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흑이 먼저 손이 가면 중앙에도 2 3십 집은 날 모양이어 뒤집기는 정말 쉽지 않겠다.

우상의 귀에 말뚝을 박았는데도 귀에 침투한 흑을 다시 중앙으로 띄운다.

우상 귀에서 탈출하는 흑이 중앙과 차단되게 하면 어느 한 쪽은 잡겠군 속으로 계산서를 만들어 본다.
상변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흑의 차지가 되게 방치하며 대신 두텁게 세를 쌓는다.

실리를 밝히는 장고는 귀도 잡고 상변도 차지하니 설마 중앙이나 우상귀 침투한 흑이 죽지는 않겠지 생각하면서도 예의 노상 지던 생각이 이제사 나는지 조심하며 다시 장고에 빠진다.

곁에서 관전하는 이들은 삼성 말이 죽었네 라며 놀라면서도 이제 흑이 많이 이긴 것도 없네 하며 빨리 끝내고 다음 판을 시작하게 삼성을 1등 시키지 라고들 권한다. 제일 많이 진 사람이 꼴등 벌금 만 원을 내야하니 장고 편의 둘은 동의를 안 한다. 박사범은 계속 둬서 결과를 봐야지 라고 선을 긋는다.

장고는 이제 조금만 이겨도 되고 심지어는 24집 까지는 져도 자기 편이 이기는 것이니 쉽게 쉽게 양보를 한다.

설마 중앙말이 죽으랴 방심을 하고 있다.
초반에 좌하 대마가 죽은 곳은 단 한 수 외곽에서 활용하는 수단이 남아 있어 그 방향으로의 연결은 안 되는데 장고는 처음부터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초반부터 계속 중앙으로 띄워 놓았었다.

죽은 말의 활용수 한 수의 맛을 처음부터 끝까지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50십 이상은 이기는 모양이 되었다. 중앙 대마를 모두 잡은 것이다.
투석을 한 장고도 서운함을 못 이기는 안색이지만 먼저 이겨 놓은 그 편의 둘도 그럼 그렇지 왕장고가 이길리가 있나 하며 안타까워 한다.

바둑 안 둔지 1년 되었다고 뻥치며 끌어들여 시작한 첫 상대가 하필 늘상 왕창 진 악몽을 잊지 못하고 있었을 왕장고인데 초반 대마를 잡았다가도 되레 엄청 졌으니 앞으로는 절대 안 두려고 하겠지.
좋은 손님 한 사람 놓쳤군 속으로 생각한다. 나도 승부에 너무 집착하는게 탈이긴 탈이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