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은 옛날 영남의 선비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데

남쪽 추풍령, 북쪽 죽령, 가운데 문경세제 중에 영남의 선비들은 문경세제를 넘었다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 같이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죽 쑨다는 속설 때문에

영남의 선비들은 꼭 문경세제로 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경사스런 소식을 전한다는 문경의 속뜻이 또 한몫 한듯하다.

한 달 아니면 두 달 아니 요즘은 기약도 없는 산사 길.

일상에 초연하고 성실하게 임했건만 마음보다 발걸음은 더디다

어디를 몇 번을 다녀옴에 구애받지 않는다 했더라도

마음 일어도 나서지 못함은 일상에 충실하고도 구속받기 때문이니

자투리를 엮어 다녀오기가 이리도 어렵더라 말인가.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위로가 되려나.

주먹밥과 삶은 계란에 커피.

가끔 라면과 심심풀이 군것질 거리만 있으면 되는데

실상 천리 길을 다녀 올 여비가 족쇄가 된다.

딸내미 방학도 끝나가고 년 초에 절에 다녀오면 좋겠다는 엄니 말씀에

겸사겸사 절도하고 구경도하고 큰 맘 먹고 셋이서 추억 만들기로 했다

새로 바꾼 애마(달빛)랑 첫 출사이기도 했고.

여러 곳을 갈등하다가 문경으로 정하고 대승사와 윤필암을 둘러보고

김룡사와 인연이 허락한다면 철의(?) 용맹도량으로 알려진 봉암사를 택했으나

봉암사는 결국 철문에 가로막혀 되돌아 와야 했다.

봉암사 주변은 입산금지요 입구는 하난데 초파일만 개방한다고 하니........

안되면 산을 돌아서라도 갈려고 했지만.

결국 우리는 문경새재와 레일바이크를 타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문경은 자연 그대로의 전원도시임에는 이설이 없었다.

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거리 맑은 공기에

정신은 진공상태가 되고 몸과 마음은 무중력이라 달리 비울 게 없다.

그저 그렇게 산길 따라 들길 따라 부평초처럼 떠다니다 온 것 같다.

(먼 산아래 펜션인 듯한데 꼭 이티 집 같아^^)

 

첫 행선지 대승사는 내 개인적으로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 생겼다

산사 길을 따라 나서는 것 어설프게 삼배를 하는 것으로도 고마운데

삼배만하고 쉬라고 했건만 딸내미가 우리랑 같이 108배를 한 것이다

무엇을 염원 했는지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우리랑 같이 지금의 시간에 감사한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108배를 한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 여독을 푼다고 마신 술에 들떠

나는 부처가 되고 만다.

“네가 지금 제일 갖고 싶은 게 뭐야.”

대승사 대웅전

용이 물고기를 물고 승천하는 모습인데 생소하다
 

석등과 비슷한 역활인 듯한데 아마도 소나무 관솔 같은 것을 올려놓고 불을 밝혔던 듯.

대승사는 고려 공민왕 때의 나옹 선사(1320~1376)가 득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나옹 선사는 영덕의 장육사에서도 접했는데 선시가 편액에 남겨 있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창건설화.

 

대승사 창건과 관련된 전설 가운데 우(牛)부도가 있다.

창건 당시 큰 황소가 나타나 나무와 기와를 실어 날랐다고 한다.

이 황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건축 자재를 필요한 곳에 놔두었다.

일하던 사람들은 공사가 끝나면 황소가 어떤 행동을 할까 궁금해 하고 있는데,

마지막 짐을 실어 나른 뒤 황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히 여겨 사찰로 올라가 보자 그 중턱에 소가 쓰러져 죽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 가상히 여긴 사람들이 소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우부도이다.

대승사 오르는 길 숲 속에 있는 이 무덤은 여느 스님의 무덤처럼 평범한 부도지만

큰 비가 내리면 빛을 발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또 나옹선사가 수행했다는 말안장 바위는 산꼭대기 절벽에 있는데

마치 회전목마처럼 생겼다.

마을 주민들이 보기에 바쁜 일철에도 나옹선사는 늘상 이 바위에 앉아 놀기에,

선사가 입적한 뒤 홧김에 말의 머리 부분을 부숴 버렸다.

그 사건 후 이상하게도 마을에 우환이 겹쳐 마을 주민들이 다시 계곡 밑에서

머리 부분을 주워 붙였다고 한다.

그 후 우환이 사라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바위에 가면 말머리 부분을

돌가루로 붙인 흔적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문헌참고)

 

(윤필암 사불전에서 바라 본 사불암)

상단에 우뚝 솟은 바위가 사불암인데
사면에 불상을 새겨 놓았으나 지금은 풍화작용으로 많이 소실 되었다고 한다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이 대승사에 계실 때 면회 온 청담스님의 딸을

성철스님이 출가를 설득 그 해 단오 날 성철스님이 손수 가위를 들고

삭발시키고 제자를 삼은 곳이라고 한다.

비구니 가운데 유일하게 성철스님으로 부터 계를(묘엄스님) 받았다고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남의 허물이 크게 보이고 세상이 안타깝다

내 뜻이 틀리지 않으나 정작 서로를 오해하고 안타까워함은

틀려도 잘못되지 않고 틀리지 않아도 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가.

세상은 싸가지 없어야 절실한 것을 원할 때 취할 수 있고

결국은 그 절실한 것이 싸가지에게 모여 모두를 말하게 되는 듯하다.

집착하지 않으면 그 마저 부질없을 걸

인생 두루마기는 한 벌인데 마음 계절은 수시로 변하고

계절을 따라갈까 한 벌의 두루마기로 유유자적 할 것인가

인연의 명분을 내세우고 욕심을 변명하는 오해 속을 넘나들며

외로운 길 굽이굽이 따르는 나그네 눈에 산 아래 신작로가 허허롭다.

아직도 내 눈에는 장강의 의연함만 보이고

그것에 묻힌 이야기 그 작은 행복과 가치를 깨달지 못한다.

실제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 돌 틈 사이에서 일어나는데

집착하지 않으려면 그 이야기들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나

그 위로 흐르는 평온만 부러워하고 내 작은 이야기에 소원하다

중생들의 삶이 인연의 부딪침에 소심하고 의연하지 못한 이유가

모두가 신세 때문이니 행한 대로 돌아오고 돌아오면 또 갚아야하고

선은 선한대로 악은 악한대로 그렇게 다람쥐 채 바퀴 돌리 듯

끝없이 되풀이 되는 업의 물레를 돌리며 살아가고

우리는 그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울고 웃는가보다.

새벽에 일어나면 감사하고 일상에 성실하다 저녁으로 반성하고

가끔 도리를 돌아보며 신세에 소홀하지 않으면

그것이 인연에 얽매여 진정한 나를 보지 못할지라도

작은 물이 돌부리를 넘지 못함에야 돌아가야지 어찌할 것이며

게을러 작게 빚은 잔으로 무엇을 더 얻어 담으리.

무심히 산사를 오르내리며 천년의 소리를 듣는다면

이끼 낀 석등도 아니요 퇴색한 단청과 벌레 먹은 석가래도 아니다

터벅터벅 구름그림자 따르다 법당 지날 때 마음 동하여 엎드리고

땀방울 훔치고 숨 고르다 보면 조금 선해 진 마음으로 듣는

새소리와 물소리 그리고 바람이 나뭇잎 켜는 비파소리 일 것이다.

여기서 문득 스스로 잊고 있던 선한 중생을 만나고

작은 생각이나마 담아주고 행하게 하고 느끼게 해주는 육신에게

동안의 자학을 미안해하고 지금을 있게 한 고마움을 되새기며

돌 틈 사이 이름 모를 꽃 바라보다 호젓한 풍경소리에 고개 드니

멀리 부평초 같은 구름 한 점 선한 달을 돌아간다.

2013.2.17 대승사에서 法印.

다음은 일주일 후 김룡사를 올리겠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