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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회] 6부 깊은 산사의 노승 (4)

2007-03 조회 3895추천 0 프린트｜스크랩

경상남도 의령군(宜寧郡) 유곡면(柳谷面)에 황판수의 본가가 있었다. 소록도에서 황판수의 본가가 있는 유곡면까지는 승용차로 여섯 시간 거리였다. 가는 도중 박 화백은 진주에서 은퇴 후 칩거 중인 고등학교 은사이며 일생 동안 마음의 스승으로 모셔온 최원식 선생님을 찾아갔다. 「오늘 아침 육효(六爻)를 쳐 보았더니 오후에 반가운 손님이 온다기에 누군가 했더니 바로 자네였군.」 얼마 전에 고희를 넘긴 선생님은 노인답지 않게 정정해 보였으며 지금도 사군자 중 대나무 분야에 있어서는 탁월한 기량으로 단연 으뜸이었다. 화랑가에서는 선생님의 작품을 구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지만 여간해서 작품을 외부에 유출시키지 않는 관계로 선생님의 작품은 소품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고액에 매매되곤 하였다. 6년 전 오랫동안 맡고 있던 대학교수직을 그만둔 후 선생님의 그림은 시중에서 더욱 구하기 힘들어졌다. 박 화백이 도착했을 때 마침 선생님은 작업 중이었다. 내리치는 붓끝이 때론 솜털처럼 가볍게 때론 폭풍처럼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대나무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찬 그림으로 형상화되어 갔다. 박 화백의 눈에 비친 선생님의 운필은 이미 법도를 초월한 자연 그 자체였다. 「선생님의 죽(竹)은 갈수록 기상이 넘치질 않습니까?」「묵(墨)의 형상은 필법(筆法)에서 오는 것이나 필법을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도달했다 할 수 있겠느냐?」「필묵의 경계는 어떻습니까?」「원(元)나라 사람 오진(吳鎭)이 말하길 예로부터 묵죽(墨竹)이 많았다고 하지만 초범(超凡)하고 입성(入聖)의 경지에 이르러 공장(工匠)의 기를 벗어난 사람은 드물다 했다. 묵죽은 하나의 기예라 할지라도 이에 정통하고자 한다면 마음이 도달한 자가 아니어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대나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 죽의 묘법(妙法)이다.」「죽이되 죽이 아니라는 뜻입니까?」「마음을 다스리려면 색작(索作)을 행해야 하며 형사(形似)를 구하지 않는다. 즉 사실이나 기법에 구애받지 않는 필묵의 도리를 으뜸으로 여긴다.」 선생님은 녹차를 끓여 박 화백과 마주앉았다. 「개인전을 한다더니?」「포기했습니다.」「왜 포기했느냐?」「왠지 마음이 내키질 않습니다.」「마음이 가는 대로 버려 두어라. 다만 어떤 것이 너의 진정한 마음이냐 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음은 우주와 같으나 그것은 항상 딱딱한 껍질에 싸여 여간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싸고 있는 껍질은 심포(心包)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마음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심포로서 마음의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마음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일에 집착하는 것은 심(心)보다는 심포의 작용일 수도 있다. 흘러가는 대로 버려 두어라. 마음이 얽매이거나 제자리를 잡지 못하면 그것이 병이 되어 너 자신을 해치게 될 것이니…… 틈 나는 대로 내가 가르쳐 준 명상법에 따라 명상을 자주 하도록 해라. 그리고 혜안의 눈을 뜨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라.」 그날 두 사람은 모처럼 바둑으로 늦은 밤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음날 아침 박 화백은 선생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의령 황판수의 본가로 향했다. 진주에서 의령을 지나 유곡까지는 약 두 시간 가량 소요되었다. 주소에 적힌 대로 황판수의 집을 찾아가 보니 황판수의 생가는 이미 폐가가 되어 있었다. 집은 주변 마을과 떨어진 야산 아래 외딴 곳에 있었다. 초가집이던 것을 슬레이트로 엉성하게 얼기설기 걸쳐 놓은, 사람이 산 지 오래 된 집이었다. 박 화백은 일단 동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벽촌의 초겨울은 을씨년스러웠다. 감나무 잎이 스산하게 길가에 흩어지고 개 한두 마리가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조금 걸어 들어가자 동네 한복판에 구멍가게가 나타났다. 박 화백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십니까?」 박 화백이 가게에 딸린 방을 향해 주인을 부르자 슬그머니 방문이 열렸다. 낮잠을 자다 깬 50이 넘어 보이는 아낙이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박 화백은 오래 된 구형 냉장고 안에서 사이다를 끄집어냈다. 마개를 따고 한 모금 마신 뒤 박 화백은 아낙네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저기 산 아래 외딴 집 있죠?」「예.」「지금은 폐가가 됐던데 그 집에 황판수 씨란 분이 살았죠.」「황판수. 아, 문둥이 노인 말인가베요.」「네.」「와 그라요?」「그분 소식을 알까 해서요.」「그 노인 벌써 죽었심더. 그 집엔 지금 아무도 안 삽니더.」 설마 했던 가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폐가가 된 집을 보고 마음이 조마조마했으나 아낙의 말은 한칼에 박 화백이 제일 우려했던 점을 찔러 버렸다. 죽었다니, 천신만고 끝에 찾아왔는데 죽었다니, 이것으로 끝인가. 결국 여기서 끝나고 마는가. 박 화백은 평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멍해졌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 나갔다. 「노모가 살고 있었소. 팔순이 넘어 평생을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오길 기다렸구마. 그래 어느 날 황 노인이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 기라요. 참, 보기 딱하더마요. 그런데 세상에 아들이 돌아온 지 보름도 안 돼 노모가 죽었는 기라요. 벌써 죽었어야 할 목심을 자식이 보고접어서 끝까지 기다린 기라요. 얼매나 자식이 보고 싶었시믄…….」 아낙의 눈에 금방 눈물이 맺힌다. 황판수는 마지막 순간에 소록도를 떠나 결국 늙고 병든 어머니에게로 돌아온 것이었다. 박 화백은 담배를 입에 문다. 허망했다. 이제 추동삼은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가……. 「황 노인은 늘 강가에 나가 있었심더. 어머니의 뼛가루를 뿌린 강가에서 종일 앉아 있곤 했답디더. 강에 안 나가는 날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으니께요. 우짜다 밤이 되가 읍내에 나가는 걸 본 적이 있었지만 밝은 대낮에는 거의 두문불출이라요. 동네 사람들은 그 집 앞에 얼씬도 안 했구마요. 문둥병 걸렸다가 돌아온 사람을 누가 가까이 하겠소. 사람들이 야박스럽기도 하지. 그러다가 이태 전에 황 노인도 저 세상 사람이 된 기라요.」 박 화백은 담배를 길게 빨았다. 니코틴이 뱃속 깊숙이 스며드는데 아무런 동요가 없다. 「죽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가 절에서 시님이 장례를 치라 줬다 카데요.」 추동삼을 찾을 길은 사라졌고 정 국수와의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됐다. 이제 어디 가서 그를 찾는단 말인가. 노 수녀의 말대로라면 그는 세상 어딘가에 아직도 살아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를 찾는 길은 황판수의 죽음으로 이제 완전히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바둑판. 바둑판이 떠올랐다. 주인 없는 바둑판이 미아가 되었다. 제아무리 명반이라 하나 사람이 없으면 다 부질없는 것. 모든 명품은 그것을 다스리는 사람에 의해 가치를 인정받는 법. 읍내에 도착하니 장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박 화백은 국밥집에 들러 술을 한잔 마신다. 여백이 없었다. 열정은 소진되고 비벼 댈 여백이 전혀 없었다. 박 화백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정신없이 꿈을 꾼 것만 같았다. 한 사내를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나 그 사내는 미로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그 사내는 원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있는 어떤 환영을 쫓았는지도 모른다. 길거리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간 가락이 흘러나왔다. 정육점, 신발가게, 싸구려 옷장수들, 중국집, 낡은 간판, 대성각(大城閣), 기원……. 이런 곳에 기원이 있었다니. 박 화백은 국밥집을 나와 무심코 기원으로 올라가 본다. 초라한 기원이다. 낯선 사람들. 언젠가 비슷한 기원에 갔었던 기억이 난다. 추동삼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도 여느 내기꾼처럼 이 기원 저 기원 흘러 다녔을까 한 화가가 있었다. 그는 천품을 타고 태어났다. 젊은 나이에 그는 대가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그릴 그림이 없었다. 그는 어떤 자극이 필요했다. 그는 붓을 꺾고 떠돌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더 완벽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고 그는 긴 방황의 끝에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제 그의 완벽한 작품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또다시 떠돌이가 되어 길을 떠났다. 그 후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두십니까? 1급. 잘 두시네. 상대가 있을는지. 중년 신사가 앞에 앉았다. 박 화백은 돌을 놓는다. 아니 건성으로 두어 본다. 그러고도 중년 신사는 박 화백의 기력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상대가 바뀐다. 이번에는 20대의 청년이다. 결과는 같다. 사람이 또 들어선다. 한 사람, 두 사람……. 상대가 없군요. 원장이 미안해한다. 옆에서 바둑을 두던 손님이 말한다. 해봉도사가 와야 되겠구만. 그러고 보니 해봉도사가 있었네. 해봉도사가 안 나타난 지 오래 되는구만. 황 영감 죽고부터 통 보이지 않아. 절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박 화백은 갑자기 번개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아찔했다. 황 영감이라면?

팍스이스트	3단	10조4200억
자작나무♡	6단*	2조4872억
별빛누리★	6단	2조3435억
한솔현현로	7단*	2조179억
뉴욕n뉴욕	3급*	1조6484억
버려야산다	11급	1조5778억
초보네	3단	1조4435억
비비빅	11급*	1조4399억
운명아비켜	4단*	1조1829억
충청도요정	25급	1조1415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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