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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회] 9부 하늘이 내린 제자 (5)

2007-04 조회 3439추천 0 프린트｜스크랩

그 후 벽송은 역모에 연루된 판중추원 부사의 집안이 몰락할 때, 그 집 유모의 친자가 빼내 평생 보관하다가 죽기 전 어떤 스님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스님은 오랜 세월 천품을 타고난 벽송의 주인을 찾아 헤매다가 한 소년을 발견하고 바둑판을 물려주었으나 소년은 스물도 되기 전에 요절하고 만다. 소년의 아버지는 바둑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원망하다가 어느 대갓집에 벽송을 팔아 버린다. 그 뒤 대갓집에 불이 났을 때 온 집안이 전소되다시피 했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벽송이 있는 서재는 천장으로 불 기운만 스쳐 지나갔을 뿐 벽송은 온전하게 살아 남았다. 그 주인이 죽자 다시 벽송은 여기저기로 흘러 다닌 끝에 헌종(憲宗) 초기 누군가가 벽송을 안동 김씨 가문에 헌상하였고 그 후 벽송은 치욕의 60년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벽송이 전 한성부 판윤 김병교(金炳喬)의 손에서 풍운아 대원위 대감에게 넘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일이었다. 절세의 명반은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주인다운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비로소 그 명반은 여목이란 진정한 주인을 찾아 안주하게 되었다. 「이 기반을 너에게 하사하겠다.」 태공의 뜻밖의 말에 여목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히 재물로 그 가치를 논할 수 없는 천하 명반을 주겠다는 말에 여목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명품은 소장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 지녀야 그 빛이 나느니라.」 문성공이 몸둘 바를 모른다. 「대감…….」「그대는 조선의 정신이 외세에 의해 침탈당하지 않도록 신명을 다하라.」 태공의 시선이 소담이란 청년을 향했다. 「두 사람은 격의를 풀어라. 소담은 여기 있는 문성공의 적손으로 서화에 천품을 타고났다.」 두 사람이 읍을 하자 태공이 탄식했다. 「조선은 이제 병이 깊다. 병든 조선의 정신과 문화를 지키고 계승해 나가는 것은 이제 그대들의 몫이다. 재주가 아깝구나. 태평성대에 태어났으면 그대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인이거늘……. 이제 조선의 미래는 스러진 난초처럼 슬프기 그지없구나.」「태공 말년까지 수시로 운현궁을 드나들었지.」「말년의 태공께 남은 게 무엇이던가. 난초 치는 일과 바둑……. 덧없음일세.」 소년이 마당을 비질한다. 「저기 일하는 아이 말일세.」「…….」「내가 데리고 가겠네.」「저 아이를…….」「……기재가 있어.」「그 아인 노비가 아닌가.」 갑오경장 후 법적으로는 노비제도를 혁파하여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가에서는 엄연히 노비가 존재하고 있었다. 합방이 있은 후 8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반상(班常)의 신분에 대한 골은 깊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10부. 여목도장 추평사의 파란만장한 바둑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경북 봉화군 봉성의 산골에서 며칠이나 걸려 경성 필동(筆洞)에 있는 여목도장에 당도한 그 첫날의 가르침을 평사는 평생 잊지 못했다. 「인간에겐 누구나 정(精), 기(氣), 신(神)이 있다. 정은 몸의 근본(根本)이요 기는 신(神)의 주(主)요, 형(形)은 신(神)의 집이다. 그러므로 신을 너무 많이 쓰면 정식(停息)하고 정을 과히 쓰면 갈(竭)하고, 기가 태로(太勞)하면 끊어지게 된다. 신이 기에서 나고, 기가 정에서 난다. 신이 심(心)의 통솔을 받고, 기가 신(腎)의 통솔을 받으며 형체는 수(首)의 통솔을 받으니 형과 기가 교합(交合)하고 신(神)이 그 중의 주(主)가 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말을 너희들에게 하는고 하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희들은 몸을 바르게 하고 정신을 일깨워서 살아야 한다는 뜻을 전하고자 함이다. 비록 조국을 잃어 왜놈들의 발길에 짓밟힌다 한들 이러한 정신만 살아 있으면 짓밟혀도 짓밟히는 게 아니고 꺾여도 꺾인 것이 아니니라. 비단 바둑에 있어서뿐 아니라 학문과 기술에 있어서도, 아니 세상을 살아가는 저잣거리의 한 장사치까지도 이런 정신만 살아 있다면 언젠가는 조선이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진정한 강국이 될 것이니라.」 아직 언문만 겨우 깨친 평사에게 있어선 어려운 말이었지만 그 뜻은 충분히 새길 수 있었다. 문하생들 모두의 가슴에는 여목 스승의 말이 깊게 새겨졌다. 「원래 바둑은 성격상 무(無)에서 유(有)로 나아간다. 그 첫 출발은 포석이다. 초반 포석은 집을 짓는 일에 비유하면 기둥을 세우는 일과 같다. 기둥이 튼튼하지 못하면 그 집은 오래지 않아 무너진다. 초반 포석의 중요한 점은 이와 같이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지만, 어디에서 전단을 구하는가 하는 게 오히려 더욱더 중요할 수도 있다. 집을 짓는데 지붕이 바르게 덮이지 않으면 비가 샐 것이요, 벽이 허술하면 바람을 막을 수 없다. 또한 방바닥 구들을 고르게 놓지 않으면 허리가 배기거나 겨울에 추워서 떨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이 포석 이후의 단계를 마무리하는 장치다.」 문하생들은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여목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또한 바둑에 있어 감각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감각이 무심하게 키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랜 수련과 수많은 실전을 겪어야 곧은 감각이 나온다. 기운이 탁한 것은 곧은 감각이 아니다. 감각은 명쾌해야 한다. 행마의 형상이 거친 호흡 속에서 선명해질 때 그것이 곧은 감각이다. 곧은 감각은 전 국면의 흐름을 잡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여목의 가르침은 평범하면서도 그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초반 포석 부분을 설명한 후 여목은 중반으로 넘어가며 급소에 대해 언급했다. 「인체에 있어 수많은 혈이 있다. 통상 급소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급소에도 격이 있다. 사혈(死血)이 있고 요혈(要血)이 있다. 사혈은 대체로 중추 신경을 관장하며 잘못 건드리거나 침을 놓지 말아야 할 때 놓으면 죽거나 반신불수가 된다. 요혈도 인체에서 매우 중요한 혈이긴 하나 잘못 건드린다고 해서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혈에 비해 그 폐혜가 적으니 사혈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둑에도 사혈과 요혈이 있다.」 잠시 숨을 돌린 여목이 반상에 한 수를 착수했다.

팍스이스트	3단	10조4200억
자작나무♡	6단*	2조4872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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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현현로	7단*	2조179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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