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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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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42회] 9부 하늘이 내린 제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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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은 여목이 들어서자 이내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종의 신분으로 상전을 대하는 몸에 배인 동작이었다. 무심코 반상 위를 보던 여목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둑판 위에는 낮에 자신과 윤 진사가 두었던 대국이 완벽하게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여목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놀라운 소년이다.’ 복기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 수준의 기력에 올라야 가능한 일이다. 겨우 초보자에 가까운 소년의 기력으로 복기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직접 둔 바둑도 아니질 않은가.’ 「내가 누군지 아느냐?」 「예.」 여목은 생각했다. 가공할 기억력을 가진 소년이다. 분명 바둑으로 본다면 인세에 드문 기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바둑은 단순한 기억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바둑에 필요한 재능은 무수히 많다. 여목은 천천히 수염을 쓸어 내렸다. 「앉아라.」 「…….」 「나와 한번 두어 보겠느냐.」 여목은 그날 소년과 한 판의 바둑을 두었다. 소년은 단순한 천재가 아니었다. 지칠 줄 모르는 끈기, 타고난 근성, 승부에 대한 집착, 비록 얕은 수이나 나름대로 번뜩이는 감각과 추리력, 소년은 타고난 신기(神器)였다. 여목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탐욕을 느꼈다. 소년의 이름은 추평사(秋平斜)라 했다. 다음날 오후, 여목은 소담을 청했다. 소담이 전갈을 받고 사랑채에 들렀을 때 여목은 바둑판을 앞에 두고 지난 밤 평사와 두었던 바둑을 복기하고 있었다. 「누구와의 바둑인가?」 「…….」 여목은 말없이 바둑판을 쓸었다. 흑백의 돌이 각기 돌통 속으로 들어갔다. 「몸은 어떤가?」 여목은 지병으로 인해 섭생차 내려와 있었다. 「내려가려 하네.」 「더 유하지 않고.」 「도장을 오래 비워 두었어.」 「설숙 그 아이는 어떤가?」 「진중한 아이일세.」 「하긴 그애는 어릴 적부터 청정하고 곧은 대나무와 같은 기상이 있었지.」 소담의 말에 여목이 수긍한다. 「자네, 기억 나는가?」 「무슨?」 「처음 자네와 만났던 날 말일세. 대원위 대감과 함께였지.」 「왜, 새삼 그때가 그리워지는가?」 「그때…….」 그때. 청나라에서 풀려난 대원군이 어느 날 여목을 불렀다. 여목이 운현궁에 당도해 대원군을 뵈었을 때 대원군은 문성공과 함께 여목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목이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자 대원군의 깊은 눈이 여목을 쏘아 보았다. 한땐 산천초목도 벌벌 떨었다는 강렬한 태공의 눈빛이었다. 「네가 여목이냐?」 「그러하옵니다.」 「소담, 게 있는가?」 「예.」 문 밖에서 젊은 사내의 말이 들려 왔다. 「그 기반을 가져오너라.」 「예.」 곧 이어 문이 열리고 청년 소담이 바둑판을 들고 들어왔다. 소담은 바둑판을 태공과 여목 앞에 놓았다. 여목의 눈이 커졌다. 판의 덮개를 벗기자 반상이 눈부시다. 여목의 눈에 비친 바둑판은 천하의 명반이었다. 여목의 시선은 줄곧 바둑판에 머물렀다. 「몇 점을 놓아야 하느냐?」 이윽고 태공이 묻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여목이 대답했다. 「들리는 대감의 기력이면 여섯 점은 놓아야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태공의 손이 반상 위에 옮겨졌다. 치수 여섯 점. 「저하.」 곁에 있던 문성공이 어쩔 줄 몰라한다. 「기반을 앞에 놓은 이상 내가 국태공이 아니질 아니한가.」 「…….」 오후의 따가운 햇살이 서편에 기울도록 바둑은 오랫동안 두어졌다. 미세하지만 백이 남는 국면이었고 어차피 상수와 하수의 바둑이면 그 차이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여목！」 「예.」 「당금의 판세를 어찌 보느냐?」 그것은 애매한 질문이었다. 현 바둑판의 형세를 묻는 말일 수도 있고 어지러운 국내 사정을 묻는 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목은 그것이 조선 국내 사정을 묻는 말임을 감지했다. 「아직 세상을 보는 눈이 어린 제가 뭘 알겠습니까.」 「네가 원세개를 평하였다고?」 그것은 문성공과 함께 원세개를 처음 만난 후, 바둑이 끝나고 여목이 원세개의 인물됨이 크고 탐욕스러우며 원세개의 얼굴 뒤에 원대한 야망이 숨어 있는 큰 그릇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가리킨 말이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있으면 세상을 볼 눈도 있을 게 아니겠느냐?」 「……결국 청나라, 왜국, 로서아의 삼파전이 되겠지요. 세 나라 다 강대국이며 조선과 지리적으로 접한 강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미국, 독일 등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건대 세력 다툼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조선의 미래는?」 「……대세를 놓쳤습니다.」 「……흠.」 태공은 깊게 신음했다. 여목의 이마에서 땀이 진득하니 배어 나왔다. 막상 대답을 해 놓고 보니 자칫하면 목숨이 달아날 말이 아닌가. 「네가 한 나라를 수중에 넣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영원히 그 나라를 지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겠느냐?」 「……총칼은 침략의 수단일 뿐 지배의 수단으로 최상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또한 장구한 세월을 요하는 것이겠지만, 저라면 그 나라의 문화와 정신을 서서히 바꿔 나가겠습니다.」 「…….」 침묵하던 태공이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 「이 기반을 알아보겠느냐?」 「수령 수백 년의 비자목으로 만든 참으로 귀한 명반이지 않습니까.」 「그렇다. 만든 지 200년 이상 지난 명품이지. 여기 기반 밑에 벽송이란 호가 새겨져 있지 않느냐.」 바둑판 밑에는 양각으로 벽송(碧松)이란 호가 새겨져 있었다. 벽송이라면 거의 200년 전에 살았던 절세의 명공(名工)이었다. 「벽송에 대한 이야기를 아느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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