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했다. 완전한 일본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다. 그렇지만 나는 일본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한국인이었다.’

강대한은 지난 며칠 동안이 지옥 같았다.

‘얼떨결에 말해버렸지만, 이모부에 대한 죄책감은 별개로 하고 나는 이모부를 일본 경찰이 검거할 수 있도록 도운 일등공신이다. 그 범인이 이모부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찰은 내 덕분에 재빠르게 범인을 검거해 놓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공범이라고 몰아붙였다. 그것은 경찰만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혼신을 다해 일하던 신사의 직원들마저 경찰과 똑같이 나를 대했다. 내가 영원히 일본인일 수 없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엄마가 ‘타이키’라고 부르는 순간, ‘내 이름은 타이키가 아니야. 일본사람들에게 나는 타이키일 수가 없어. 그들에게 나는 영원히 ’강대한‘일 뿐이야.’ 라고 외칠 뻔했다. 그렇지만 참아냈다. 아버지 하시모토상이 있는 자리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하시모토상이 나를 정말 아들로 여겨주는 것을 잘 알아. 그리고 아빠가 고맙고 좋아. 아빠를 실망시킬 수 없어. 만약 그렇게 말을 해버렸다면 엄마도 무척 힘들어 하실 거야. 참아내기 잘했어’

이제 그는 강대한이 되어야 했다.

혼이 나간채로 끼니도 거르며 지내는 최선미를 조카 강민희가 직장마저 휴직하고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남편이 죽기 전날까지도, 아니 온다던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공항으로 만나러 나갈 희망으로 설레어하던 그녀는 그의 죽음을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접해야 했던 충격을 전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조카가 먹이면 먹고 누이면 눕고 씻기면 씻었다. 숨 쉬는 것만 없다면 산송장이었다. 생각도 사치였다. 원망도 사치였고 후회도 사치였다. 조카 강대한은 무엇 때문에 이모부를 고자질했는지, 국가를 위해 자신은 무슨 자부심이나 헌신을 하겠다고 비밀단체에서 활동을 했는지, 남편은 무엇을 위해 비밀조직에 뛰어들었고,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야스쿠니로 향했는지 생각도 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기억에도 없으며, 세상사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조카 강민희가 그녀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 했다. 각종 언론과 매체는 이모의 근황이나 말 한마디를 얻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사가 그녀에게 향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모가 현재 어떠한 의견도 말할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을 정중하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그러자 국민들은 그녀를 위해 더욱 간절한 기원과 후원을 쏟아냈다. 심지어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성원과 성금이 답지했다.

그렇지만 일본은 아직 아무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가 한국과 국제사회에 사과를 하려고 준비하기도 했었지만, 극우세력의 반대를 이겨내지 못했다. 급기야 미국이 일본에 입장을 빨리 표명하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북한이 일본을 향해 도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보와 정황이 포착되고 있어요.”

미 국무장관이 일본의 외무상과 긴급회동 자리를 마련한 자리에서 말했다.

“우리도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이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남한과 밀착 관계를 보이고 있는지 그 배경이 무척 의아합니다.”

“일본이 북한에게 명분을 주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남한과 북한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공감대는 가지고 있잖아요.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고, 전범들을 합사한 신사에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존재감과 지지율을 높이려고 참배를 하고 있으니,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하고 수탈당한 기억을 공동으로 가진 남, 북한이 자연스레 저렇게 공조를 하고 있는 것임을 일본이 모르고 있다는 겁니까? 미국에서도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을 합사한 곳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거 알고계시지 않나요?”

일본의 행위를 꾸짖듯이 말하는 미국 국무장관의 말에도 일본 외무상은 아무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패전 이후 일본은 평화헌법이 만들어지고, 최소한의 자치를 위한 자위대만 운영했다. 그 결과 국방비 지출이 최소화되고 그 비용으로 경제성장을 구가했다. 그리고 자국의 안보는 미군에 자국 내의 기지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게 미국과 안보공동체를 이룬 일본은 강한 나라 미국에 철저하게 고개를 숙였다. 강자에 약한 일본의 모습이다.

“저렇게 남북이 공조를 하다가 덜컥 통일이라도 되면 일본은 그때 가서 어떻게 될까요.”

외무상의 눈이 커졌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죠. 일본에게 한반도의 통일은 무척 두려운 일이죠. 통일된 한국은 일본을 모든 면에서 능가하게 되겠지요. 절반으로 나뉜 남한만으로도 이제 일본을 넘보고 있으니.”

외무상은 상상만으로도 고개를 저었다.

“북한이 더 이상 남한과 밀착될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한반도는 지금처럼 민주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의 완충지대 역할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양국에 이익입니다. 이번 야스쿠니 사건을 일본이 조속하게 해결해야 할 이유입니다.”

말을 마치고 일어나 나가는 국방장관을 외무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배웅하고 있었다. 상급자를 대하는 부하의 자세였다.

일본 외무상이 한국의 외교부 청사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이 일본에게 원하는 조치가 무엇인지를 조율하러 온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 이재길 의현단 단장과 설민국의 미망인이 함께 자리를 하고, 비공개로 진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전 조율을 하는 자리이므로 한국 정부도 이를 수용해주었다. 수척해진 최선미의 모습에 이재길은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남편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그녀를 보는 것이 서툴렀다.

“외무상이 한국에 왔다지만, 그것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하는 일본의 입장에서 취해야 하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자리 이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이 워낙 주목도가 높은 사안이라서 그렇습니다.”

자문을 요청하자 한영운이 그에게 대답해준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일본은 한일 간의 해묵은 현안을 해결하는데 적극성을 가져야 합니다.”

외교부장관이 꺼낸 서두 역시 아무 기대감 없는 원론적인 말이었다.

“이번 일은 한국 국민을 재판도 없이 처형한 반인도적인 참극이고 한국과 국민들을 무시한 비겁한 행동입니다. 우리는 이 일이 일본 당국의 방조내지는 기획에 의해 일어난 참사임을 뚜렷하게 알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과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미망인에게 별도의 사과와 위로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부당국과 잘 조율해보겠습니다. 우리는 한국이 북한에게 자제하도록 요청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치 무력도발이라도 할 듯이 위협하는 태도는 서로에게 아무이익도 되지 않는다는 점과 국제 평화를 해치는 일임을 강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외무상의 말을 들은 최선미가 움찔하며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그대로 다시 허공에 머물렀다.

“과거 전쟁 범죄에 대한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이번 일을 저지른 일본이 국제질서와 평화를 말하는 것은 참 어울리지 않는 후안무치한 말이네요. 일본은 참으로 가망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녀가 속으로 삭힌 말이 무엇인지 잘 아는 이재길이 참다못해 비명처럼 내질렀다. 그렇지만 외무상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 성과도 없는 자리였다.

일본이 설민국의 유해를 한국으로 송환하기로 발표했다.

그의 유해가 출발하는 하네다공항과 도착할 인천공항은 분노와 환영이 물결쳤다. 하네다의 일본 극우세력들은 극렬하게 저항했다. 그의 운구를 실은 차량은 공항으로 오는 도로에서도 지체를 거듭했다. 심지어는 운구차량을 폭파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긴장한 경찰이 도로를 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의 모든 극우단체와 혐한 단체가 총 출동한 듯, 경찰의 통제가 곳곳에서 무력화되었다.

그리고 애통하게도 그곳에서 태극기가 목격되었다. 보수단체들 중 일부가 한국 내에서는 국민들 대다수의 애도 분위기로 인해 활동이 어려워지자, 일본의 극우세력 속에 섞인 것이다.

‘한국 국민들조차 범인의 시신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데, 무슨 이유로 우리는 전용기까지 동원하며 죄인의 몸을 돌려보내려 하는가. 당장 중지하고 화형에 처하라.’

일본 극우매체들이 한국 보수 세력의 영상을 자료 화면으로 내보내며, 자국 내의 우익 세력을 결집하는데 활용하고 있었다.

마침내 설민국이 한국에 돌아왔다. 그렇지만 일본으로 출국하던 때의 모습과 그의 모습이 달라져있었다. 하지만 그의 거사는 실패가 아니었기에 국민들이 보기에는 비록 관 속에 누여진 모습이었지만 당당했다. 운구 장면은 대부분의 매체들에 의해 중계되었고, 수많은 가정집에서 태극기가 조기로 게양된 모습들이 보이기도 했다. 전 국민적인 애도분위기를 감지한 정치권이 발 빠르게 대응했다. 국회가 그의 장지로 서울 현충원을 의결했다. 매우 이례적인 처사였으나 국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모처럼 국회의원들이 밥값을 했네요.”

어느 매체의 인터뷰에 응한 시민의 말이 모든 정황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북한은 이번에도 특별한 대응을 했다. 이례적으로 중앙 매체에서 남한 내의 방송을 자국 국민들에게 내보낸 것이다. 그리고 조문단을 꾸린다는 등의 장례절차에 적극적인 참여의사와 유가족에 대한 후원을 자청하고 나섰다. 또한, 비록 설민국의사의 몸은 남한에 있지만, 남한에서 행하는 영결식 절차와 똑같이 북한에서도 진행을 하며 ‘의사’의 죽음에 대한 인민들의 조문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세계의 언론과 지도자들은 ‘의사’로 칭해지는 설민국이 몸을 던져서 한민족 모두의 영웅이 되었다고 칭송해 마지않으면서도 북한의 특이한 대응에 특집으로 상황을 분석하기에 바빴다.

‘북한은 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들도 평화를 사랑하고, 일본이 침탈로 상처를 입은 과거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모습에 대한 민족으로서의 분노에 공감함을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이번 일을 자국민들에게, 나라에 대해 충성을 하는 인민에게 국가가 어떤 예우를 하는지 보여주며 충성심을 유도하고자 한다.’

외국 매체들의 분석은 대체로 이랬다.

모든 사람들이 들끓고 있지만, 최선미는 허망하고 허허롭기만 했다.

‘나쁜 사람! 김포공항에서 살아서 만나자더니, 죽은 몸으로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네.’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남편의 거사는 슬퍼할 일이 아니었다. 자랑스러운 ‘의사’의 아내로 한평생을 그를 가슴에 담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남은 생도 남편이 간 길을 따라가며 살아낼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마음이 울고 있었다.

그가 그립고

그가 보고 싶고

그를 느끼고 싶고

그를 품에 안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