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재길에게서 넘겨받아 보관 중이던 ‘야스쿠니 물건’을 일본정부에 인계했다. 양국이 교환한 각서에 따르면 앞으로 3일 이내에 설민국이 대한민국 땅을 밟도록 되어있었다.

설민국이 도착하기로 한 날이 밝았다. 그를 태운 비행기가 오전 10시 30분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정부는 아침 일찍부터 공항을 포위하다시피 경비태세를 강화했다. 일본 우익이 들어와 위해를 가할 염려도 있고, 국내의 극우세력도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진보 진영의 과도한 환영 열기도 조심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의 거사를 찬양하며 일본을 징치한 통쾌한 의거로 반기는 측과, 동맹국에 대한 부적절한 도발로 양국의 신뢰를 망가트려 안보를 위협하여, 북한의 도발 명분을 제공한다며 반대하는 두 진영의 대치가 자칫 과열된다면 대규모의 충돌을 야기할 우려가 높았다. 양측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동이 트기가 무섭게 집결하여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무엇이 진정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인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침 8시도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

일본 대사관에서 핫라인으로 외교부 당직자에게 급보를 보냈다.

‘교도소 내에서 재소자들 간의 충돌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불행하게도 금일 소환시킬 예정이었던 귀국의 국민인 설민국도 사태의 와중에 사망하였음을 통보하게 되어 지극한 유감스러움을 표합니다.’

청와대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소집되었다.

“일본에 구속되어 있던 우리 국민 한 사람의 죽음에도 NSC를 소집한 이유는 일본의 무책임한 소행을 성토하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공표되는 순간, 우리 국민들이 받게 될 어마어마한 충격과 그로 인해 자칫 발생할 수도 있는 폭동에 버금가는 시위를 대비해야 함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인천공항이 진보와 보수의 대결장이 될 조짐이 있어서 경찰에 갑호 비상령을 내려졌고, 유사시에 대비한 군 병력까지 준비시킨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은 설민국씨의 생환을 전제로 한 상황임에도 그렇습니다.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진보와 보수 양 진영 모두 폭발합니다.”

회의 참석자들은 대통령의 모두발언에도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떠오르는 단어는 ‘참담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일본의 저의가 의심되는 이 사건은 야스쿠니를 능멸한 한국에 대한 복수로 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었다.

“일본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와 해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에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합니다. 수도권 일원에 비상계엄을 내리고, 전국에 집회금지를 발령해야 합니다.”

경찰청장이 잔뜩 긴장된 모습으로 요청을 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가 결의한 내용을 포함한 설민국의 죽음이 모든 매체를 통해 발표되었다. 모든 국민들은 소식을 접하자마자 잠시 멍한 순간을 느꼈다.

‘이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인천공항에 운집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 오랜 시간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보수 진영이 먼저 움직였다. 대오에서 하나 둘씩 이탈이 시작된 것이다. 일부는 오히려 진보진영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의외의 사태에 경찰과 정부 당국은 당황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인터넷 매체에는 이재길 ‘의현단’의장 명의의 글이 올라왔다. 그 글에는 사태를 낙관과 긍정으로만 바라보다 지켜주지 못한 단원에 대한 미안함과, 일본의 만행에 대한 분노, 설민국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일본에게 죗값을 치르도록 만들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담겨 있었다. 그의 글은 짧은 시간에도 ‘정축년환란보고서’를 뛰어넘는 반향을 일으켰다. 보수진영이 흩어진 공항에는 진보진영으로 헤쳐모인 ‘대한민국의 국민’들로 다시 채워졌다. 그리고 보수진영에 가담했던 일본 우익들은 서둘러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결기에 놀라서 줄행랑을 친 것이다. 그렇게 하나가 된 대한국인들은 누구의 지휘를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각기 서울 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한영운의 도움을 받아 이재길은 시청광장에 노제를 준비했다. 그는 설민국의사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고 그의 장례가 끝나는 날까지 이곳을 지키겠노라고 공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파는 늘어만 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거대한 인파에 놀라며 자신들의 생각이 옳음에 안도하고 겨레의 마음이 한 곳으로 모여 있음에 감동했다.

국민들의 반응에 정부도 뒤늦게 일본에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대책위를 꾸려 일본으로 설민국의 시신을 인도받기 위해 출발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정치권은 재빠르게 변신했다. 시류를 읽는 감각이 탁월한 그들이다.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북한이 최고 지도자 명의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설민국의사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같은 민족으로서 의거를 일으켜 인민들의 귀감을 보여준 애국심을 높게 칭송한다.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하여 남한 정부와 긴밀하게 공조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일본에 대한 모든 대응에 동참할 것을 천명한다. 아울러 일본 당국에 엄중하게 경고한다. 모든 진상을 속히 밝히고 사죄하라!’

북한 당국이 국가차원에서 가장 먼저 설민국에게 ‘의사’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그리고 남한 정부와 함께 일본에 대한 대응을 공동으로 진행하자고 요청한 것이다. 가장 반기는 것은 남한 정부였다. 남한 정부도 이에 질세라 담화문을 발표했다.

‘북한 당국의 깊은 배려와 이해도 높은 공감을 같은 민족으로서 환영한다. 특히 일본에 대한 공동대응을 천명한 것은, 민족의 자부심을 지키는 일에 모두가 한마음임을 드러낸 사려 깊은 처사이므로 환영해마지 않는다. 앞으로 남과 북은 설민국의사가 보여준 드높은 민족의 기개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공유하며, 일본의 무도함을 응징하는데 한 몸으로 나갈 것이다.’

일본을 향해 남과 북이 공동대응 하겠다는 뜻밖의 사태 진전은 한민족 7천5백만은 물론이고, 중국과 미국마저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게 만들었다.

특히 일본은 몹시 당황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범죄를 저지른 자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재소자들 사이에 발생한 충돌로 사망한 일이었다.

“이 사건은 어떤 나라에서든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이 사안에 대해 왜들 저렇게 민감하게 나서는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법무상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그렇지만 그의 항변은 동료들로부터도 호응을 받지 못했다. 그는 머쓱해져서 자리에 앉았다.

“지난 2000년에 우리는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이 국립묘지이므로 ‘쇼와시대의 순난자’들을 이곳으로 모시려는 시도를 했었으나, 일부 세력의 반발이 있어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사설종교법인인 야스쿠니신사에 이들을 모시고 있으면서, 정치지도자들이 지속적으로 참배를 드리고 있으니 다른 나라들의 반발이 지속되고, 미국에서조차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전후의 사정이 있음에도 우리가 다른 나라들의 시각을 도외시한 채 야스쿠니에 참배를 계속하다보니, 상징성이 커져서 이번 사태를 야기 시킨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법무상의 생각은 우리들의 시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국제적인 시각은 이와 다르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면서 법무상처럼 회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범죄자인 한국인도 그래서 야스쿠니 신사를 선택했고, 우리는 그를 우리의 신성함을 해쳤다며 살해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다른 나라에서 모를 것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총리의 뼈아픈 질책에 다른 대신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미국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주변국들의 역학관계를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여깁니다. 수 십 년 전 우리에게 침공을 당했던 미국이 우리와 강력한 동맹을 유지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중국과 러시아에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북한이 이번 사태를 빌미로 남한과 손잡으려는 구실을 찾았습니다. 우리 일본을 ‘한민족 공동의 적’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남북한이 화해하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반기지 않는 일입니다. 순망치한인거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엄청난 궁지에 몰려있는 것입니다. 군사 강대국 Top3 국가 모두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어요.”

일본은 눈치 빠르게 이 사태를 벗어날 궁리를 시작했다.

“엄마, 저 학교를 잠시 쉬었으면 해요.”

저녁식사를 마친 타이키가 말했다. 매일 매일이 조마조마했던 최선애는 화들짝 놀랐다.

“네가 마음이 무척 힘든 거 이해한다. 견디기가 힘든가보구나.”

하시모토가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예, 아빠. 죄송해요.”

“아니다. 우리에게는 네가 힘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 앞으로 어쩔 생각이지?”

“한동안 한국에서 지내고 싶어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야. 누나도 보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러면 네 마음이 조금 더 안정을 찾겠지. 그때가 되면 다시 이곳으로 온다고 약속해라. 그럼 학교를 휴학하는 것을 허락할게. 당신 생각은 어때?”

“제 생각도 당신과 같아요. 타이키, 그래줄 수 있지?”

강대한은 목까지 나오던 말을 꿀꺽 삼켰다.

“예, 엄마. 그럴게요.”

그는 가까스로 말을 삼켰다.

‘엄마, 저는 이제 타이키라는 이름이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