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장님! 우리 손에 어신체와 영새부가 있다고 하셨지요?”

“예. 제 사무실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물건들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들입니까?”

“일본인들에게나 의미가 있겠지요. 우리들에게는 칼 한 자루와 서류 뭉치일 뿐입니다.”

“그렇지요. 우리에게 가치가 없는 물건을 내주고 우리의 의사를 구해오면 되는 일입니다.”

“총사령관님!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설 단장이 목숨을 버리면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의장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저들이 신물로 여기는 어신체와 영새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저들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아 우리나라로 가져왔다는 사실일까요.”

그제야 이재길은 한영운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이 거사로 대한민국의 정신을 만방에 알림과 동시에 일본의 자존심을 무너트리고, 우리 국민이 승리를 한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렇기에 이 거사는 이미 성공한 것이다.

한용운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이의장님!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는 물건들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세요. 그리고 의장님과 가족들도 거처를 빨리 옮기셔야 합니다. 이미 일본인들은 의장님에 대한 신상파악이 끝났을 겁니다. 그리고 신속하게 그 물건들을 되찾으려고 시도 할 것입니다. 그 물건들에 설단장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물건들과 설단장의 신병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재길은 새삼스레 한영운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다. 자신보다 몇 수 앞을 바라보는 그의 능력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총사령관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바로 조치를 하겠습니다. 지혜를 주셔서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의장님이 거느린 조직이 대단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단지 그 업적의 빛이 바라지 않도록 우리가 힘을 합해서 대처해나가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의사 설민국’을 위하는 길이고 그분이 거사하신 큰 뜻을 훼손하지 않는 길입니다.”

한영운의 마음속에 설민국은 이제 민족의 위대한 ‘의사’였기에 존칭을 사용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그를 민족의 이름으로 보호를 할 의무가 생겼음을 느꼈다.

한영운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최우선 조치로 ‘의사’의 가족인 최선미의 신변을 보호하는 일에 착수했다. 이미 저들의 정보망에 노출된 그녀의 신병을 일본은 반드시 확보하려 들 것이다. 그래야만 ‘야스쿠니 신사의 신물’을 신사로 안전하게 안치시키기 위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는 이 일을 조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다음에는 이재길의 가족과 이번 거사의 조력자인 홍설민의 신변을 보호하는 조치를 진행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이재길은 우선 인터넷 매체에 이번 거사의 주체가 자신임을 밝힐 준비를 했다. 불행하게도 이 땅의 오프라인 신문들은 이미 오래전에 보수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미국에 버금가는 우방으로 섬기고 있다. 인터넷 매체들만이 이 거사를 균형감 있게 보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공표하려는 것은 공명심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정보당국은 거사에 관련된 정보를 캐내기 위해 설민국을 혹독하게 고문할 것이다. 설단장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가족이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생기고, ‘의현단’의 실체가 드러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또한 사무실에 보관된 ‘야스쿠니의 물건’을 정보당국으로 넘기로 결심을 했다. 이제 이 물건들은 개인이나 조직의 소관이 아닌 국가의 소관이어야 했다. 그래야 ‘거사’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를 받고, 앞으로 발생할 일본의 도발에 체계적으로 대응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재길의 제보를 받은 인터넷 매체는 즉시 속보로 뉴스를 웹사이트에 올렸다.

‘대한국인 설민국이 야스쿠니의 심장을 탈취했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문구의 헤드라인이 나가자마자 한국과 일본, 중국의 온라인상에는 불꽃이 튀었다. 한국의 국민들은 환호를 질렀고, 중국의 국민들은 자국민이 못한 일을 한국인이 또다시 나서서 거사를 성공시킨데 대해 탄식과 존경심을 나타냈으며, 일본의 국민들은 분노와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강력하게 드러냈다.

가장 당황한 것은 일본 당국이었다. 그들은 은밀하게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최대한 조용히 ‘야스쿠니의 신물’을 되찾아 오고, 한국과 외교라인을 통해 은밀한 거래로 침입자에 대한 처리를 계획했었다. 그 길만이 일본이 당할 위신 추락을 막고, 자국 내의 우익을 자극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미 한국으로 긴급하게 투입된 자위대 소속의 특공대와 공작조들이 쓸모가 없어져버렸다. 자칭 ‘의현단’의장 이재길이라는 자에게 허를 찔려, 명분도 실리도 다 잃어버린 일본은 다음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허둥댔다. 두 번이나 ‘의현단’에게 당한 셈이었다.

네티즌들은 검색사이트의 실검순위 1위에 ‘의현단’과 ‘이재길’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가 [정축년환란보고서]의 저자임과 고종황제의 5대손임이 밝혀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뜻을 같이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고, 후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넘쳐났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점은, 이 거사가 대한국민의 기개를 세계에 펼쳤고 A급 전범들의 명부를 야스쿠니에서 없애버린 점을 들어, 전쟁피해국 국민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씻어냈다는 것에 고마워하는 글들이 인터넷상에 무수하게 꽃처럼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 내각부 산하 국가공안위원회.

“한국의 ‘의현단’이라는 비밀조직이 일본을 침략했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국력을 총 동원해 수괴를 잡아서 국내로 압송해야 합니다.”

“그는 매우 영악한 자입니다. 우리의 작전을 무력화 하려고 스스로를 공개했습니다. 숨지 않고 오히려 대로에 나선 도둑입니다. 한국 정부가 그를 잡아서 군내로 보내지 않는 한, 우리가 작전을 통해서 그를 잡아오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라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사람이어서 커다란 부작용을 낳습니다. 외교적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자국 내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우리 전쟁영웅의 합사를 반대하는 세력들과 우익들의 반발을 동시에 받아야하는 우리들의 처지입니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비상회의는 소집되었지만 해결 방법은 없고 중구난방의 설전만 이어졌다.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신사에서 도난당한 ‘어신체’와 ‘영새부’ 한 권을 되찾아 오는 것입니다.”

“맞는 말인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생각해둔 묘책이 있어요?”

경찰청장의 말에 모두는 실행 가능한 대책을 물었다.

“한국에게 우리의 야스쿠니 신물은 의미가 크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병을 확보한 범인과 물물교환을 하면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만약 그랬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습니다. 특히 우익들의 저항이 거셀 텐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런 무모한 생각을 합니까.”

“저들에게 우리의 신물이 의미가 작듯이 우리에게도 범인의 시체는 의미가 없습니다.”

“뭐라구요? 범인이 이미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범인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범인들은 우리에게 고문할 기회도 안줬습니다. 자기들이 전말을 모두 까발려서 범인은 아주 멀쩡하게 감방 안에서 잘 있습니다.”

“그럼 범인의 시체는 무슨 말입니까?”

다른 위원들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교도소 안에는 우익분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범인을 죽였다고 하면 간단합니다.”

“범인의 시체와 우리 신물을 저들이 바꾸겠어요? 그리고 범인이 죽으면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질 텐데 그것은 또 어쩔 겁니까.”

“우리가 신물을 받기 전까지 범인은 살아있어야죠. 보내려고 했는데 간밤에 재소자들끼리 싸우다가 범인이 그 와중에 죽었다고 발표하는 겁니다. 재소자 관리를 잘못한 것은 비난 받아도 반발과 질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질 것입니다.”

경찰청장이 복안을 말하자 모두들 잠잠해졌다. 그들 입장에서는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이해타산이 선다고 생각했다. 비록 신사가 침범을 당하는 치욕은 당했지만, 신물을 무사히 회수하고 범인을 처단한 것이므로 이 사건으로 인해 자국 국민들에게 받을 비난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타이키가 집에 돌아왔다.

아들의 안부를 몰라 애태우던 최선애는 몰골이 말이 아닌 아들이 산채로 집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뻐서 울음이 터져버렸다.

“타이키! 네가 범인을 검거하는데 일등공신인데 왜 경찰이 이렇게 오래 너를 억류하고 있었지? 아버지가 네가 어디에 있는지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아무도 네 소재를 말해주지 않더구나.”

“걱정을 끼쳐서 죄송해요.”

겨우 이렇게만 말하고 그는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타이키가 한국 사람이라서 그렇겠지요.”

최선애가 서러움이 가득한 투로 말했다. 하시모토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배고프지? 밥 한술 뜨고 얼른 방에 가서 눈을 붙여라.”

“엄마! 나 지금 그냥 자러 가면 안 돼?”

“그럼 그렇게 해. 밥은 조금 있다가 먹자.”

타이키가 제 방으로 자러가자 최선애는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