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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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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60회] 12부 떠도는 부초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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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백 남작이 보는 눈이 있소. 추선생 당신 대단한 솜씨야.」 평사를 추켜올리며 나카지마가 게이오를 지칭한다. 「이 사람도 본토 관서지방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인데 추선생에겐 힘 한번 못 쓰고 주저앉더구만. 정말 대단한 솜씨야.」 나카지마가 거듭 평사를 칭찬했다. 「모레쯤 저 친구는 본토로 돌아가야 하고, 그 전에 같이 술자리를 한번 해보고 싶다길래 불렀네. 솔직히 나도 개인적으로 추선생에게 흥미가 있어. 비록 손실은 있었으나 정당한 승부였고, 그 점에선 게이오도 불만이 없지.」 나카지마는 유쾌하게 웃으며 연신 평사에게 술을 따랐다. 그의 말처럼 나카지마와 게이오는 평사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그들을 경계하던 남작도 어느덧 느슨해져 그들과 유쾌하게 어울렸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웬 여자가 나타났다. 한복을 입은 여자의 옷 매무새가 정갈하고 쪽빗으로 머리를 땋아 넘긴 이마가 다소곳했다. 언젠가 평사가 기방에서 소문으로 듣던 여자였다. 참사관 집에 기거하는 여자에 대해 장안에는 소문이 구구했다.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여자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손님들의 술시중을 든다. 취한 평사의 눈에 여자의 모습이 아른아른한다. ‘이름이 화정(花靜)이라 했던가.’ 평사는 기방에서 들은 여자의 이름을 기억해 낸다. 평사가 들은 바로 그녀는 특이하게 기생이 되었다. 그녀의 집안은 그런 대로 부유한 양반가였는데 투전에 미친 그녀의 아버지가 탄탄했던 재산을 노름으로 다 날려 버리고 급기야는 자신의 딸을 300원에 어느 부잣집 영감의 첩으로 팔아 버리고 말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늙은 영감의 첩이 되는 것보다 차라리 기생이 되리라 마음 먹은 여자는 열네 살의 나이로 스스로 당당하게 권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자의 미색에 반한 권번 주인은 두말 없이 300원을 내놓고 여자를 받아들였다. 몇 년 후 그녀는 그 뛰어난 미모와 기품으로 손꼽히는 명기가 되었다.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장안의 내로라 하는 수많은 한량들이 그녀의 주변에 들끓었다. 그러나 그녀를 차지한 사람은 뜻밖에도 일본인이었다. 처음 그녀의 미모에 반한 참사관 나카지마는 거액으로 그녀를 유혹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나카지마는 몇 차례 계속해서 권력과 물량 공세를 퍼부었으나 의외로 여자는 지조가 강해 일본인의 수청을 거부했다. 애가 단 나카지마는 다시 여러 통로를 통해 그녀를 회유했으나 여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나카지마는 참다 못해 마지막 방법으로 여자를 거느리고 있는 권번 주인을 협박했다. 권번을 없애 버리겠다며 온갖 공갈 협박을 동원한 나카지마의 무력 앞에 권번 주인은 결국 굴복했고 자신을 거두어 준 주인을 저버릴 수 없었던 화정은 어쩔 수 없이 나카지마의 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왜놈의 여자가 된 그녀는 자신을 비관했고 대부분의 기생들은 그녀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화정아, 술 한잔 쳐라. 이 사람은 조선의 국수인 추평사 선생이시다.」 화정과 평사의 눈길이 잠시 마주쳤다. 화정은 이내 무심하게 두 손으로 술병을 받쳐 들고 조심스레 술을 따랐다. 술자리에 미모의 여인이 가세하자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고 자연스럽게 바둑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나카지마 참사관은 또다시 평사를 추켜세웠다. 「자넨 정말 보기 드문 바둑이야. 전에도 우리 일본 기사들이 자네에게 당했다고 들었네. 자네 솜씨가 이런데 하물며 자네의 스승인 여목이란 사람의 바둑은 그 경지가 도대체 얼마나 높겠는가. 신묘하다고 들었는데 제자를 보니 이제 정말 실감이 가네！」 여목이라는 말에 평사의 안색이 잠시 굳어진다. 그때 게이오가 평사에게 말했다. 「추선생, 우리 일본인들은 자신보다 강자를 존경하오. 그런 점에서 나도 추선생을 존경하고 있지요. 그래서 내 추선생에게 물어 보는 말인데, 추선생은 우리 일본 바둑을 어떻게 보시오?」 평사가 술잔을 들다 말고 게이오의 질문에 답을 한다. 「내가 보기엔 일본 바둑은 모양과 형태만 중시하는 데에 급급하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평사의 말 한마디에 착 가라앉는다. 게이오와 나카지마 참사관의 눈이 마주친다. 「힘이 부족하다는 뜻이오?」 「그렇소이다.」 평사가 거침없이 답한다. 「일본 바둑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에 기소(碁所)제도가 생긴 이후 투쟁으로 점철된 역사를 가지고 있소. 목숨을 건 쟁기가 수없이 일어났고, 기소에 오르기 위해 여러 가문이 피나는 혈투를 벌이기도 했소. 그것이 오늘날 일본 바둑의 밑거름이 되었거늘 어찌 추선생은 일본의 바둑이 실전적이지 못하다 운운할 수 있는 거요.」 「역사란 흘러가 버리면 그뿐인 것이오.」 「추선생의 그 말은 근대 바둑의 종주인 일본 기계를 모독하는 발언이 아니오.」 게이오가 점잖게 평사를 나무란다. 평사는 게이오의 말을 단칼에 잘라 버린다. 「모독이 아니고 사실이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소?」 게이오의 분노에 찬 눈길이 평사를 직시한다. 평사가 술잔에 남아 있던 술을 단숨에 털어넣는다. 「그렇소.」 평사는 태연자약하다. 오히려 평사의 옆에 앉아 있는 남작이 그 말에 당황한다. 곁에서 지켜보던 나카지마 참사관이 나선다. 「자네 그 말이 정녕 사실인가?」 「물론이오.」 「일본 기사는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을 해도 좋겠는가?」 「그렇소.」 「정녕 그러한가?」 「그렇소이다.」 나까지마가 평사를 정면으로 노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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