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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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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58회] 12부 떠도는 부초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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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숙은 스승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스승의 질의에 답한다. 「돌의 기운은 스스로를 돌봄에서 나옵니다. 함부로 변화를 구하면 불리함을 자초하고, 부딪치면 외롭습니다. 깊이 뛰어들면 무리하고 허술하면 상대방의 공격을 받습니다. 마땅히 스스로를 돌보아 과욕을 버리면 자연히 돌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폐석(廢石)과 요석(要石)의 구별은?」 「폐석이라 함은 죽지는 않았으나 죽은 돌과 같은 무거운 돌로서 살리고자 하면 오히려 상대를 도와 주는 이적(利敵)의 돌을 말함이며, 요석이란 비록 단 하나의 돌일지라도 그 효용이 지대한 돌을 말합니다. 요석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상대는 피곤해져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효율이라 함은 무엇이냐?」 「효율이라 함은 반상에서 공격을 해야 할 시기와, 물러서서 자신을 방어할 때, 그 경계선을 말합니다. 최상의 효율은 공격과 수비를 겸비한 수나 세력과 실리를 동시에 취하는 수입니다.」 「승부의 도리는?」 어느새 설숙의 이마에도 진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설숙은 정신을 가다듬고 긴장을 푼다. 설숙은 애써 태연해지려 노력한다. 하늘과 같은 스승이건만 긴 세월 스승의 그늘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라고 설숙은 생각한다. 태산처럼 거대한 스승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련만 이제는 스승의 곁에서 멀어질 때라고 생각한다. 설숙은 눈을 감는다. 설숙은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스승의 뜻을 헤아린다. 「승부의 도리는!」 다시 스승의 호령이 도장 안에 울려 퍼진다. 「승부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우선 상대의 실수로 승부를 점하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기력만으로 승부의 고지에 올라서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서로의 기량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휘되어 승부는 하늘의 섭리에 따르는 것입니다. 군자는 남의 잘못으로 이기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하며, 군자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말며 재주에 치우치지 말고, 모름지기 군자는 상대를 존중할 줄 알며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으뜸이라 하여 군자는 그것을 평생 승부의 도리로 삼습니다.」 여목은 한동안 눈을 감고 앉아 생각에 잠기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설에게 첫 질문을 던진 이래 장장 세 시간에 걸친 스승과 제자의 문답이었다. 여목은 대청 뒤 문갑에서 삼베 한 필을 꺼내 설숙 앞에 내밀었다. 오래 전부터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삼베는 잘 손질되어 있었다. 설숙은 공손하게 스승이 내민 삼베를 받아 들었다. 「바둑은 기도정신(棋道精神)을 대전제로 한다. 도(道)의 이치가 평등하듯이 바둑은 권자(權者)의 전유물이 아니다. 너는 이 삼베로 벽송의 보(褓)를 만들어 후세에 내 뜻을 전하도록 하여라 !」 설숙은 스승의 하명에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여목의 그 말은 적전(嫡傳:후계를 정함)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여목은 휘청이는 걸음으로 대청을 내려간다. 지나 온 60여 년 인생이 뜬구름 같았다. 대청에서 비치는 불빛을 등지고 마당을 가로질러 사라지는 여목을 바라보며 설숙은 감정이 북받쳐 온다. 긴 세월이었다. 돌이켜보면 조부의 곁을 떠나 도장에 입문한 지 어언 십수 년의 세월이었다. 눈앞에서 스승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삼베를 받아 든 설숙의 얼굴에 비로소 눈물이 비 오듯이 흐르기 시작한다. 「자네 나와 같이 백상훈 남작 집에 한번 가 보지 않겠나?」 평사의 이마가 조금 좁아진다. 「남작이 자네를 지목하여 전갈을 보내 왔네. 나로서는 그 청을 거절하기 곤란하고 어지간하면 같이 한번 들러 보세.」 정 역관 입장에서 백상훈 남작과 친해 두면 그로부터 사업상 도움받을 일이 많았다. 평사는 싫다 좋다 말이 없다. 평사가 여목도장에서 쫓겨나 여기저기 떠돌다 다시 경성에 올라온 이래 거의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 이미 그의 명성이 퍼질 대로 퍼진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자신을 보고자 하는 남작의 저의를 평사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무슨 특별한 일이야 있겠나. 기껏해야 바둑 한 판 두고 오기밖에 더 하겠나.」 평사의 입가에 냉소가 흘렀다. 돌이켜보면 도장에서 쫓겨난 원인도 남작 때문이 아닌가. 그때 남작의 집에서 바둑을 두지만 않았더라도, 아니 남작의 회중시계를 받지만 않았더라도……. 「그런데 자네 괜찮겠나?」 평사가 의아스럽게 정 역관을 바라보았다. 「왜놈들 앞잡이가 아닌가?」 여목의 민족관을 익히 알고 있는 정 역관은 평사가 여목의 문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전 괜찮습니다.」 평사가 잘라 말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변해 버렸나.’ 정 역관은 안타까웠다. 여목의 그늘에서 벗어난 그가 그만 정신의 지주를 잃어버린 채 방황과 허무로 황폐해진 삶을 스스로 방기하고 있다고 생각되자 그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남작의 집은 2년 전 그대로였다. 평사는 정 역관을 따라 남작이 기다리고 있는 응접실로 들어갔다. 응접실에는 남작이 단정한 옷차림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곤색 조끼 차림의 남작은 예전보다 몸이 비대해졌고 2년이란 세월에 비해 꽤 많이 늙어 보였다. 「오랜만일세……. 내 자네가 경성에 돌아온 이래 언제 한 번 자네를 초대한다 해 놓고 그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금에서야 자네를 보게 되는구만.」 남작이 그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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