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굴에 도착하였다.
원배가 오래전에 봐두었던 굴인데 처음 온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아서 찾기가 어려운 굴이었다.
오직 원배만이 아는 굴이었다.
아래의 샘으로 내려갔다.
가져온 보릿가루와 솔잎가루를 투가리에 붓고 물을 타서 저녁으로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낙엽들을 모아다 동굴 안에 깔았다.

잠자기 전에 참선에 들어갔다.
산의 정기를 단전에 모으며 정신을 통일하였다.
산의 기운이 몸 안으로 퍼져 온 몸에 활력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참선을 마치고는 낙엽 속에 몸을 묻었다.

꿈속에서 원배는 관촉사에 있었다.
관촉사는 전에 친구들과 함께 한 번 가본 적이 있었다.
먼저 하루 전에 부여에 들러 강변에서 우여 회를 먹고는 모래밭에서 수박과 씨름을 하며 놀았고, 다음날 관촉사를 찾았었다.
미륵석불이 서 있었다.
왠지 미륵불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분명 낯익은 얼굴인데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옆집으로 이사 온 순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그렇구나. 바로 순기의 얼굴과 빼 닮았구나.”

꿈에서 본 미륵불은 전에 본 것과 같이 인자한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이 경직되고 얼굴과 온 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미륵불이 흘린 땀은 흥건히 고여 원배의 발을 적시었다.

“앗 차가워.”
놀라며 꿈이 깨었다.
어느새 밖에 세차게 소나기가 내려서 동굴 안까지 들이치고 있었다.
원배의 발이 흠뻑 젖어있었다.
원배는 동굴의 안쪽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아침이 되자 언제 비가 왔었느냐는 듯 밝은 햇살이 비쳤다.

동굴 앞에 약간의 공터가 있었다.
원배는 공터에서 아침수련을 하였다.
먼저 수박으로 몸을 풀었다.
악몽으로 굳어진 몸이 어느 정도 풀리는 기분이었다.
다음에는 칼을 뽑아 본국검을 연마하였다.
격법, 세법, 자법을 모두 시연하자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였다.
검법 연마를 끝낸 후에는 막대기를 주워들고 창법을 연마하였다.
뾰족한 막대기로 앞의 죽은 나무둥치를 찔렀다가 순식간에 빼내었다.
원배가 공주 목에서 창법을 시연할 때에는 대나무를 그냥 세워놓은 채로 창으로 대나무를 뚫은 다음 빼내었고, 뚫린 대나무는 넘어지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서 있어서 구경꾼들의 박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동굴에서 내려가자 저만치 앞에 대둔산이 보였고, 발밑으로는 신도의 너른 들이 보였다. 신도는 원래 전에는 제도로 불리었었으나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제도는 오직 중국에 하나만 존재하기 때문에 바꾸라고 해서 신도로 바뀐 것이었다.

신도를 발밑으로 바라보며 천황 봉을 내려갔다.
용추폭포께로 방향을 잡았다.
낙엽을 헤치며 한참을 내려가자 숫용추가 보였다.
옛날에 이곳에 암용과 숫용이 살고 있었는데 암용이 먼저 하늘로 승천하고 곧이어 숫용이 승천하였다고 하였다.
암용이 승천한 자리는 암용추요 숫용이 승천한 자리는 숫용추였다.
두 폭포는 어느 정도 거리를 이루어 떨어져있었다.

원배는 옷을 벗고 숫용추의 아래 소로 들어갔다.
먼저 손과 발을 씻고 몸에 살살 물을 뿌려서 적응을 한 다음 물속에 들어갔다.
뼛속까지 시리고 이가 덜덜 떨렸다.
단전에 힘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몸이 훈훈해져 왔다.
몸이 훈훈해지자 폭포 쪽으로 올라갔다.
폭포 밑에 앉아서 폭포 물을 맞았다.
정수리가 서늘해지고 정신이 번쩍 났다.
온 몸으로 물의 기운을 느꼈다.

목욕을 하고 나자 전신이 상쾌하였다.
산의 기운과 물의기운이 온 몸에 충만 된 것이 느껴졌다.
보릿가루와 솔잎가루를 꺼내 투가리에 넣고 물을 부어 섞어서 아침을 먹었다.
몸도 마음도 든든하였다.

신도의 마을길을 지날 때 감나무에서 빨간 홍시가 서 너 개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따서 먹는 것은 안 되지만 주어서 먹는 것은 상관없었다.
홍시를 주워서 흙을 털어내고 입안에 넣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혀를 감쌌다.
어머니가 홍시를 좋아하시는 것을 생각하고는 남은 홍시를 투가리에 담았다.

신도와 학봉을 잇는 밀목재 길은 험한 산길과는 달리 편안하고 안전하였다.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얄라.”

원배는 정오를 조금 넘겨 사봉에 도착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