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로 향할 모든 준비가 끝났다.

설민국은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의 거사가 일본과 거래가 많은 회사에 누를 끼치게 될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여정을 떠나는 것이기에 한국에 있는 수많은 인연들과의 정리는 당연한 과정이기도 했다. 만약 온전하게 살아서 오게 된다면 그때 가서 다른 일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최선미는 요즈음의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남은 하루인 듯이 남편과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애달프고 행복했다. 가끔은 일반적이지 않은 자신의 삶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그 서글픔은 비밀단원으로서의 자부심마저 깎아내리지는 못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미안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떳떳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떳떳했다.

남편은 아내가 자랑스러웠다. 아내는 남편이 자랑스러웠다.

남편은 아내에게 부족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부족했다.

남편은 아내가 따뜻했다. 아내는 남편이 따뜻했다.

남편은 아내가 사랑스러웠다. 아내는 남편이 사랑스러웠다.

남편은 아내가 고마웠다. 아내는 남편이 고마웠다.

두 부부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날이 새도록 안타깝게 서로의 마음을 그렇게 보듬었다.

설민국은 일본행 비행기 표를 구입했다. 부부는 같은 날에 가지만 오는 비행기의 일정은 서로 달랐다. 공항에 내린 부부를 최선애가 반갑게 맞았다. 두 사람이 일본으로 여행을 온다고 말 했을 때, 그녀는 시집온 뒤 친정에 처음 나들이 하는 새댁이라도 된 듯이 마음이 설레고 반갑고 기다려졌다. 그녀는 그만큼 외로웠던 것이다. 남편 하시모토의 깊은 사랑과 아들 타이키가 곁에 있음에도 가질 수밖에 없는 고독감이 그녀의 마음에 쌓인 탓이다.

“어서와! 이렇게 먼 곳까지 와줄 생각을 어떻게 했어. 고마워.”

“언니도 보고 싶고, 대한이도 보고 싶고, 형부도 보고 싶었지. 그리고 우리 결혼하고 해외에 처음 오는 거라서 여러 가지 겸사 겸사야.”

“잘했어. 제부도 좋아 보이네. 반가워요. 오느라 고생했어요.”

“가까운걸요. 처형도 편안해보이네요. 하시모토상이 잘 해주는군요.”

“예, 남편도 아들도 더없이 좋아요. 어서 집으로 가요.”

저녁식사 시간에 모여 앉은 다섯 사람은 오랜만의 만남 탓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특히 이제 어른이 다 된 타이키를 보는 이모의 마음은 각별했다.

“대한이의 일본 이름이 타이키야? 어때, 일본 생활이 힘들지 않아?”

“응, 이모. 난 여기가 한국보다 좋아요. 아빠도 잘해주시고 할아버지도 좋은 분이셔. 친구도 많이 생겼고,”

“우리 집 근처에 야스쿠니신사가 있어. 타이키는 거기 유명인사야.”

최선애가 갑자기 신사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설민국 부부는 잠시 긴장했다. 그러나 이내 평상심을 잡았다.

“왜, 타이키가 너무 잘생겨서?”

“응, 맞아!”

엄마와 이모의 농담에 타이키가 얼굴이 발개지고 시선을 어디에도 두지 못하며 안절부절 하자 네 사람은 그게 또 재미있다며 박장대소를 했다.

“실은 타이키가 야스쿠니에 아주 열심이야. 내가 일본인에게 그곳이 각별하다고 말했더니, 일본에서 살려면 얼른 일본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며 신사에서 자원봉사를 수년째 하고 있어. 타이키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본으로 온 거지”

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하시모토가 말을 더했다.

‘대한이도 살아내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구나!’

그런 조카를 바라보는 최선미의 마음이 스산해졌다.

설민국 부부는 일부러 드러내듯이 일본 여행을 즐기며 며칠을 지냈다. 모처럼 만난 가족들과 회포를 풀고, 바쁘게 살았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외국에 살고 있는 언니 집에 다니러 온 동생 부부로서의 일상을 누렸다. 이제는 더 이상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힘겨워하지도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두 사람은 편안해보였다.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된 그 시간부터 이 순간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기라도 한 듯이···

어떠한 경우에도 하루는 늘 24시간이다. 고통의 시간에도 환희의 순간에도, 삶의 시간에도 죽음의 시간에도, 태어났던 순간에도 젊디젊은 시절에도 병으로 몸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하루라는 시간이 가진 부피는 늘 똑 같았다. 간혹 그래서 다행이고 그래서 야속하고, 그래서 안타까웠다. 지금의 두 사람이 그랬다.

공항까지 배웅하겠다며 나서는 처형을 만류하고 설민국은 아내와 공항으로 떠났다. 탑승 비행기가 다르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최선미는 오후 비행기를 타야했다. 그의 비행기는 내일 오후에 출발한다.

“내일 저녁쯤에는 우리 공항에서 만나겠네. 먼저 가 있어.”

“응! 우리 내일 저녁 맛있는 거 먹자.”

그녀를 보내고 난 그는 공항 화장실로 갔다. 변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입장 마감시간에 임박해서 여행객 차림의 노인이 들어섰다. 적당한 체구에 마르지 않은 모습이 관리 잘된 노년을 맞고 있는 듯 보이는 학자 타입이었다. 늦은 오후의 시간임에도 아직 방문객이 많았고, 신사를 찾는 사람들 중에 노인층도 많아서 그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않았다. 노인 분장의 설민국은 빠르게 신사 내부를 살폈다. 처음 와보는 곳임에도 홍설민의 묘사가 세밀해서 낯설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천천히 걸으면서 머릿속에 담아둔 도면과 현장을 확인해두었다. 그리고 다른 참배객들과 같이 참배를 접수하고 배전에 들른 다음에 전쟁기념관과 나머지 시설을 둘러보았다. 그의 생각에는 이곳은 조금 규모를 크게 만들어 놓은 서낭당이었다.

그러면서 늘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만들던 질문이 이곳에서도 떠올랐다.

‘인간 그 자체로는 그렇게도 불안하고 자신이 없었단 말인가. 이미 유전체 분석을 끝낸 과학자들에 의해서, 모든 생물체의 존재 가치가 단순한 DNA의 설계에 의해 좌우되는 것뿐임을, 그것만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진리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도 존재의 소멸이 두려워 마음속으로 신적인 존재를 만들고, 그 존재들에게 몰입하고 의지하려 드는지를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이곳 야스쿠니 신사도 그 잔재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들의 의식들 중 하나에 불과한 ‘어신체’라는 가상의 의미가 부여된 물건과 ‘영새부’라는 그저 종잇장에 불과한 것을 일본인들에게서 빼앗으려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들이 의미를 부여한 물체로 인해 다른 나라와 민족에게 상처를 주고 있기 때문에, 처리해버리는 대의명분에 따르며 행동하는 지금의 시도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점점 줄어드는 참배객들을 의식하며 그는 홍설민 동지가 지정해준 은신처로 향했다. 그곳에서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들은 은신처를 세심정(洗心亭)이라는 멋진 이름의 정자로 정했었다. 작은 인공호수 근처에 정자를 세우며,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일본인들이 붙인 것이다. 사실 야스쿠니라는 이름도 걸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좌씨춘추전’에서 따온 말이라는데 ‘정국(靖國)’이라니! 자기 나라만 안정하면 무슨 소용인가. 주변의 나라들을 온통 들쑤시고 있고 영미권의 언론에서는 ‘전쟁 신사(war shrine)’란 용어로 지칭되고 있는 것을···

아무튼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그곳은 신사의 가장 깊숙한 안쪽에 위치한 정자로 봉안전과 가까웠고, 무엇보다 외부와 경계가 되는 담장이 가까웠다.

“동지가 그 물건들을 빼내면 내가 세심정의 바깥 담장 너머에 있다가 넘겨받을게. ‘영새부’는 몰라도 ‘어신체’까지 동지가 직접 신사 밖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이 불가능해.”

“자칫 동지마저 위험해질 수 있어서 염려스러운데. 내가 혼자 실행 할 방안은 없을까?”

“동지, 힘을 합치면 쉬울 일을 우리 어렵게 하지 맙시다. 다만, 내가 다음날 오전 비행기를 이용해 한국으로 들어온 다음, 동지가 출발해야해. 만에 하나라도 동지가 발각당하거나 그것들이 없어진 것을 신사에서 먼저 알아채게 된다면 비행기에 싣는 것이 불가능해져. 물건들을 우리나라로 반입하는데 성공하고 동지가 무사히 한국으로 귀국하면, 그때 가서 거사가 있었음을 언론에 공표합시다.”

“알았네. 무사하게 거사를 성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 동지가 도와주게.”

홍설민도 지금쯤 도쿄 인근의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세심정으로 접근하는데 성공한 후, 재빠르게 정자 밑의 공간으로 잠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