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키는 완전한 일본사람으로 살기위해 노력했다.

그는 일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마음먹은 그에게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였다. 그가 아버지 하시모토에게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그곳에 일본의 정신이 집약되어 있다고 말해주었다. 타이키는 그 이후로 학교를 다니는 시간 이외에는 모든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아들의 그런 생각을 엄마 최선애가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타이키에게 아무런 충고나 조언을 하지 않았다. 그가 새 아빠 하시모토를 잘 따르고 낯선 나라에 와서 방황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며 무엇엔가 열중해서 살아 내주는 그것만으로도 엄마의 마음은 충분히 고마웠고 대견스러웠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벌써 4년이 흘렀다. 어느새 대학생이 된 그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보다 더 신사 내의 구석구석을 잘 알게 되었다. 더불어 신사 내의 각종 행사에 자원봉사 등을 성실하게 한 덕에 모든 직원들과 안면이 생겼다.

타이키는 신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감격스럽고 흥분되었다. 조국을 위해 죽은 영령들을 기억하고 예우한다는 것에 감동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에 고모할머니가 한국의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일이 있었다. 한국이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예우하듯이, 일본도 그분들에게 이곳에서 예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한국의 국립현충원과 야스쿠니 신사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성과 진심이 깃든 마음으로 영령들을 위무하는 행사가 이곳에서는 연중으로 계속이어서 열린다. 1월1일의 신년 제를 시작으로 2월 11일의 건국 제, 4월의 춘계례대제, 6월의 신사창건일, 7월에는 유족들이 신사를 방문하는 미타마마스리, 10월에는 추계례대체 등이 끊임없이 기획되어 있었다.

‘이곳에 깃든 영령들은 조금도 외롭지 않을 것 같아.’

그에게는 신사가 마치 집인 듯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 되었다.

설민국은 대원 홍설민과 함께 이재길 의장을 찾았다. 지난 4년 동안 서로는 동년배이자 뜻을 같이하는 동지로 더없이 가깝고 끈끈한 동지가 되었다.

“4년 전에 야스쿠니 공략에 대해 의장님께서 선결 조건으로 말씀하신 실행계획서를 드리고자 찾아뵈었습니다.”

두껍지 않은 서류를 테이블에 놓으며 설민국이 말했다. 이재길은 테이블에 놓인 계획서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의장님께서 말씀하셨던 또 하나의 선결 조건인 아내의 동의는, 의장님께 이 계획서를 보고 드린 후에 상의 할 생각입니다. 저는 제 아내도 이 계획서에 동의 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만약 제 아내의 동의를 받지 못한다면, 이 최종 계획조차 포기하겠습니다.”

이 계획서에는 두 동지가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고 수정하며 지낸 4년의 세월을 집약한 계획이 담겨 있었다. 수십 가지의 공략 방안들이 이 계획서에 담기고 사라졌다. 온라인상으로 시도하는 방법과 오프라인으로의 공략 방법이 수없이 세워지고 수정되고 버려지고 다시 선정되기도 한 시간들이었다. 공략의 방법과 효과와 영향이 검토되었고, 거사 후의 자신들에 대한 안전에 대한 고민도 놓치지 않았다. 그만큼 두 사람은 자신에 차 있었다.

이재길은 서류를 펼쳐 보기도 전에 알았다. 이 실행계획서는 결국 현실화될 것임을!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결의가 이를 웅변하고 있었다. 이들의 눈빛은 당당하고 몸에서는 단호한 결의가 뿜어져 나왔다. 의식으로 지배된 신념과 신념에 의해 지배되는 육체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이토록 강력하고 단호하며 어떤 수사나 묘사보다도 강력하게 어필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이 계획은 실행되겠군요.”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의장님께서 동의해주시는 작전을 실행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희들이 놓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의장님께서 꼭 검토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재길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설민국 일행이 앉아있던 자리에 한영운이 앉아있다. 맞은편 자리의 이재길과 탁자에 놓인 서류는 어제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차마 서류를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고민을 거듭하던 그가 다시금 한영운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이재길이 상황설명을 마치자 그는 서류를 집어들었다. 열장 남짓한 서류에는 고민한 흔적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실행을 결심하게 된 동기와 목적, 방법, 예상 효과와 부작용, 도주와 도피방법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계획서는 오랜 시간을 준비되었음을 대변하는 듯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서류 검토를 마치고 한영운이 이재길에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저는 제거와 지원 중 하나를 택하라면 지원을 택하고 싶습니다.”

한영운은 잠시 망설였다. 공략의 성패를 떠나서 야스쿠니 신사가 가지는 상징성이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 일의 여파로 동북아시아의 정세가 요동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살얼음 같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어 조그마한 변수조차도 엄청나게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긴장과 위험이 상존하는 지역. 확장일로에 있는 중국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일본과 미국, 그 틈을 딛고 체제를 유지하고자 버티고 있는 북한. 모두가 대한민국에게는 위험하고 벅찬 상대다.

이런 시기의 거사는 비록 그 목적이 정의롭고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시원하고 통쾌함으로 잠시 동안의 위안은 얻을 수 있지만, 그 여파는 이 나라의 백성들이 감당할 몫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고통이 따르는 일일지라도 해내야만 하는 일이 있고, 그 고통조차도 기꺼이 감내해 낼 가치가 있는 일이 있다. 이 일이 바로 그랬다.

“여러 가지 희생이 따를 것입니다. 이 계획서는 동지들이 거사를 마친 후,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 올수 있음을 자신하고 있지만, 우리는 동지들이 희생될 수 있음과, 우리나라의 경제와 안보를 저해할 수 있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그래도 이 거사는 지원해야 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계획서는 너무나도 간절한 두 동지의 염원으로 가득합니다.”

두 사람은 그들의 거사를 지원하는데 의견을 모았다.

설민국은 아내와 고급 호텔에서 뷔페를 즐겼다. 그리고 지금은 멋진 카페에서 도시의 휘황한 야경을 감상하고 있는 중이다.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외국인들이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것 감사한 일이야. 내가 어렸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바로 상전벽해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같은 여건에 있던 다른 나라들이나 그 당시의 우리나라보다 잘 살았던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무척 부러워하잖아. 이 모든 게 우리 부모님 세대가 희생하신 덕이야.”

“나도 당신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해. 내가 자라는 동안 나의 조국도 강하게 잘 커준 것이 무척 감사한 일이야. 그 덕에 우리 이렇게 조금 사치도 부려볼 수 있게 된 거야.”

두 사람은 회사 내에서도 대표적인 욜로족으로 소문이 나 있다. 자식을 갖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즐기며 사는 것으로 그들의 눈에는 보인 것이다. 두 사람의 속마음을 그들이 알 길은 없는 일이기에 부부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부정하지 않았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떴던 설민국은 그녀에게 서류 하나를 말없이 건넸다. ‘이게 뭐야?’라고 눈으로 묻는 그녀에게 그는 그녀의 어깨에 잠시 손을 얹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심상치 않은 낌새···

그녀는 말없이 서류를 펼쳤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최선미는 서류를 두 번 더 읽었다. 그리고 그를 한참동안이나 건너보았다. 그도 그녀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보았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서 불빛 가득한 야경을 마주했다. 그는 그냥 자리에 앉은 채로 그녀의 움직임에 모든 촉각이 모여졌다. 그녀의 어깨가 흔들리며 들썩였다. 바라보는 그의 마음도 같이 뿌옇게 변했다. 그녀는 마음이 부서지는 고통을 참고 있을 것이다. 그 고통을 이겨내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그녀는 그를 만류하거나 포기하도록 종용하지 않을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자리에 돌아왔다. 잔뜩 굳은 얼굴로 애써 미소를 지으려 하는 그녀의 얼굴은 어색하게 일그러져보였다.

“우리가 무척 행복하게 지낸 이유가 우리 앞에 나타날 이런 순간 때문이었구나. 지난 시간동안 나 무척 행복했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당신에게 내 마음은 늘 감사했어.”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과 산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며 나도 행복했고 당신을 만난 것에 감사하며 살아왔어. 우리는 언제라도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는 이런 순간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지만, 막상 당신에게 이런 순간을 맞게 만들어 안타깝고 미안해.”

“당신이 나 개인에게는 안타깝고 미안하고 우리 서로 몹시 아쉽지만, 그리고 당신을 몹시 사랑하지만, 조국 앞에 당신을 내놓는 것이라서 나는 견딜 수 있어. 그리고 이 계획서를 보면 위험한 일이지만 당신은 내게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니까, 잠시 당신이 나를 떠나 있는 거니까, 당신이 큰 뜻을 세상에 펼치는 것이니까 나는 많이 울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서 잘 다녀오라고 배웅할 수 있어.”

“그래! 나는 계획서에 있는 그대로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해낼 거야. 이 임무의 완수는 내가 당신과 같이 다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니까.”

부부이자 동지인 두 사람은 눈물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의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출정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