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는 최선애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쇠뿔을 단김에 빼려 들었다. 요즈음에 그는 아예 한국에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그녀의 아이들과 만나는 일이 잦아지고 마치 가족처럼 생활하듯이 되었다.

그럴수록 강민희는 가족속의 이방인처럼 되어갔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의도하지 않는 일이었고, 그녀 자신도 가족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으나, 마음이 자꾸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만 달아났다. 만약에 일본으로 같이 간다고 한들, 그곳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자신 없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진학이나 취직이 모두 힘든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록 하시모토상이 좋은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국민들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이 있는 것이다.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이 이질감의 근원을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그랬다.

“민희 마음을 얻기가 참 어려워.”

두 사람이 조용한 자리를 가지자, 하시모토가 힘겹게 말했다. 그런 그에게 미안하고, 그렇게 노력하는 그가 고마워서 최선애는 말했다.

“우리 민희까지 일본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포기해요.”

그녀의 말에 그는 잠시 대화를 멈췄다.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해 낼 단어를 찾고 있는 듯 보였다. 그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지만 결국 적당한 단어를 찾기에 실패한 것 같았다. 무거운 한숨을 내쉰 그가 말했다.

“내게 아이들이 없어서 아이들 둘 다 필요해요. 물론 우리 사이에 자식이 생길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 사랑에 대한 선물일 테니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민희와 나중에라도 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요. 만약에 세 사람이 한꺼번에 같이 가지 못해도 나중에 기회를 봐서 민희를 설득하도록 할게요. 다행히 한국에 이모가 있으니 선미에게 우선 돌봐 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해요.”

그녀의 말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건 농담인데, 그 두 사람과 같이 지내면 민희는 더 일본에 오기 싫게 될 거야. 두 사람이 모두 우리나라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잖아.”

“나랑은 많이 다르죠?”

“나는 한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가지는 불편한 마음 이해해. 나처럼 평범한 일본 사람들 생각은 거의 비슷할 거야. 우리나라 사람들 성향이 내가 조금 불편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주의인거 잘 알잖아. 정부나 우익의 주장이 불편해도 그냥 참는 거야. 그래서 나는 처제 부부에 대해서 불편한 생각이 없어. 그리고 그 사람들도 나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은 거 잘 알고 있고. 우리 두 나라 사람들은 개인적인 친분을 맺으면 참 친밀하게 잘 지내. 모두가 그러지 못하는 것이 나는 정말 아쉬워.”

“당신의 그런 마음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지내지 못하겠죠.”

“하하하, 아니야. 만약 내가 우익이었어도 당신을 얻기 위해서 변절했을 거야.”

“당신, 지금 한 말로 내게 엄청난 기쁨을 준거 알아요?”

“내가 조금 전에 대단한 일을 해냈네!”

서로를 웃으며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지금 이 시간 행복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야스쿠니 신사!

도쿄도 중심부의 지요다구 구단키타 3-1-1에 93,356㎡ 약 28,300평이 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매년 일본인들 수백만이 참배하는···,

일본에 있는 대략 8만 곳이 넘는 신사중 가장 규모가 크고 ‘별격관폐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246만 6천532주(柱)의 유골 없는 명부만을 보유한···,

그 곳에 합사를 원하지 않고,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까지 포함된 한국인 21,181명을 ‘신’이라 부르고 가두어 두고 있는···,

대한제국 황제의 후손인 이우왕자까지 죽을 당시에는 그가 일본 국적이었다는 이유로 합사를 해놓고 유족들의 반대를 묵살하는···,

1978년 10월 ‘쇼와시대의 순난자’라는 이름으로 한껏 미화한 태평양전쟁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등 14명을 합사한···,

가미카제 특동대에 투입된 일본 젊은이들이 ‘죽어서 야스쿠니에서 만나자’고 외치며 전쟁물자가 된, 그래서 무분별한 일본 우익들의 정신적인 지주며 심장이 된···,

신사 내의 배전 위에 일본 황실의 고유 문양인 국화문양 흰 커튼을 뒤집어쓰고 있어 황실이 인정하고 있음을 내세우는···,

매년 춘계례대제와 추계례대제, 신년제, 건국기념제, 미타마마쓰리 등의 제례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있는···,

각 종 제례마다 정치인들이 공물을 봉납하고 참배를 해서 주변의 여러 전쟁 피해국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일본 육해군성이 관리하는 국가 시설물인···,

전쟁박물관 유슈칸에 2차세계대전 당시의 무기와 전쟁깃발과 휘장 등 5만5천점을 내걸고 영화를 상영하며 전범들을 영웅시하고 신격화 하는···,

‘어신체’ 라는 명칭의 야스쿠니 군도와 11권의 영새부를 성물이라며 보관하고 지극히 원시적인 무속신앙의 범주 수준에 머물러 있는···,

숫자 1억을 훨씬 넘는 생명체가 사람의 모습으로 살면서 그런 신앙에 매몰되어 그 열도에 존재하는 종족들의 수준을 대변하는···,

세계의 내로라하는 경제 대국이고, 문명을 가지고 있노라 자부하는 일본인들이 사는 나라에 무당들의 당집처럼 존재하는···

납득이 불가능한 곳!

야스쿠니의 자료를 찾아 나가던 설민국은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며 야욕을 미처 숨기지 못한, 마치 일본인들의 저급한 의식수준을 대변하고 있는 욕망덩어리의 실체를 보았다. 세상의 어떤 민족이 전쟁을 미화하고 숭배한단 말인가. 일본 포르노에 나오는, 발기한 성기를 아무데라도 쑤셔 넣어야 하는 성도착자의 모습처럼, 전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숙하고 광기에 빠진 민족의 실체를 그들은 야스쿠니에서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그런 신사를 자랑스레 내보이고 신성시하고 우상화하는 민족의 수준은, 큰 물건만 믿고 포르노를 찍으며 일급 배우인양 착각하는 저능아의 모습을 빼닮았다.

“의장님, 저는 야스쿠니를 공략하겠다고 자원한 저희 단원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습니다.”

이재길을 만난 설민국은 단원들의 의견을 전달하면서 자신의 의중을 드러냈다. 이미 그는 심중을 굳히고 있었다. 의장에게 보고를 하는 것은 절차를 거치는 의미와. ‘공략’의 구체성을 협의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이재길의 팔이 약간 움찔했다. 얼굴 표정은 전혀 미동도 없었지만, 그의 놀란 마음을 팔이 드러내버렸다.

“설단장도 지금 한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겠지요?”

“제가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아서 일이 벌어지면 어떤 여파가 생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생각해보면 국가 간의 분쟁으로 번질 염려도 있고, 우리나라에 불이익을 가져 올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폭력이 나쁘다고 그 폭력을 응징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면 똑같은 폭력이 되지요. 다만, 설단장이 말한 공략의 방법에 따라 상황은 달라집니다. 사이버상의 공략도 있고 여론 조성으로 공략하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그 공략의 방법은 앞으로 저와 그 단원이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저는 의장님께서 조언을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대한의 국민으로 혼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일본을 응징하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저들이 우리보다 강한 상대임도 잊어서는 안 되죠. 명분과 실리 또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설단장의 뜻을 알았으니 방법을 같이 고민해 봅시다. 당부드릴 것은 조급하거나 섣부르게 행동에 나선다면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 명심해 주세요.”

설민국을 보내고 이재길은 고민에 빠졌다. 비록 야스쿠니가 일본에 있는 수만 개에 달하는 신사중의 하나일지라도 그곳이 일본인들에게 가지는 의미는 수만 곳의 신사를 모두 합친 것보다 크다. 비록 설단장에게 직접적인 행동을 자제하라는 의미로 비접촉적인 공략을 예시하였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거기에 만족할지 의문이 들었다. 불행하게도 야스쿠니에 해를 입히는 행위는 일본인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국내의 극우세력들도 극복해야 할 세력이었다. 우익 세력들에게 일본은 우방국이다. 미국에 비해 단 하나도 뒤지지 않는···

그들에게 미국은 해방 후의 한국을 공산주의로부터 구해준 맹방이고, 미국이 일본을 강력한 우방으로 여기므로 일본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한미 동맹에 위해를 가하는 것과 한 치의 다름도 없는 일인 것이다. 가슴을 치며 통탄할 국내 우익들의 인식이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