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1/3 정도 뒤로 젖히고 앞좌석에 아버지를 앉혔다

정말 이번엔 제대로 고향산천을 둘러보고 익히시려는가보다 했다

어릴 때 기억으로 10세 미만이었을 땐가 싶은데 오토바이로 고향엘 갔었다

당시엔 250cc급은 고속도로를 주행했었던 것 같은데

여튼 그렇게 고향엘 갔었고 5년쯤 뒤에는 짚차로 갔었던 것 같다

신문기자라 어릴 땐 아버지가 정말 높은 사람이고 좋은 일 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고향사람들은 형사보다 무서운 사람으로 알았고 대소사일을 의논해 왔다

그 높은 면장님 경찰서장님들도 다녀갔고

아버지의 오만하고 거만한 행동이 어린 나의 눈에는 영웅으로 보였었다

잠시지만.

중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건만 대학은 포기하라는 말에 삐뚤어지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 반항심으로 잠시 어긋났었는데 그때 서로는 불천지 원수가 되었다

어느 날 방 두 칸을 노름꾼들이 차지하고 초등 2학년 막내는 없었다.

늘 하던 일이지만 그날따라 피가 끓었다

“막내는.”

‘몰라 어디서 놀겠지.“

사고는 일순간이지만 순간적인 오판이 아니라 누적 된 응어리의 폭발로 일어난다.

“시팔.”

“뭐라고.”

내말에 아버지에게 달려가 일러바치는 소리와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노무새끼 어디서.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나는 유유히 나오면서 이빨을 갈았다

(오늘은 사고 치는구나.)

네년이 어머니를 내쫒고 또 어린 막내를 이 추운데 어디로 내쫒았단 말이지.

뒤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뭔가가 날아와 등에 부딪쳤다

그리고 말리는 소리들.

잠시 멈춰 섰다가 뒤돌아보니 흥분한 아버지와 말리는 친구들이 뒤엉켜 있었다.

“야~~~오늘 사고친데이~~”

자폐증이 좀 있고 여려 친구도 변변찮은 막내가 그나마 단짝 친구가 부모들과 놀러가고

붙임성도 없어 다른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모래 장난하고 있었다.

큰 동그라미 안에 작은 동그라미 3개 그리고 그 옆으로 몇 줄 늘어진 모습이 어머닌 것 같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막내를 꼭 껴안고 그냥 엉엉 울고 말았다

영문을 모르는 막내를 데리고 중국집에 갔다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언젠가 말했지만 제때 사주지 못했고 밥도 못 먹었을 것이다

천진난만하게 먹는 모습을 보고 결심을 했다

(그래 너는 저 악의 소굴에서 살아선 안돼. 나로 족하다)

“막내야 천천히 먹고 있어 형님 잠시 갔다 오께.조금 있으면 엄마 올거야."
"진짜"
금방 화색이 도는 얼굴을 보며 더욱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그 중국집에 서빙하는 동네 후배를 불러 막내를 부탁했다

조금 있으면 어머니가 오실 테니 그때까지 잘 챙기라고 당부했다

“형님 꼭 그래야 됩니까.”

“그래.”

“담배 있냐.”

“여기.”

“마음 같아선 죽여 버리고 싶지만 막내와 어머니를 생각해서 손만 봐줄라 한다.”

“어차피 사고지만.”

“우리도......”

“됐다.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야.”

사고를 예상하고 어머니에게 미리 전화를 드렸고 막내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어머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나의 단호함과 막내 걱정으로 나오시기로 했다

그때 우리는 경산에서 생활했고 어머니는 대구 모 식당에서 일하고 계셨다

“형님.”

“응”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후배에게 씩 한 번 웃어주고 집으로 향했다

만약을 대비해  온 동네 선후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와 동거녀가 나뒹굴었고

노름꾼들은 내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혼비백산 달아났다

경찰에 수갑 채워 질 때 돌아보니 그녀는 실신상태에 아버지도 쓰러져 있었고

선후배들이 잡혀가는 나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려 주었다.

존속상해죄로 일주일 있었고 어머니와 주변의 탄원서와 아버지의 소취하로 며칠 뒤 풀려났다

노름꾼들의 다른 고소가 없었던 것도 한몫했었다 대갈통 깨진 놈도 있었는데.

그렇게 우리는 원수가 되었고 내 목적은 달성했다 막내를 데리고 나왔으니.

그놈이 벌써 조카를 셋이나 낳고 철도청에 다니며 건강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게 벌써 40년이나 되었다.

그리고 5년 뒤 동거녀는 달아나고 지금의 몸으로 내게 왔으니.

“이정도면 되겠어요. ”

“조금만 더 올려라.”

의자를 조금 더 올려주니 됐다고 고개를 꺼덕인다.

안전벨트를 매고 어머니께 다그쳐 물었다

“어무이 다 챙겼소.”

“그래.”

“다시 함 보소.“

“오줌통. 약. 담요.......”

“그래. 그래. 몇 번씩 확인했다.”

그러나 결국 방석을 빼먹고 말았고 내 방석으로 대치했다

마른 체구에 장거리 운전하려니 엉덩이가…….

“여기가 어디고.”

“고속도로여.”

“어디쯤이고.”

“경산 지나고 있심다.”

“그라믄 휴게소가 있을 건데 그 휴게소에서 옛날에 니 오뎅(어묵) 5개나 먹었다”

기억에 없는 이야기다

그래도 옛일을 생각하며 잠시 들렀다 가자해서 10여 분만에 평사 휴게소로 들어갔다

휴일이라 사람들이 붐볐고 담배를 두 대나 피웠는데 화장실 가신 어머니가 안 오신다.

“네 엄마는”

“화장실 갔는데 오래 걸리네요.”

“하여튼 여자하고는. “

말도 어둔하면서 돌대가리니 시근 없다니 뭐라 뭐라 중얼거리다 만다.

길게 하면 내가 또 한소리 할 거니까.

그러나 어머니가 한참 만에 돌아오셨을 때는 나도 짜증이 나 있었다.

“대변을 보려니 낯설어서…….”

“자자. 갑시다요.”

아버지가 또 한소리 하는 걸 막고 다시 출발했다

대구에서 영천구간까지는 편도 4차로로 시원하게 뚫렸지만 영천부터는 다시 2차로다

“정말 많이 변했네. 여기는 어디고.”

“건천 지나고 좀 있으면 경주요.”

“음. 그래도 여기는 좀 안면이 있다.”

30년 세월이지만 고속도로 주변은 크게 변화가 없다

경부고속도로 영천서 언양까지는 거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니.

어린애처럼 이것저것 묻고 옛이야기에 신이 난 아버지를 바라보니 착잡한 연민이 스쳐갔다

(젠장. 효자 났네.)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