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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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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57회] 12부 떠도는 부초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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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설은 사태가 심상찮음을 느낀다. 스승이 많은 제자들 앞에서 이렇게 문답을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설은 직감적으로 스승과 벽송을 같이 떠올린다. 근간에 스승은 말수가 줄어들고 매사에 예전만큼 도장과 제자들에게 관심과 애정의 빈도가 미치지 못했다. 스승은 지병으로 인해 몸이 불편했고 딱히 병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어 노쇠한 기미가 역력했다. 동설은 정신을 가다듬고 스승의 물음에 답을 한다. 「후한(後漢)의 반고(班固)가 말하길, 바둑은 가로 세로 19줄 종횡 361로는 한 해를 상징하고, 네 귀는 춘하추동의 사계절을 말하며, 바둑판이 모가 난 것은 고요한 땅이요, 돌이 둥근 것은 하늘을…….」 여목이 동설의 말을 가차없이 자른다. 「내가 원하는 답은 그것이 아닐 터, 바둑은 무엇이냐 !」 너무나 포괄적인 스승의 질문에 동설은 갑자기 앞이 막막해져 온다. 동설은 이것이 고비라 생각하며 사력을 다해 그 질문의 뜻을 헤아린다. 동설의 이마엔 금세 식은땀이 배어 나온다. 「바둑의 본질은 집을 차지하기 위해 각자의 기량을 겨루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둑의 승패가 집 수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그 출발은?」 여목은 동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동설을 추궁한다. 동설은 필사적으로 스승의 강의 내용을 떠올린다. 「바둑의 출발은 집을 짓는 요령입니다. 귀에 먼저 선착하는 것은 그 한 수가 가장 능률적으로 집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일착을 귀로 하는 것입니다.」 「천원(天元:바둑판의 맨 한가운데 화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냐?」 여목의 질문은 서슴없이 계속된다. 「포석의 경계는?」 「변의 효율성은?」 「배석(配石)의 원리는?」 그렇게 시작된 여목의 질문은 벌써 한 시간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행마란?」 여목의 음성이 재차 도장에 쩡쩡 울려 퍼진다. 「행마란 돌의 형상과 그 운용을 말합니다.」 동설이 흐르는 땀을 훔치며 스승의 질의에 답한다. 「돌의 형상은?」 「대저 돌의 형상은 좋은 모양과 나쁜 모양으로 구별됩니다. 좋은 모양은 정형(正形), 양형(良形), 호형(好形)을 말함이며, 나쁜 모양은 우형(愚形), 응형(凝形), 사형(邪形)을 말합니다. 좋은 모양은 보기 좋은 것을 지칭하는 게 아닌 자생력을 지닌 모양입니다. 정형은 바른 법도에 따른 형이고, 양형은 함부로 상대를 탐하지 않는 형이며, 호형은 주변의 배석과 조화하는 형을 뜻합니다. 우형은 돌의 효율이 떨어지는 형으로서 대표적인 형태로 빈삼각, 삿갓, 오궁, 매화육궁 등을 말하며, 응형은 집이 있으되 돌이 뭉쳐진 빈보를 말하며, 사형이란 욕(欲)을 다스리지 못하여 흐트러진 형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 동설은 등줄기가 서늘해 온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 보지만 머리 속은 점점 혼미해진다. 「그것뿐이더냐?」 「…….」 동설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다. 스승을 상대로 더 이상 버틴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만 재촉할 뿐이었다. 「교형(巧形)과 권형(權形)이 있다. 교형이란 자신에겐 해가 없으되 상대가 실수하면 상대로 하여금 불이익을 유도하는 형이며, 권형이란 수단은 비록 옳지 않으나 목적이 타당하여 묘수나 실전적인 수로 평가받기도 한다. 임기응변으로 두어지는 이 두 가지 형은 돌의 형태가 양형과 우형의 중간을 점하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출중한 모양이라 하나 수읽기와 형세 판단이 받쳐 주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모양이다.」 「…….」 「돌의 운용은 어떻게 하느냐?」 「……기리를 좇아 적절한 운석(運石)을 하며 때론 깃털처럼 가볍게, 때론 산처럼 육중하게 하되 능률은 극대화하고, 그런 가운데 돌은 무리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설숙은 스승의 건강이 염려스러웠다. 옥고를 치른 후 몸이 시들긴 했지만 어쩐지 스승은 평사가 나간 이후로 눈에 띄게 기력이 쇠잔해졌다. 평사가 나간 이후 스승은 외롭고 적막하게 보였다. 공교롭게도 시기가 맞물린다는 생각보다는 평사가 스승의 가슴에 차지하는 비중이 컸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럴 때마다 과거 평사와 같이 생활할 때에 느끼던 경쟁심이 되살아났고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왠지 자신의 감정이 평사에 대해 떳떳치 못하다는 자책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하곤 했다. 어쨌거나 평사는 이제 이곳을 떠났고 그로 인해 설숙의 마음 한 구석엔 일말의 안도감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여목의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여목의 문답은 계속된다. 「돌의 기운은 어디서 오느냐?」 「…….」 대답을 하지 못하는 동설에게 동문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동설의 모습은 보기 측은할 정도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땀에 젖어 있었고 두 눈엔 핏발이 가득 서 있었다. 여목이 냉담하게 동설을 쏘아 본다. 「돌의 기운은 어디서 오느냐!」 마침내 동설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러자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던 설숙이 앞으로 나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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