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장이라니? 누군데?」

「아, 혹시 그 사람을 알고 있나 해서요. 모르면 그만이고.」

이필상이 자신의 말을 흐지부지 끝내 버린다. 그런데 후렴으로 따라붙는 그의 말이 묘했다.

「마포 장 그 사람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많다더군요.」

「무슨 소리요, 뜬금없이?」

「아닙니다. 아무튼지간에 요즈음 원장님이 묘하게 엮인 것 같아서…… 지금이라도 손 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필상은 일어나더니 기원 밖으로 나가 버렸다.

동삼은 비로소 최근 원장을 엮은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마포 장을 비롯한 그 사람의 수족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동삼은 마포 장의 소문을 전주였던 유 사장을 통해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마포 장.

이양포와 거의 버금 가는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삶의 궤적을 달리하는 의문의 사나이. 그 실력이면 정식 승부에서도 충분히 성적을 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기바둑 아닌 사기바둑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 그러나 마포 장은 엄밀히 분류하면 전문 사기바둑꾼이었다. 단지 승부에서 속임수를 쓰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한번 목표를 정하면 꾸준히 은밀하게 상대를 공략한다. 먼저 자신의 하수인을 접근시켜 내기바둑을 벌인다. 몇 개월에 걸친 공방전 끝에 돈을 잃어 상대에게 맛을 들이게 하거나 상대편이 몸이 달 만큼 돈을 따 낸다. 어느 쪽을 취하느냐는 상대의 취향에 맞춰 결정한다. 어떤 식으로든 몸이 바싹 단 상대가 보다 큰 승부를 제의해 올 때, 그때 마포 장이 등장하는 것이다.

상대편에서 어떤 선수를 들이대든 마포 장은 개의치 아니한다. 그리고 마포 장은 철두철미하게 변신하여 자신이 마포 장이라는 사실을 숨긴다. 판돈은 점점 커지고 상대편이 완전히 알거지가 될 즈음 마지막으로 종탕을 치고 잠적해 버린다.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마포 장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본명이 장도수(張度收)인 마포 장, 사람들은 그를 장막 속의 승부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포 장, 그 사람 말이야. 양포에게 선으로 두 번이나 이긴 부산의 손명박이를 엮어 내어 호선으로 세 번 붙어 세 번 다 잡아냈다고 하더군. 덕분에 손명박이는 빈털터리가 됐고……. 아무튼 마포 장을 보고 사람들이 그런다더군. 양포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물론 양포는 자네에게 날아갔지만.」

유 사장은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포 장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마포 장에게 물었다더군. 왜 정식으로 승부를 하지 그러고 다니느냐고. 그 사람이 뭐랬는 줄 아나?」

「…….」

「자기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장 자신 없는 것이 바둑이라고 했다네. 자신이 생기면 그때는 누가 말리더라도 정식으로 승부판에 뛰어들겠다고.」

마포 장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사실 그 누가 완전하게 자신의 바둑을 확신할 수 있으랴. 그때 동삼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은 교활한 말장난에 불과했다.

자신의 바둑에 완벽한 자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뒤집어 해석하면 마포 장은 평생 표면에 나서지 않고 자신에 비해 기력이 떨어지는 자들만 상대하겠다는 자기 나름의 속셈을 그런 식으로 둘러댄 것이었다.

그날 밤 동삼은 이필상의 말투에서 지금 원장이 곤경에 빠져 있고 그 원인이 마포 장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잖게 추측하였다. 또한 마포 장을 확신하는 이필상도 분명 단순한 뜨내기 잔내기꾼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원장님, 툭 까놓고 얘기합시다. 원장님이 들이댄 대전 최고 바둑이라는 이동휘도 깨졌다는 게 사실입니까?」

이동휘(李東煇)는 일제시대 때부터 기명(碁名)을 떨치던 사람으로 나이는 들었으나 그 수의 영역이 깊고 탁월해 충청도 지역에선 그의 적수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또 한번 얘기하지만 원장님, 지금이라도 손을 떼는 게 최선입니다.」

「이미 늦었소.」

비로소 사실을 털어놓는 원장의 얼굴이 침통하다.

「늦었다니요?」

「나 하나 선에서 끝낸다면 지금이라도 손을 털 수가 있지. 하지만 이 사장까지 엮여 들어서…….」

「이 사장이라면?」

「이 건물 주인이요. 나하고는 죽마고우 사이요.」

「…….」

「이동휘도 사실 이 사장이 데려왔소. 이미 이 사장 재산 상당 부분이 상대쪽에게 넘어갔소.」

「그럼 도대체 얼마나 손실이 난 겁니까?」

「은행 돈하고 이것 저것 합쳐 거의 500만 원에 가깝지.」

500만 원이라는 말에 이필상은 제자리에서 펄쩍 뛴다.

「500만 원이라니! 세상에 그런 거액을…… 집이 몇 채요!」

원장이 괴로워한다. 자포자기한 듯 더 이상 숨김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환장할 노릇이지. 술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룬 지가 벌써 오래 됐소.」

「어쩌다가 그리 됐습니까?」

원장이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쉰다. 무골호인 권 원장이 털어놓는 사건의 내용은 이러했다.

3개월 전. 유성기원이 들어선 5층 건물 주인이요, 오랜 친구인 이 사장이 밤늦게 권 원장을 찾아왔다.

「밤늦게 웬일인가?」

「나도 술 한잔 주게.」

전작이 있는지 이 사장의 얼굴은 불그스레했다.

「좋지. 받게.」

술잔을 비우고 잘게 찢은 오징어포를 씹던 권 원장이 이 사장에게 빈 술잔을 내밀었다. 술을 받는 이 사장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집세 줄 날짜도 아닌데 늦은 시간에 웬일인가?」

「행여 이런 말 자네에게 부담이 갈까 싶어서 안 하려고 했지만…….」

권 원장은 보증금도 없이 턱없이 싼값에 친구 건물에 세 들어 있었다. 이 사장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런 점이 무엇을 부탁하기에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이 사장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자네 날 위해서 바둑 한판 두어 주게.」

「바둑이라니.」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인데, 까짓 돈 몇 푼 잃은 것은 또 그렇다고 치더라도 얼마나 약을 올리는지 내 그놈 손 좀 봐 줘야 직성이 풀리겠네.」

이 사장이 씩씩댄다. 이 사장도 상당한 수준의 바둑이기에 권 원장의 흥미가 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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