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일기 192, 거만한 자

오늘은 바둑은 두지 말고 구경만 해야지 하며 기원에 들어선다.

선수가 14명이네 빨리 다시 시작해야지.

안 사범은 바람을 잡고 있다.

편 바둑은 한창이고 최 하수 양은 50집을 지고 같은 편 등산 사장은 네 집을 졌단다. 강 원장은 어차피 편이 많이 졌으니 승부를 건다. 결국은 무너지며 던진다.

새로 세 사람씩 여섯 명이 편 바둑을 시작하고 한편에선 이런 저런 잡담 농담을 한다.

무슨 얘기 끝인지 보쌈집 차 사장과 이동 이 붙는다. 보쌈집이 망한다는 얘기가 왜 나와?

어따 대고 욕이야?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조차 모르지만 싸움질이 붙어 결국 둘이 멱살잡이를 한다. 조폭 흉내를 내던 이동은 멱살만 잡은 채 주먹은 날리지 못한다. 조기축구로 다져진 체력인지 보쌈은 팽팽하게 견디다 한 풀 꺾인 이동에게 입으로만 싸운다.

왔다 갔다 할 때 배때기 조심해! 라는 소리에 그래 해 봐라 하며 팽팽하게 맞선다.

둘이 멱살잡이 하며 밀치고 당기느라 편 바둑판들은 엎어졌다.

룸살롱 윤 모 사장은 전화로 손님 여섯이 온다니 여자가 필요하면 큰 방으로 안내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쩌고 하며 전화통화에 여념이 없다. 분위기가 이래 가야겠네 하며 나선다.

K 시장 사채 꾼 김은 연신 신난 모습이다. 언젠가 그 가 싸울 땐 내가 말렸었는데.

그 때 그는 울먹거리며 왜 무시하는 거야 하며 분을 주체하지 못 했던 기억이다.

오늘 싸움은 말리는 척 하며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결국 둘이 멱살잡이까지 갔지만 결국 서로 주먹질도 안한다. 주먹질을 해 봐야 자기 손해라는 것을 피차 알고 있는 것일까?

잠언 9장8절: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좋은 글이나 소재를 보면 나의 로그 북에 써 놓는다.

언제인지 써 두었던 성경 구절이다.

종일 병원에서 마음을 끓이다 들른 기원은 병원보다 더 요지경이다.

오피스텔에서 장바구니를 챙겨 쇼핑을 나선다.

소주 6병 6천원 일 주일 분,

우유 1.8L 2,900원

라면 2,800원

사과 5,500원

진 간장 3천원

다 합해 2만원이 안 된다. 510원 인지 거슬러 받는다.

바둑 한 판 지면 2만원인데 한 판 안두니 장바구니가 가득이다.

나의 레시피 화려한 라면을 끓인다.

만두 6개를 넣고 끓이기 시작해 김치 쉰 것을 넣는다. 라면을 네 조각으로 부셔 넣고 달걀 한 개를 넣는다. 보통 라면은 그냥 버리게 되는데 오늘은 다 먹는다. 명동 성당 앞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양식집에서 부친과 청계천5가인지 징기스칸 이라는 전골을 부친과 갔던 기억들과 신선로를 경이롭게 생각하며 즐겼던 어린 시절, 종로2가 한국기원 근처의 일식집에서 중2 어린나이에 신비로운 맛을 느끼며 혼자 먹던 일식집 메밀국수, 사업을 시작하며 바이어 접대한다며 드나들던 인사동 요정의 요릿상 등 기억에 남는 레시피는 많지만 이젠 나만의 화려한 라면이 나의 성찬이다.

교과서에서 익히던 시구가 기억은 아사무사 하지만 남아있다.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족하다 였던가.

넷이 두는 편 바둑에 편 하수는 벌써 28집을 졌다.

내 상대 전 사범과는 이기건 지건 몇 집일텐데 승부욕을 처음부터 잃는다.

부러 몰아쳐 보지만 결국 한 집 오히려 진다.

두 번째 판도 하수가 같은 편에 또 28집을 진다.

김새는 승부에 11집을 이기지만 또 잃는다.

내가 원한다던 진지한 승부가 두 판 다 이겼지만 돈은 잃었으니 그리 내가 찾는다던 진지한 멋일까?

병원에선 하루 종일 노심초사였다.

사람이 이렇게 초라해 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이 본분을 잃고 있는 것일까?

길게 보고 기다리면 결국 저절로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인데.

그래 원망하지도 말고 남을 탓하지도 말고 더욱이 성경에도 있다지 않는가.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모자라는 놈을 욕하지 말자.

남의 얘기를 안 하는 이를 세상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겠는가? 끝.